블랙홀을 정의하는 데 가장 단순하면서도 핵심적인 개념은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이다. 이것은 어떤 물체가 특정 반지름보다 작게 압축될 경우, 그 물체가 블랙홀로 붕괴한다는 경곗값이다. 수식으로는 질량만을 변수로 삼고, 그 외의 회전, 전하 등은 모두 배제된 가장 단순한 블랙홀의 크기를 나타낸다. 이 경계는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부르며, 내부에서 외부로는 어떤 신호도 빠져나오지 못한다. 즉, 이 반지름은 단순한 길이가 아니다. 그것은 시공간의 구조가 단절되는 절대적 한계점이다.
이 공식이 흥미로운 이유는, 일단 주어지는 것은 질량뿐인데 그 질량에 해당하는 사건의 지평선 크기는 언제나 계산 가능하다는 점이다. 지구의 질량을 대입하면 약 8.87mm가 나오고, 인간을 대입하면 양성자보다도 훨씬 작은 길이가 나온다. 블랙홀 반지름 공식은 놀랍도록 단순하며, 그래서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렇다면 이 공식을 우주 전체에 적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주라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물체처럼 보이진 않지만, 질량이라는 물리량만 놓고 본다면 계산 자체는 가능할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암흑물질까지 포함한 우주의 총질량을 추정한 뒤, 그 값을 슈바르츠실트 공식에 넣었다. 그리고 나온 결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우주의 총질량에 해당하는 사건의 지평선 크기가 약 140억 광년이라는 값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우리가 '허블 반경'이라고 부르는 우주의 크기와 거의 동일한 것이다. 전혀 다른 정의에서 출발한 두 물리량이 놀랍게도 일치한 것이다. 여기서부터 블랙홀 우주론의 발상이 싹튼다.
본격적으로 이 가설이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허블 반경이 무엇인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허블 반경은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가 광속과 같아지는 지점을 말한다. 우주가 팽창하고 멀리 있는 은하는 빠르게 멀어진다는 허블 법칙은 많은 관측으로 확인되었다. 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1차원 고무줄 비유를 써보자. 고무줄 위에 일정 간격으로 점을 찍어두고, 양쪽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멀어지기 시작한다고 하면, 점과 점 사이의 거리는 일정한 비율로 늘어난다. 이때 중요한 점은 고무줄 위의 개미가 빛보다 빠르게 달릴 수는 없지만, 고무줄 자체는 빛보다 빨리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주의 팽창도 이와 비슷하며, 이 때문에 먼 은하가 '광속 이상으로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상대성이론을 위반하지 않는다. 공간 자체가 팽창하기 때문이다. 허블 반경은 이러한 팽창 속도가 광속이 되는 지점이며, 그 너머의 영역은 광속보다 빠르게 멀어지는 것이다.
이제 다시 앞서의 기묘한 일치로 돌아가보자. 우주의 질량을 대입한 슈바르츠실트 반지름과 허블 반경은 왜 비슷한가? 이것은 우주가 '임계밀도'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임계밀도란 우주가 무한히 팽창하지도 않고, 스스로 붕괴하지도 않을, 가장 미묘하고 정확한 균형점이다. 밀도가 너무 높으면 우주는 주저앉듯 수축하고, 너무 낮으면 지나치게 빠른 팽창이 일어난다. 그러나 임계밀도 상태의 우주는 팽창을 지속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평탄한 기하 구조를 유지하고, 밀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0에 가까워진다. 실제 관측 결과 우주는 거의 완벽하게 평탄하며, 이는 우주가 임계밀도와 매우 가까운 상태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수식적으로 우주의 총질량으로 계산한 슈바르츠실트 반지름과 허블 반경이 유사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바로 이 지점에서, 블랙홀 우주론은 대담한 한 걸음을 더 내딛는다. "우리가 사는 이 우주가 거대한 블랙홀 내부에서 태어난 것이라면?" 어떤 상위 우주에서 거대한 구조물이 붕괴하여 블랙홀이 형성될 때, 그 내부에는 완전히 새로운 시공간이 열릴 수 있다는 발상이다. 내부는 사건의 지평선으로 외부와 완벽히 절연되어 있으므로, 그 안에서 생겨나는 우주는 하나의 독립된 세계가 된다.
이 내부 시공간은 급격한 팽창을 겪으면서 전체적으로 평탄해지고, 그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의 모습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이러한 특성은 인플레이션 우주론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아주 짧은 순간의 급격한 팽창이 우주를 평평하게 만들었다는 인플레이션 모델의 특징이, 블랙홀 내부의 새로운 시공간에서도 그대로 반복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설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 우주는 곳곳에 블랙홀을 품고 있으며, 그 블랙홀들에서도 새로운 우주가 태어나고 있을 수 있다. 즉, 우주는 블랙홀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복제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거대한 계보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물리 상수의 선택도 일종의 '자연선택'처럼 해석될 수 있다. 블랙홀을 많이 만드는 우주는 그만큼 많은 후손 우주를 남길 수 있고, 그런 경향이 누적되다 보면 물리 상수는 자연스럽게 특정 패턴 쪽으로 '선택된다'. 자신들의 논적을 공격할 때마다 모든 것을 '진화론'이라고 비난하는 지적설계론자들의 논법을 떠올리면, 정작 우주 자체가 진화론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사실은 묘하게 아이러니하다.
이 모든 것이 매혹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블랙홀 우주론에는 처음부터 극복할 수 없는 약점이 있다. 그것은 이 가설의 출발점 자체가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점이다. 사건의 지평선은 모든 신호가 넘어올 수 없는 절대적 장벽이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물리 법칙 자체가 이를 불허한다. 관측 장치를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입자가속기를 태양계 크기로 만들어도, 초지능 AI를 개발해도 그 내부는 관측할 수 없다. 더구나 '블랙홀 내부에서 새로운 우주가 팽창한다.'라는 주장은 표준 일반상대성이론의 슈바르츠실트 해에서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는 아인슈타인-카르탕 이론, 양자중력 모델, 혹은 포플라프스키의 회피특이점(Singularity Avoidance) 가설.... 아차, 이러한 이름들은 몰라도 된다. 그냥 일반상대성이론이라는 본편에 대한 DLC 이론을 전제로 해야 성립하는 추측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된다. 하여튼 본질적으로 실증이 불가능한 가설은 과학의 핵심 요건인 반증 가능성을 충족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홀 우주론은 중요한 의미를 남긴다. 이 가설은 우리가 우주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다시 묻도록 만든다. 우리가 '전체'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 또 다른 전체의 일부일 수 있으며,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우주의 경계가 더 큰 구조 안에서는 상대적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동시에 과학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아무리 아름답고 설득력 있는 사유라고 해도 실증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사유의 세계에 남는다. 블랙홀 우주론은 검증 가능한 지식과 검증 불가능한 사유 사이의 경계, 그 경계를 넘지 않으려는 과학의 태도, 그리고 우리가 우주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는 모든 것의 한계를 동시에 비춰주는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