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스티커, 빨간 스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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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로

어느 방송사의 프로그램에서 이혼한 부부의 이야기가 방영되었다.

주방에서 사용하던 식기와 생활용품을 하나씩 나누는 장면이 나왔다.


남자는 파란 스티커를, 여자는 빨간 스티커를 붙이며 각자의 물건을 정리했다.

한때 함께 사용하던 물건들이 하나씩 분리되어 가는 모습이 씁쓸하게 보였다.


결혼식 사진, 아이가 어렸을 때 함께 찍은 가족 앨범도 화면에 비쳤다.

그 앨범을 누가 가져갈지, 아니면 없앨지, 혹은 아이의 선택에 맡길지를 두고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그 순간, 화면을 보는 나의 마음에도 묘한 공기가 흘렀다.


세상이 참으로 많이 변했다. 사랑의 형태도, 결혼의 의미도, 이별의 방식도 바뀌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런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직접 마주하는 게 낯설다.

누군가의 사생활이 방송의 소재가 되는 시대라지만, 이혼의 과정까지 공개되는 것은 왠지 모르게 거북하다.

물론 부부가 함께 살다가 헤어질 수도 있다. 인생이란 언제나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억지로 미워하며 사는 것보다는 서로의 행복을 위해 떠나는 선택도 존중할 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다. 이혼한 뒤에도 아이를 매개로 이어지는 인연이 있다면,

그 관계는 단순히 끝이라하기 어렵다. 끊을 수 없는 정(情), 지워지지 않는 시간의 흔적이 남는다.


그런 복잡한 감정을 한낱 오락프로그램처럼 다루는 요즘 방송들이 늘고 있다.

‘돌아온 솔로’라며 웃고, 다시 사랑을 찾는다는 제목으로 포장되지만,

그 이면에는 상처와 아픔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혼이 더 이상 감추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이 유행처럼 대중적 흥밋거리로 다뤄지는 것은 불편하다.

누군가의 아픔이 누군가에겐 단순한 재미로 소비된다는 사실이 나는 좀 슬프다.


요즘 언론에서 보이는 이혼 남녀의 가십들은 마치 이혼을 하나의 트렌드처럼 만든다.

“저 사람도 했으니 나도 할 수 있다”는 식의 가벼운 시선이 결혼의 책임과 의미를 흐리게 만든다.


나는 그래서 그런 방송을 잘 보지 않는다. 누군가의 선택을 비난하려는 마음은 없다.

다만, 이혼이라는 일이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할 인간의 이야기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서로를 이해하고, 포기하지 않으려는 부부가 더 많다.

이혼율이 높아져도 여전히 백년해로하는 부부가 훨씬 더 많은 이유다.

결국 결혼이란, 함께 견디며 자라는 일이다.

그 소중한 의미만큼은, 어떤 시대에도 변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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