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발적 중력에 대하여
은하의 구조는 이상하다. 단순히 현재의 겉모습만 본다면 모르겠지만, 사실은 은하 중심에 가까운 곳에서 공전하는 천체와 은하 외곽 쪽에서 공전하는 천체의 속도가 엇비슷하다는 문제가 있다. 이게 왜 문제냐면, 기존의 물리학에서 볼 때는 설명이 안되기 때문이다.
천체의 움직임에 대한 계산방법을 처음 정립한 케플러의 공식에 따르면, 질량이 중심에 집중되어 있을 때, 어떤 천체의 공전속도는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비례해서 감소해야 한다. 충분히 느리지 않으면 그 천체는 밖으로 튀어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태양계를 생각해 보자.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들은 태양에서 멀어질수록 느리게 움직인다. 수성이 약 47km/s로 가장 빠르고 해왕성이 5.4km/s로 가장 느리다. 중심에 질량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그 속도는 감소한다.
은하도 마찬가지여야 했다. 은하의 중심부에는 수많은 별들이 밀집해 있고, 거기서 멀어지는 외곽으로 갈수록 별의 밀도는 낮아진다. 그렇다면 외곽의 별들은 중심부 별들보다 훨씬 느리게 공전해야 튕겨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1970년대에 안드로메다 은하를 비롯한 다수의 나선 은하를 관측하면서 이 상식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은하 외곽의 별들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중심에서 일정 거리 이상 벗어나면 공전 속도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거나 오히려 완만하게 증가하기까지 했다.
은하가 눈에 보이는 별들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외곽의 별들은 진작에 은하 밖으로 튕겨 나갔어야 했다. 그런데 현실의 은하는 튕겨 나가지 않는다. 뭔가가 그것들을 붙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 답이 암흑물질 가설이다. 보이지 않는 질량이 은하 주위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으며, 그것이 중력을 통해 별들을 붙잡아둔다는 것이다. 암흑물질이라는 이름은 그것이 검다는 뜻이 아니라 빛과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암흑물질은 빛을 방출하지도, 흡수하지도, 반사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어떤 망원경으로도 직접 볼 수 없다. 오직 중력을 통해서만 그 존재를 추론할 수 있다.
암흑물질의 후보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되어 왔다. 한때는 윔프(WIMP), 즉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그 외에도 액시온이라는 아주 가벼운 입자, 스테릴 중성미자 등이 후보 목록에 올라 있다. 공통점은 모두 빛과 반응하지 않으면서도 질량은 있다는 것인데, 아직 한 번도 검출된 적 없는 입자들이다.
암흑물질이 은하 회전 문제를 해명하는 방식은 이렇다. 암흑물질은 은하 원반 안에 분포하는 것이 아니라, 은하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구형의 헤일로, 즉 후광처럼 분포한다고 가정한다.
이 헤일로는 눈에 보이는 은하보다 훨씬 크고 훨씬 무겁기 때문에, 천체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공전하더라도 은하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는다. 암흑물질의 분포 방식을 적절히 설정하면 실제 관측된 회전 속도를 재현할 수 있다.
이 가설은 은하 회전 문제만이 아니라 우주 대규모 구조의 형성, 우주배경복사의 패턴, 중력 렌즈 효과 등 다양한 관측 결과들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현재 우주론의 표준 모형은 암흑물질의 존재를 핵심 전제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흑물질 가설은 빈틈을 안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암흑물질 입자가 아직 단 한 번도 직접 검출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수십 년에 걸쳐 세계 각지의 지하 실험실에서 암흑물질을 찾는 정밀한 실험들이 수행되었지만, 결과는 지금까지 없다.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에서도 암흑물질 입자의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론이 예측하는 질량과 상호작용 범위가 점점 좁아지고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문제는 암흑물질의 분포다. 시뮬레이션에서는 은하 중심부에 암흑물질이 극도로 밀집되는 구조를 예측하지만, 실제 왜소 은하들의 관측 결과는 중심부 암흑물질 밀도가 완만하고 평탄한 구조에 가깝다. 또한 표준 암흑물질 시뮬레이션은 실제보다 훨씬 많은 수의 작은 위성 은하들이 큰 은하 주위에 존재해야 한다고 예측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 불일치들은 암흑물질 모형에 추가적인 복잡성을 요구하며, 어떤 연구자들은 이것이 단순한 수정이 아니라 가설의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청하는 신호라고 본다.
과학철학적인 차원의 문제도 있다. 일각에서는 암흑물질이 과거의 에테르처럼, 관측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가설적 존재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물론 두 경우를 단순히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이런 비교가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암흑물질 모델의 이론적 한계를 보여준다.
이런 한계들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대안을 찾는 흐름이 생겼다. 그중 가장 오래된 대안은 수정 뉴턴 역학, 이른바 몬드(MOND)다. 1983년 물리학자 모르더하이 밀그롬이 제안한 이 가설은, 은하 외곽처럼 중력이 매우 약한 영역에서는 중력이 기존 법칙보다 더 천천히 감소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질량 없이도 별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공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몬드는 나선 은하의 회전속도에는 적합하지만, 은하보다 큰 구조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를 보인다.
