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 장롱 위에는 늘 보자기 몇 장이 놓여 있었다. 색도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것은 꽃무늬가 있었고, 어떤 것은 수수한 빛깔이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참 잘 쓰셨다. 둥근 그릇을 싸기도 하고, 모난 상자를 싸기도 하고, 길쭉한 병도 능숙하게 감쌌다. 신기하게도 보자기는 무엇이든 품었다. 모양이 다르다고 밀어내지 않았다.
한번은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왜 어떤 물건이든 여기에다 싸?"
어머니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보자기는 모양을 따지지 않거든. 그래서 어디에나 쓸 수 있지."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그저 살림살이의 지혜쯤으로 여겼다.
얼마 전, 오래 알고 지낸 사람과 밥을 먹었다.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속으로 되뇌었다.
'역시 저 사람은 나랑 안 맞아.'
그 생각을 하다가 문득 멈췄다. 내가 언제부터 저 사람에게 선을 긋고 있었던 걸까.
따지고 보면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말투가 좀 거칠고, 생각하는 방식이 나와 달랐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다름을 불편함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조금씩, 조용히 마음을 접어 두고 있었다.
그날 밤 장롱 위를 바라보다가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보자기는 묻지 않는다.
왜 이렇게 모났니, 왜 이렇게 크니, 왜 이렇게 생겼니.
그저 조용히 감싼다. 그래서 둥근 것도, 모난 것도 제자리에서 편안해진다.
사람의 마음도 그럴 수 있을까. 나와 다른 말투, 나와 다른 속도, 나와 다른 생각을 만났을 때 조금 더 넉넉하게 펼쳐질 수 있을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여전히 누군가의 모난 면이 불편하고, 나와 다른 사람 앞에서 마음이 먼저 오므라든다. 보자기처럼 사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래도 오늘 하루만은, 마음 한 장을 조용히 펼쳐 보고 싶다.
누군가의 모난 하루를 살며시 감싸 주는, 그런 마음 한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