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선택

말해지지 않은 질문

by 미라니

카페 창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살짝 흔들린 유리창을 두드렸다. 여름 끝자락의 빛은 따스했지만, 어쩐지 그 속에는 이별의 예감 같은 서늘함이 배어 있었다. 진이는 의자에 등을 기대지 않고 몸을 곧게 세운 채 앉아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책장 너머로 드리운 은의 그림자를 좇았다.

은은 언제나처럼 말수가 적었다. 묵묵히 커피잔을 감싸쥔 손끝은 단단했지만, 그 속에 담긴 체온은 쉽게 식어버릴 것만 같았다. 진이는 그가 이곳에 오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알게 되는 순간, 두 사람의 관계가 더 이상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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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씨.”

은이 드물게 먼저 말을 꺼냈다.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카페 안 공기를 흔들었다.

“사람에게는…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잖아요. 버리든, 붙잡든, 결국은 하나를 정해야만 하는 순간.”


진이는 그 말을 오래 되새기며 대답을 미뤘다. 은의 눈빛이 마주치자, 그녀의 마음속에서 지난 세월의 기억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첫 번째 선택. 떠나야 할 때도, 머물러야 할 때도 있었지만 그녀는 늘 반대로 움직였다. 그 후회는 시간이 흘러도 흔적으로 남아 그녀를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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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라면…”

진이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마도 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기억조차, 결국은 다 끌어안고 갈 것 같아요. 버리면 사라질까 두려워요. 그 기억들이 사라지면, 제가 저일 수 없을까 봐.”


그녀의 고백은 의도치 않게 떨림을 드러냈다. 은은 잠시 그녀를 응시했다. 그리고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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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가 낮게 내뱉은 한 마디는 마치 긴 숨 같았다.

“첫 번째 선택을 잘못했을 때의 기억을 버리고 싶습니다.”


진이는 눈을 크게 떴다. 은의 시선은 먼 곳에 가 있었다. 그가 말하는 ‘첫 번째 선택’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그 말은 이미 은의 삶 깊숙이 뿌리내린 아픔을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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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카페의 시계초침이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그 사이를 메웠다.

진이는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노을빛이 거리를 물들이며 서서히 밤의 문턱을 열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은과 마주 앉아 있는 자신이 바로 그의 ‘두 번째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생각에 진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누군가의 두 번째 선택이 된다는 것은 가볍지 않았다. 첫 번째보다 더 깊은 용기와 진심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두 번째 선택은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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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씨.”

진이는 조심스레 그의 이름을 불렀다.

“혹시… 그 선택을 다시 할 수 있다면, 같은 길을 걸으실 건가요?”


은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에는 오랜 갈등과 회한이 서려 있었다.

“아마도… 다르게 걸었을 겁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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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안에 조용히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오래된 피아노 위에 놓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곡이었다. 은은 그 소리에 잠시 눈을 감았다. 진이는 그 모습에서, 그가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기억 속에 살고 있음을 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느꼈다. 그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사실, 자신과 함께 시간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두 번째 선택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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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카페의 불빛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끝내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았지만, 서로의 침묵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이는 알았다.

― 은과 자신, 두 사람 모두 두 번째 선택 앞에 서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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