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날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by 글이로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 한다.

그래도 저녁을 먹고 평소처럼 운동을 나섰다.

어제 현관 앞에 두었던 우산을 챙기고, 휴일(?)이라 모자도 푹 눌러 섰다.


체육공원에 도착하니 오늘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조용해서 좋다.

이 시간은 세상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나 혼자만의 사색의 시간이다.


트랙을 한 바퀴쯤 돌았을까,

오락가락하던 비가 다시 굵어졌다.

곧 이어 비는 우산을 둔탁하게 두드리며 내린다.

소리가 내 귀에는 묘하게 리듬을 타며

마음 어디쯤 젖어 드는 소리로 들렸다.


그래도 시작한 운동이기에 별생각 없이 묵묵히 걷는다.

백여 미터를 걸었을까.

‘어라?’ 오른쪽 운동화 안이 축축하다.

물이 스며든 모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안에서 찰박거리는 소리가 난다.

양말까지 다 젖어 발끝이 차가워졌다.

그 순간, 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운동화가 귀하던 시절, 내 또래 대부분은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그 고무신을 신고 축구도 하고 달리기도 하곤 했다.

간혹, 비가 내리는 날이면 신발 안은 그야말로

물 반, 고무신 반이었다.


옆구리가 터져 물이 새는 건 일상이었고,

새 신발은 상상 속의 사치품이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고장 난 짐 자전거

튜브를 잘라 사포로 문지르고,

터진 부분에 아교풀을 발라 정성스레 붙이셨다.

아이의 발을 지키기 위한 어머니의 손끝은 언제나 따뜻했다.


그 시절엔 낡은 것이 부끄럽지 않았다.

나만의 기억이 아니다.

내 친구들 대부분도 비슷했다.

지금 생각해도 오히려 오래 쓴 것에는 이야기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한두 번 입은 옷도 쉽게 버린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확고한 생각 때문일까.

아파트 분리수거함에는 멀쩡한 옷들이 제법 보인다.

아껴 쓰는 게 나쁜 건 아닌데,

그런 마음을 갖는 내가 이제는 ‘꼰대’인 걸까.


그래도 최근 재활용 생활용품에 MZ세대의 관심이 높다고 하니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다.

낡은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는 감각은 시대를 막론하고 아름답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마음을 잇는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갑자기 내린 소낙비에 트랙 위로 흙탕물이 흐른다.

옆에 있는 산에서 내려온 물이다.

하지만 일상의 루틴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정해 둔 목표만큼 걸음을 채웠다.


운동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앞.

우산 안이 물로 가득하다.

코팅이 벗겨졌나?

자세히 살펴보니 우산 살은 아직 멀쩡하다.

살살 털어 조심스레 펼쳐서 현관 앞에 놓았다.

잘 말려서 다음에 또 써야지.

화요일 연재
이전 24화빨간 고무장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