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바위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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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로

나는 얼굴이 크다. 형제들 사이에서도 당당히 1등이다. 가족사진을 보면 대충 훑어봐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내 얼굴이다. 형제들이 슬쩍 웃는 것도 결국은 나 덕분이다.


어릴 적엔 동네 어른들이 “남자는 얼굴이 커야 듬직하지”라며 쓰다듬어 주셨다. 그 말 덕분에 큰 얼굴이 오히려 자랑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세상은 변했다.


이제는 조막만 한 얼굴이 미의 기준이란다. 잡지 속 모델, 드라마 주인공 모두 얼굴이 손바닥만 하다. 나는 그 옆에서 괜히 얼굴이 더 커 보인다. 유행이 이렇게 얄궂다.


그렇다고 마냥 불행하진 않다. 나는 가끔 “머리가 크면 뇌도 크겠지”라는 근거 없는 위안을 삼는다. 물론 곧이어 ‘지능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는다. 그래도 이런 자기 위안이 있어야 세상 살 맛 나지 않나.


실생활의 불편은 의외로 많다. 모자를 사러 가면 ‘프리사이즈’라는 단어가 괜히 비웃는 것처럼 느껴진다. 쓰고 나면 귀는 덮지도 못하고 꼭대기만 얹힌다. 결국 인터넷에서 ‘빅사이즈 모자’를 찾아 헤맨다. 작은 얼굴을 가진 사람은 절대 이해 못 할 고충이다.


아내도 가끔 내 얼굴을 소재로 농담을 한다. 여름날 마스크팩을 붙여주다가 “원래 얼굴 전체를 덮는 건데, 당신은 왜 남아?”라며 깔깔 웃는다. 크림도 보통 사람의 두 배는 발라야 한다. 내 얼굴은 화장품 회사의 충성 고객이다.


그래도 얼굴이 크면 좋은 점도 있다. 단체사진에서 늘 중심을 차지한다. 나는 아무리 구석에 숨어도 결국 사진 속 주인공이 된다.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덕분에 “그때 그 사람” 하면 다들 바로 나를 떠올린다.


생각해 보면 미의 기준이란 늘 바뀐다. 오늘은 작은 얼굴이 유행이지만, 내일은 또 모른다. 언젠가는 다시 큼직한 이마와 큰 얼굴이 멋으로 돌아올지. 그날이 오면 나는 시대를 앞서간 얼굴이 되는 셈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크림을 듬뿍 바르고, 작아 보이는 모자를 굳이 눌러쓰며 하루를 시작한다. 속으로는 이렇게 다짐한다. “그래, 내 얼굴은 크다. 하지만 내 웃음도 크고, 내 삶도 조금 더 크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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