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기억을 먹나요?

낯선 질문

by 미라니

비가 그치고 난 뒤의 공기는 늘 조금 쓸쓸하다.

창밖의 나무 가지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바닥에 ‘톡’ 하고 부딪힐 때마다, 카페 안의 정적은 더욱 짙어졌다.

진이는 테이블 위에 남겨진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손끝을 멈췄다.

그곳엔 낡고 색이 바랜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사진 속엔 웃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표정은 이상할 정도로 익숙했다.

마치 오래전 자신의 기억 속 한 장면과 겹쳐지는 듯했다.

그 순간 은이 입을 열었다.

“진이 씨도… 기억을 먹나요?”


낯선 듯, 그러나 오래 준비된 질문처럼 들렸다.

진이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다.

그동안 카페에서 오간 이야기는 언제나 손님들의 것이었다.

그들이 버리고 싶다며 꺼내놓은 기억을 받아 적고, 들어주고, 때로는 함께 울어주었다.

자신은 늘 경계 밖에 서서 누군가의 기억을 지켜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은의 시선은 명확하게 진이를 향하고 있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눈빛.

마치 오래전부터 꼭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을, 이제야 꺼낸 듯한 진중한 울림이 있었다.


진이는 잔을 내려놓으며 잠시 숨을 골랐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오래도록 봉인해둔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떠나지 못한 사람, 놓치고 만 순간,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았던 기억.

그 기억은 때로는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지만, 동시에 발목을 잡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나도,”

진이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마 기억을 먹으며 살아온 사람인지도 모르겠어요.”


목소리가 떨렸고, 스스로도 그 고백이 낯설었다.

진이는 늘 손님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 사람, 타인의 고통을 함께 견뎌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은의 질문은 진이의 껍질을 단숨에 벗겨냈다.

자신 역시 여전히 삼키지 못한 기억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은은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깊은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면… 우리 둘 다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거네요.”


그 말은 단순한 동의가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오래된 회한과 자신을 향한 고백이 겹쳐져 있었다.

진이는 순간, 은 또한 버리지 못한 기억을 품고 이곳에 앉아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단순한 손님도, 지나가는 인연도 아니었다.

이 카페에서 버티고 있는 또 다른 존재였다.


창밖에서 바람이 불어와 카페 문을 살짝 흔들었다.

조용히 울리는 종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번졌다.

진이는 그 소리에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또렷하게 인식했다.

이곳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기억이 모여드는 곳,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의 기억도 꺼내놓아야 할 장소였다.


그날 밤, 진이는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은의 질문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당신도 기억을 먹나요?”

대답은 이미 했지만, 그 말의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진이는 알았다.

이 질문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마주해야 할 진실을 여는 열쇠라는 것을.

그리고 그 열쇠는, 언젠가 반드시 자신을 향해 돌아오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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