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 아빠 식사해요

by 글이로

“진이 아빠, 식사해요.”

아직 눈도 제대로 뜨기 전인데 부엌에서 날아오는 아내의 목소리는 알람보다 정확하다.

꿈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던 나는 반사적으로 “알았어요” 하고 대답한다.

그 한마디는 하루의 시동 버튼 같은 것이다.

이불을 밀어내고 몸을 일으키면, 아직 차가운 바닥의 감촉이 발바닥을 깨운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아내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욕실로 가서 양치질을 하고 손을 씻는다. 거울 속의 나는 아직 반쯤 잠들어 있다.

물로 얼굴을 대충 문지르면 정신이 조금 돌아온다.

일이 없는 날의 아침은 대체로 이런 순서다. 거창한 계획도, 분주한 출근 준비도 없지만,

이상하게도 이 루틴은 결코 가볍지 않다. 왜냐하면 그 끝에는 늘 따뜻한 밥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삼시 세 끼를 준비하는 일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먹어야 하고, 먹어야만 살 수 있다.

그 단순한 진실이 누군가에게는 끝없는 노동이 된다.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확인하고, 어제와 겹치지 않는 메뉴를 고민하고, 불 앞에 서서 시간을 맞추는 일.

하루 세 번 반복되는 이 일상이 수십 년 이어진다는 것은 어쩌면 작은 기적이다.


우리 집의 기적은 아내다. 그녀는 늘 변함없이 아침을 준비한다.

그것도 늘 다른 메뉴로. 계란 하나를 부쳐도 어제와는 다르게, 같은 된장국이라도 미묘하게 다른 맛으로.

밥상은 계절을 닮고, 날씨를 닮고, 때로는 나의 기분까지 닮는다.

나는 그저 숟가락을 들뿐이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의 시간과 마음이 담겨 있다.


한 번은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수십 년간 음식 하기가 지겹고 힘들지 않아?”

솔직히 말하면, 나는 며칠만 반복해도 귀찮아지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했고, 시간 지나서는 책임감과 보람에서 했고, 이제는 습관이 되어서 힘든 건 모르겠어.”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책임감과 보람, 그리고 습관.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지만, 그 셋을 엮으면 결국 사랑이라는 뜻이 되지 않을까.

사랑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 아침밥을 짓는 손끝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화려하지 않지만 빠지면 바로 티가 나는 것.


그래도 아내는 가끔 솔직해진다. “한 번씩은 밥 하기가 귀찮지.” 그 말을 듣고 나는 괜히 웃었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남이 해준 음식이라는 말.

그 말이 괜히 생겼겠는가. 누군가의 노고가 스며든 한 숟가락이라 더 깊은 맛이 나는 것이다.

나도 가끔 요리를 한다. 가족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먹고 싶은 메뉴가 있을 때다.

레시피를 들여다보며 어설프게 칼질을 하고, 간을 맞춘다며 이것저것 넣다 보면 부엌은 전쟁터가 된다.

그럴듯하게 완성된 요리를 내놓으면 나는 은근히 긴장한다.

맛이 없으면 어쩌나, 싱겁다 하면 어쩌나.

그런데 아내는 언제나 한 숟가락 먹고 말한다. “맛있네, 잘했어.” 그 말은 양념보다 강력하다.

내가 흘린 서툰 땀과 엉성한 모양새까지 다 품어주는 말.

그 순간 나는 고맙고, 미안하고, 또 조금은 행복해진다.

내가 평소 아무렇지 않게 받아먹던 밥 한 끼가 얼마나 많은 배려 위에 놓여 있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거창한 행복을 찾느라 바쁘다.

더 큰 집, 더 좋은 차, 더 멋진 여행. 하지만 하루의 시작과 끝을 붙들고 있는 것은 결국 밥상 하나다.

마주 앉아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를 듣는 시간. “많이 먹어”라는 말 한마디.

그 평범한 장면이 무너지면 삶도 쉽게 기울어질 것 같다.


아내의 “진이 아빠, 식사해요”라는 부름은 단순한 호출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도 함께 살아가자는 신호이고, 서로를 책임지겠다는 약속이며,

가족이라는 이름의 울타리를 다시 세우는 의식이다. 나는 그 부름에 대답하며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한다. 오늘은 조금 더 감사하게 먹자고, 언젠가는 더 능숙하게 요리해 보자고.

어쩌면 인생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이런 반복의 총합인지도 모른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 밥상에 앉고, 서로의 수고를 조금씩 나누는 일.

그 속에서 우리는 늙어가고, 또 단단해진다. 그래서 나는 안다.

내 하루의 시작이 부엌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나 또한 내 자리에서 밥 짓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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