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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 출근길이다.
특히 주말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월요일은 늘 반쯤 잠에서 깬 듯한 기분으로 시작된다.
도로는 피크타임이 지나 한적해 보였지만, 집을 나서자마자 첫 신호에 딱 걸렸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매일 이 길을 다니면서도, 이 신호등들을 과연 몇 개나 지나치는지 세어본 적이 있었나?
내비게이션에는 목적지까지 28킬로, 예상 시간 40분이라고 떴다.
왠지 오늘은 그 40분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신호등 개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어느새 열다섯. 이렇게 많았나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결국 목적지까지 신호등은 총 19개였고, 그중 8개에서 멈춰 서야 했다.
평균 대기 시간을 약 2분으로 계산하니 총 16분. 곧 깨달았다.
나는 출근길의 절반 가까이 붉은 불빛을 보며 보내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상하게도 괜한 억울함이 밀려왔다.
물론 신호등이 잘못한 건 아니지만, 왠지 손해 보는 기분. ‘내 16분, 돌려줘…’
물론 어느 누구에게 외칠 수도 없다. 신호등이 변상해 줄 리도 없고.
특히 출근 집중시간에는 그 16분이 20분, 25분으로 커지기까지 한다.
‘정지’라는 불빛 앞에 세상에서 가장 얌전한 시민이 되어 서 있는 것이다.
그러다 생각이 이어졌다. 신호등뿐일까?
사실 우리는 온종일, 온 평생 ‘기다림’이라는 이름의 줄을 서며 살아간다.
출근길에는 신호를 기다리고, 지하철에서는 차를 기다리고, 사무실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그 작은 상자가 내려오기를 기다린다.
점심시간이라고 다르지 않다. 식당에 앉자마자 주문한 음식이 빨리 나오기를, 계산을 빨리 끝내기를,
커피 줄이 조금만 더 빨리 줄어들기를 바란다.
심지어 배달 음식조차 앱에서 남은 시간을 초 단위로 확인하며 기다린다.
기다림은 이제 우리의 취미인지, 특기인지, 의무인지조차 모호해진 지 오래다.
이쯤 되면 인간은 ‘기다림의 동물’이라고 정의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생각하는 동물’이란 표현은 아마 철학자들이 만들어낸 낭만적 표현일지 모른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늘 무언가를 기다리며 사는 ‘기다리는 동물’에 가깝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렇게 기다림이 인생 구석구석을 점령하고 있어도
우리 인생만큼은 정작 ‘순서’가 없다는 사실이다.
신호등에는 빨강 뒤에 파랑이 오고, 버스가 지나가면 다음 버스가 오고,
주문한 음식은 번호 순서대로 나오지만, 우리의 인생 순서는 그런 번호표를 준 적이 없다.
“다음 인생님, 23번 창구로 오세요” 같은 안내가 있었다면 살기가 좀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언제쯤 기회가 오는지, 언제쯤 휴식이 오는지,
언제쯤 원하는 목표가 도착 예정인지 미리 알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인생은 우리를 늘 출구 없는 대기열에 세워놓고,
‘곧 순서입니다’라는 말조차 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는 기다림을 아까워하면서도,
동시에 그 기다림 속에서 사소한 마음의 틈을 찾는 법을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신호등 앞에서 갑자기 흘러나오는 라디오 한 곡이 하루의 기분을 바꿔놓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지연 때문에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이 소중한 인연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출근길의 대기 시간이 아깝다.
하지만 아까움 속에서도 웃긴 결론 하나는 얻었다.
신호등은 멈추라고 우리를 붙잡지만, 인생은 멈출 틈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오늘도 붉은 신호 앞에서 잠시 멈춰 서며 가만히 생각한다.
“그래, 세상 모든 기다림에는 순서가 있지만… 정작 우리 인생엔 번호표가 없으니,
오늘 멈춘 김에 잠시 쉬어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겠지?”
그렇게 나는 다시 초록 불을 기다린다.
그리고 오늘도 묘하게 유머러스한 기다림 속으로, 어김없이 다시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