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녘 가로수 길, 바람이 제법 시원했다. 평일 오후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빈틈없이 잘 정비된 보도블록을 나 혼자 차지하고 있었다.
삶의 권태기였을까. 매사에 의욕이 없었다. 세상사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를 넘긴 지 몇 해가 지났건만 나는 여전히 세파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못마땅한 나를 보듬고 마냥 걸었다. 허점투성이인 나는 반듯하게 늘어선 블록 앞에서도 주눅이 들었다.
저녁노을이 서서히 하늘을 물들여갔다. 그림자가 길게 뻗어 내 키를 넘는 듯했다. 쪼그라드는 마음에 반해 키라도 한 뼘 커졌으니 다행이었다. 저만치 그림자의 끄트머리에서 무언가 춤을 추고 있었다. 내 내면의 어딘가에 살아있을 삶의 열정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가 보았다. 회색빛 보도블록 사이에서 연초록 들풀 하나가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블록사이를 어찌 뚫고 나왔을까. 저리 여리디 여린 몸을 가지고…. 세상의 벽이 너무 단단해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던 나와는 달리 그 벽을 깨고 나온 들풀이 기특하고 예뻐서 말을 걸었다. 어린 들풀은 수줍은 듯 말이 없었다.
어느새 주위가 어둑해졌다. 한참 동안 독백 같은 대화를 나누던 나는 어린 들풀에게 작별을 고하며 일어섰다. 뒤돌아서 걸음을 떼려는데 갑자기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이 뭔지 알아?”
“….”
물론 나는 그 들풀의 이름을 몰랐다. 이름은 몰라도 말은 통할 수 있지 않은가. 나의 생각이 티가 났는지 어린 들풀은 내게 쐐기를 박았다.
“이름도 모르면서 알은체하기는….”
들풀은 수줍어서 말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괘씸해서 대꾸를 안 한 모양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날이 어두워서 다행이었다. 몇 걸음을 걷는데 가로등이 켜졌다. 돌아보니 어린 들풀이 가만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가녀린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를 잊지 마!”
들풀의 바람대로 어린것을 잊지 않으려고 이름을 찾아보았다. 사진을 찍었더라면 찾기 쉬웠을 텐데. 후회스러웠지만 이미 늦었다. 기억에 의존해서 찾아보다가 <애기똥풀>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시인이 서른 다섯 될 때까지 몰랐다는 애기똥풀, 시인에게 서운해서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인간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비웃던 작은 들꽃이 떠올랐다. 마흔을 넘기고도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내가 어린 들풀은 얼마나 한심했을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어린 들풀에게 일기 같은 편지를 썼다. 대답 없는 들풀에게 고해 성사하듯 마음을 풀어놓다가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 무기력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알게 되었다. 세상의 벽이 너무 단단해서 매번 튕겨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가 너무 빨리 세상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내 뒤로 멀어진 주변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내면의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었다. 안에서 울리는 소리도 감지하지 못하고 바깥세상의 소리도 듣지 못하는 그야말로 무덤에 갇힌 영혼이었다.
어린 들풀은 단단한 보도블록을 뚫고 나온 것이 아니라 길을 내어준 보도블록의 배려로 세상에 얼굴을 내밀 수 있었을 것이다. 힘이 아니라 소통으로 길을 찾은 것이다. 이름도 모르면서 알은체하지 말라는 들풀의 말은 주위를 돌아보며 살라는 애정 어린 조언이었다.
내 안에 켜켜이 쌓아두었던 해묵은 이야기들을 풀어내기로 마음먹은 날, 뒤도 돌아보고 옆도 살피며 어우러져 살기로 다짐한 날, 나는 글쓰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