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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나는 머리를 다듬으러 동네 미용실에 들른다.
그런데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손질받고 있으면,
문득 문득 오래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발소의 바리깡 소리, 어머니의 단호한 눈빛, 그리고 친구들의 머리 모양까지.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 대부분은 까까머리였다.
머리를 깎은 게 아니라 ‘밀었다’고 해야 더 어울릴 만큼,
단정하다 못해 머리카락이 아예 없는 수준이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머리 자르는 걸 직접 챙기셨다.
이발소에 같이 가서는 의자에 앉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좀 짧게 깎아주세요. 자주 안 와도 되게요.”
머리카락이 바리깡에 쓱쓱 잘려나가는 동안, 나는 그 기계 소리를 참 싫어했다.
기계 소리가 내 머리 안에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고,
바리깡이 ‘지잉’ 소리를 내며 머리를 밀어내면, 거울 속 나는 매번 낯설게 느껴졌다.
유난히 머리가 빨리 자라던 나는 한 달도 채 안 돼 다시 이발소를 가야 했는데,
그럴 때면 어머니는 농담처럼 말씀하셨다.
“넌 먹는 게 다 머리로 가나 보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분명 생활의 고단함이 묻어 있었다.
한편, 부잣집 친구들은 '스포츠형' 머리나 옆머리를 살짝 넘긴 멋스러운 스타일을 하고 다녔다.
나는 그런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머리 하나로도 사람은 이렇게 달라 보일 수 있구나 싶었다.
한번은 어머니께 물어봤다.
“엄마, 나도 옆집 형처럼 스포츠머리 하면 안 돼?”
“안 돼, 깔끔한 게 최고다. 그런 머리는 돈만 더 들고, 금방 자라.”
그러면서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셨다.
결국, 나는 거울 앞에 다시 앉아 바리깡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언젠간 나도 멋진 머리 해볼 거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교칙’이라는 이름 아래 학생들의 머리는 통일되었고,
머리카락은 늘 누군가의 감시 아래 놓여 있었다.
머리카락이 아니라 자유를 자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시절엔 왜 그리도 머리 모양에 민감했던 걸까.
학교는 머리카락 길이까지 규제했고,
어른들은 “머리에 신경 쓰면 공부는 언제 하냐”고 핀잔을 주곤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야 비로소 내 머리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세월이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오랫동안 이발소를 다녔다.
익숙하고 편했다.
머리를 자르고 면도까지 해주는 그 루틴은 나름의 안정감을 줬다.
게다가 남자가 미용실을 간다는 건 당시엔 흔치 않은 일이었다.
미용실은 여자들이 가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고,
남자 손님은 어쩐지 어색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동네에 미용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고,
나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됐다.
처음엔 낯설고 긴장됐지만, 이젠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잘 아는 단골 미용실도 생겼다.
같이 근무했던 여직원이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날 미용실에 갔는데 사람이 많아서 원장님 말고 다른 디자이너가 커트해줬거든요.
근데 그 머리가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결국 집에 와서 펑펑 울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웃음이 먼저 나왔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었다.
머리는 그저 자라는 털이 아니었다.
사람은 거울 앞에서 하루의 기분을 다듬는다.
스타일이 잘 나오면 괜히 기분이 좋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루 종일 찜찜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발소에서 바리깡 소리에 눈을 감던 어린 시절부터,
미용실 거울 앞에 앉아 “오늘은 조금만 다듬어 주세요”라고 말하는 지금까지.
머리는 늘 내 삶의 풍경 속 한가운데 있었다.
머리칼은 자라고, 자르면 또 자란다.
하지만 그 사이에 남는 기억과 감정은 쉽게 잘리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나는 오늘도 거울 앞에 앉아,
가위를 든 손을 바라보며 조용히 지난 시절을 떠올린다.
인생은, 어쩌면 머리카락처럼 자라고 또 깎이는 일의 반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