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부르지 못한 노래”
카페 문이 열릴 때마다
진이는 손님을 살핀다.
그들이 걸어 들어오는 발걸음의 무게,
눈에 담긴 지난 시간의 흔적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꺼내놓을 준비가 된 ‘기억’이 있는지를.
그날 들어온 그는
기억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몸에 걸친 외투보다,
마음에 걸친 이야기가 더 무거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등을 곧게 세운 채 피아노 옆자리에 앉았다.
이곳의 피아노는 아무도 연주하지 않지만,
가끔 손님들이 앉아 바라보곤 했다.
마치 무언가를 다시 떠올리기라도 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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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소개했다.
“작곡을 해요.
대중가요보다는 영화음악이나 광고 쪽.
소리 없는 감정을 붙잡는 일이죠.”
그는 말할 때마다
단어들을 천천히 고르고 또 골랐다.
음 하나하나를 쌓듯이,
단어 하나도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러웠다.
“누군가를 좋아했어요.
오래, 아주 오래.
말하지 못한 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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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녀와 음악학원에서 만났다.
그녀는 피아노를,
그는 작곡을 전공했다.
함께 연습하고, 서로의 곡을 들어주며
서로를 조금씩 닮아갔다.
“그녀는 밝고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늘 웃고,
사람들의 중심에 있었죠.”
그는 그녀를 보며
늘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 악기’ 같다고 느꼈다고 했다.
“나는 조용했고,
그녀는 모든 걸 빛나게 만드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감히 말할 수 없었어요.
좋아한다는 말,
너를 위한 곡을 썼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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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그는 작곡가로 활동하며
기억 저편으로 그녀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멜로디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닮아갔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내 곡이 흘러나왔어요.
그때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죠.
‘이 곡… 나 같아. 맞죠?’
그녀는 알아챘어요.
내가 그 노래를 누구를 위해 썼는지.”
하지만 그건
그녀의 마지막 연락이었다.
곧 결혼 소식이 들려왔고,
그는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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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녀를 위한 곡을 쓸 수 없어요.
마지막으로 썼던 곡 하나가 있어요.
그게...
나 혼자 치르는 이별이었죠.”
그는 봉투에서 낡은 악보 한 장을 꺼냈다.
제목은 적혀 있지 않았다.
단지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Goodbye, quietly” 라고 쓰여 있을 뿐이었다.
“이 악보를...
기억으로 내려놓고 싶어요.
그녀는 듣지 못했지만,
나는 이 곡을 쓴 것으로 충분히 사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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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 그의 앞에 얼그레이 홍차를 놓았다.
묵직하고도 부드러운 향,
한 번 마시면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맛.
“이 차는,
말하지 못한 이별에게 주는 인사입니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다.
그 미소엔 말하지 못한 슬픔과
다 부르지 못한 노래가 함께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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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카페에는 아무 음악도 울리지 않았지만
진이는 피아노가 울리는 것 같았다.
멜로디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감정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진이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 “어떤 사랑은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들을 수 없는 곳에서 이미 다 전해진다.
음악처럼.
파도처럼.
기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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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진이는 우연히 라디오에서
어느 영화의 엔딩 음악을 들었다.
익숙한 멜로디였다.
악보 아래 적혀 있던 그 이름은 없었지만,
진이는 알 수 있었다.
그 곡은,
누군가의 마지막 고백이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