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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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로

세상에 가장 오래 지속되는 전염병이 있다.

치료제도 없고, 예방주사도 없다. 한 번 걸리면 완치는 불가능하다. 잠시 잠잠할 뿐, 다시 어느 틈에 재발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의 얼굴엔 유난히 빛이 돈다.

사랑이 그것이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세상의 균을 갖고 있다. 그는 고추장을, 그녀는 마요네즈를 좋아한다. 그는 밤 12시에 야식을 시키고, 그녀는 저녁 7시에 이미 식탁을 정리한다. 그는 “귀찮아”를 입에 달고, 그녀는 “그래도 해보자”를 주문처럼 외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몇 해가 지나면 고추장 마요네즈 비빔밥이 둘의 단골 메뉴가 된다, 밤 10시쯤이면 둘 다 동시에 출출함을 느낀다. 서로의 바이러스가 서서히 번진 것이다.


이런 감염은 아주 은밀하게 진행된다. 남편이 퇴근 후 습관적으로 켜는 뉴스 소리에 아내가 처음엔 짜증을 낸다. 그런데 남편이 출장 간 밤, 조용한 거실이 허전해진 아내는 스스로 리모컨을 들어 뉴스 채널을 튼다. “이상하네, 이 소리가 없으니 좀 쓸쓸하네.” 그 순간, 감염은 완성된다. 결혼 전부터 아내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이 닭발을 뜯을 때마다 "이걸 어떻게 먹냐?"며 코를 찡그리던 그녀가 어느 날, 혼자 닭발 포장마차를 찾는다. “그 사람 없이 먹으니 더 맵네.”하며 눈물을 훔치는데, 사실 매워서인지, 그리워서인지는 모른다.


감염의 특징은 서로를 닮게 만든다는 것이다. 맵지 않던 사람이 점점 매운맛을 찾고, 커피에 설탕을 넣던 사람이 블랙으로 바꾼다. “이건 너무 쓰다”라던 그가 이제는 “이 쓴맛이 좋아”라고 말한다. 결국 입맛도 닮고, 취향도 닮아간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서로의 삶이 한데 섞여드는 증거다.

물론 나쁜 감염도 있다. 한쪽의 짜증이 전염되면 집 안 공기가 탁해진다, 피곤이 번지면 대화도 줄어든다. 그러나 선한 감염이란 게 있다. 가령 한쪽이 웃을 때, 다른 한쪽이 덩달아 웃는 것. 그건 어떤 항체도 막을 수 없는 강력한 바이러스다.


살다 보면 우리는 자주 ‘감염’의 경계를 두려워한다. “너 때문에 내가 변했어”라고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변하지 않는 관계란 얼마나 건조한 것일까. 물이 썩는 건 흐르지 않아서이고, 사람이 멀어지는 건 서로에게 전염되지 않아서다.


사랑의 본질은 전파력에 있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상대에게 옮겨가고, 다시 내게 되돌아온다. 그 왕복의 반복 속에서 둘은 같은 리듬으로 숨을 쉰다. 전염의 과정이 바로 친밀함의 증거다.

그러니까 오래된 부부란, 서로의 바이러스가 너무도 완벽히 뒤섞여 이제는 구분이 불가능한 사람들이다. “이건 당신 버릇이야.” “아니, 그건 당신한테 배운 거야.” 끝없는 논쟁이지만, 사실 둘 다 맞다. 서로를 감염시키며 살아온 세월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이란, 선한 감염의 역사다. 처음엔 타인의 습관이 낯설고 불편하지만, 어느 순간 그 낯섦이 그리움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체온과 버릇, 말투까지 공유하며, 한편의 오래된 전염병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묘하게도, 그 병에 걸린 사람들은 누구보다 오래 산다. 웃음이라는 항체 덕분일 것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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