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2)
주책없이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예전 같으면 코웃음 치고 넘겼을 장면에서, 요즘 나는 눈부터 젖는다.
나이가 들면서 그 횟수가 늘어났다.
누가 그러더라. 호르몬이 줄어서 그렇다고.
남성은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여성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고.
그 말을 듣고 나는 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내가 이러는구나.”
얼마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퇴직한 아버지가 딸에게 편지를 읽어 주는 장면이 나왔다.
별말 아니었다.
“고맙다, 잘 자라 줘서.”
딱 그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그 한마디에 눈이 시큰해졌다.
아내가 옆에서 물었다.
“왜 울어?”
나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아니, 먼지가 들어갔어.”
요즘 우리 집 먼지는 참 감성적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만 나오면 눈으로 직행한다.
예전의 나는 울음을 잘 몰랐다.
억울해도 참고, 힘들어도 삼켰다. 울면 약해 보일까 봐 그랬다.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강한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커서 제 할 말을 또박또박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뭉클하다.
지하철에서 누군가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봐도 괜히 고맙다.
예전에는 그냥 스쳐 지나갔을 장면들이다.
마음이 넓어진 건지, 틈이 많아진 건지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이기려고 하기보다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는 쪽으로 변하는 것 같다.
그래서 눈물이 많아지는 게 아닐까. 젊을 때는 앞만 보고 달렸다.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지금은 잠깐 멈춰 서서 생각한다.
“아, 저 사람도 저만한 사정이 있겠구나.”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눈물은 어쩌면 고장이 아니라 신호다.
내가 아직 굳지 않았다는 신호. 아직 누군가의 기쁨과 슬픔에 닿을 수 있다는 증거.
나는 이제 주책없이 눈물이 나는 나를 조금은 이해한다.
거울 속 얼굴은 주름이 늘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말랑해졌다.
오늘도 괜히 울컥하면 이렇게 말해 본다.
“그래, 사람 다 됐네.”
그리고 휴지를 한 장 뽑으며 슬쩍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