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방 왔는가

by 글이로


문득 바람이 스칠 때면, 나는 아무 이유 없이 뒤를 돌아본다. 누가 부른 것도 아닌데,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건드린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한 문장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문 서방 왔는가."

장모님은 말수가 많지 않으셨다. 길게 이야기를 풀어놓기보다 짧은 문장 속에 마음을 담아 건네는 분이었다. 그 적은 말들 사이에는 오히려 더 깊은 정이 숨어 있었다. 말 대신 손으로, 눈빛으로, 음식으로 마음을 전하시던 분이었다.


부엌에서는 늘 무언가가 끓고 있었다. 사위가 왔다고 이것저것 음식을 준비해 두셨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이미 상 위에는 풍성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고, 그 안에는 "잘 왔다"는 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특히 연탄불 위에 석쇠를 올려 구워주시던 고추장 불고기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연탄불 특유의 은은한 향이 고기에 배어들고, 그 위에 장모님의 손맛이 더해져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맛이 되었다. 그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을 때마다 나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씹고 있었다.


가끔은 동서들과 함께 마당에 둘러앉아 작은 파티를 열기도 했다.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고, 술잔이 오가며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몰랐다. 장모님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또 무엇을 더 내어줄지 고민하셨다.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다.


그런 기억들이 이제는 희미해졌다.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색이 바래고, 가장자리부터 흐릿해진다. 10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길 줄은 몰랐다. 그 시간은 기억을 조금씩 데려가고, 남겨진 사람에게는 그 빈자리를 천천히 실감하게 한다.

이제 장모님은 요양 시설에 계신다. 찾아뵐 때마다 나는 같은 말을 꺼낸다. "문 서방 왔습니다. 장모님 아시겠어요." 확인을 위한 물음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을지 모를 기억의 조각을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다. "잘 몰라." 담담한 그 한마디가 듣는 사람의 마음에는 깊은 파문을 남긴다.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그분이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현실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장모님은 나를 잊어가고 계신다. 그러나 나는 장모님을 더 또렷이 떠올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분의 기억이 비워질수록 내 기억은 더 선명해진다. 마치 누군가는 내려놓고, 누군가는 붙잡아야 균형이 맞는 것처럼.

기억을 잃는 병은 단순히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흐리게 만든다. 함께 쌓아온 시간이 더 이상 공유되지 않는다는 것은, 혼자만 그 시간을 붙들고 서 있는 것과도 같다. 나는 여전히 그날의 마당에 서 있는데, 장모님은 이미 그곳을 떠나버린 듯하다.


몸도 많이 쇠약해지신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켠이 아프다. 손을 잡아도 예전처럼 힘 있게 잡아주지 못하고, 눈빛도 점점 멀어지는 듯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엇을 잃고 있는지, 또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래도 나는 살아간다. 해야 할 일들이 있고, 웃어야 할 순간들이 있고, 하루를 버텨야 할 이유가 있다. 그래서 때로는 잊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잊으려 애쓰는지도 모른다. 기억이 너무 선명하면 견디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전히 잊히지는 않는다. 어느 날 문득 고추장 불고기 냄새가 스치듯 떠오르면, 나는 다시 그 마당에 서 있다. 버선발로 나오시던 장모님의 모습이, 말없이 건네던 정이, 그 모든 순간이 다시 살아난다.


기억이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머릿속에서는 지워질지라도, 다른 누군가의 마음속에서는 더 깊어지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되뇌어 본다.

"장모님, 문 서방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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