그 외에도 중력이 먼 거리에서 약해지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고 보는 수정 중력 이론들, 양자 중력적 접근, 그리고 암흑물질과 몬드를 절충하려는 시도들이 존재한다. 그 스펙트럼의 끝에, 가장 급진적이면서도 어떤 면에서 가장 매혹적인 가설이 있다. 에릭 페를린더가 2010년대에 제시한 창발적 중력 가설이다.
페를린더는 중력이 전자기력이나 강한 핵력처럼 우주의 근본적인 힘이 아니라고 본다. 온도는 분자 하나하나에 부여된 성질이 아니라 분자들의 평균적인 운동속도에서 나온 집단적인 효과다. 개별 구성요소에는 없지만 그것들이 만드는 큰 규모에서 나타나는 성질을 창발 된 성질이라고 한다. 중력 또한 시공간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무엇인가에 의해 창발 된 현상이라는 것이 페를린더의 주장이다.
즉, 창발적 중력은 단순히 중력의 법칙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중력이라는 힘 자체의 본질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을 제안한다.
이 가설은 "블랙홀도 열역학을 따른다."라는 사실과, 네덜란드 물리학자 테드 제이콥슨이 1995년에 보인 결과와 관련 있다. 제이콥슨은 에너지 보존 법칙과 공간의 엔트로피 개념만으로도 중력을 설명하는 기본 방정식이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중력이 근본 법칙이 아니라 더 기본적인 무언가의 집단적 결과일 수 있다는 강력한 암시였다.
페를린더의 핵심 아이디어는 물질이 공간에 분포할 때 주변 공간의 정보 구조를 변화시키고, 이 변화가 마치 중력처럼 보이는 힘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물음이 떠오를 것이다. "중력의 원인을 바꿔서 보자고? 그게 은하가 예상보다 무겁다는 거랑 무슨 관계인거지?"
창발적 중력은 은하가 실제로 더 무겁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은하 규모의 영역에서는 중력이 우리가 익숙한 뉴턴식 법칙보다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런 이야기다. 우주는 가속 팽창하고 있고, 그 배경에는 암흑에너지가 존재한다. 이 거대한 우주적 배경은 공간에 기본적인 엔트로피 구조를 부여한다. 이런 환경에서 물질이 공간에 분포하면, 그 주변의 정보 배열이 변하고, 그에 따라 엔트로피에 기울기가 생긴다. 이 엔트로피 기울기가 추가적인 중력 효과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엔트로피란 단순한 무질서가 아니라, 시스템이 취할 수 있는 가능한 상태의 수를 뜻한다.
간략하게 본다면, 창발적 중력 가설은 수정 뉴턴 역학을 근본적인 원리, 즉 정보와 엔트로피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창발적 중력 역시 한계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선 이론의 수학적 완성도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다. 페를린더의 2016년 논문은 야심 차긴 하지만, 완성된 이론이라기보다는 강력한 제안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은하단의 충돌 사건이나 우주배경복사의 세밀한 패턴을 창발적 중력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두 은하단이 충돌하면서 겉으로 보이는 물질과 중력적 중심이 분리되는 현상은 암흑물질의 강력한 증거로 자주 인용되는데,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흑물질이 보이는 물질과 상호작용하지 않고 지나쳐간다는 것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창발적 중력이 이런 현상을 아직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이론 자체가 예측하는 관측 가능한 결과들이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아, 실험적으로 검증하거나 반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발적 중력이 매혹적인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기존 이론을 수정하는 차원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이 가설은 중력, 열역학, 정보, 그리고 시공간의 구조가 하나의 원리로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암흑물질이라는 미지의 입자를 추가하는 대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열역학과 정보 이론으로 중력을 재해석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물리학의 기반 자체를 다시 세우는 일이 된다. 이 가설이 옳다면 우주의 구조를 이해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틀렸다 해도, 그 방향에서 이루어진 탐구가 완전히 헛된 것으로 끝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만약 중력이 정말로 창발적이라면, 그것을 낳는 근본적인 구조는 무엇인가.
페를린더가 제시한 답은 정보와 엔트로피다. 물질이 공간에 존재할 때 주변 공간의 엔트로피 분포가 달라지고, 그 차이가 중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따라온다. 그 정보는 무엇에 담겨 있는가? 이 물음은 루프 양자 중력이나 끈 이론이 다루는 시공간의 미시적 구조 문제와 맞닿는다.
마치 물의 온도와 압력이 수많은 분자들의 집단 운동으로부터 나타나듯, 중력이라는 힘도 우주적 규모의 어떤 집단 현상일지 모른다. 온도는 실재하지만 단일 분자의 온도는 없다. 어쩌면 중력도 비슷한 방식으로 실재하는, 그러나 입자 하나하나의 성질로 환원되지 않는 무언가일 수 있다.
물론 창발적 중력은 완성된 이론이 아니고, 그것이 제안하는 근본적인 구조는 여전히 희미한 윤곽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뉴턴 역학에 더 깊은 층위의 구조가 있음을 드러냈듯이, 지금의 논쟁 역시 중력 아래에 또 다른 구조가 존재할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