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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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로

내일이 마감이다. 전문가 지원서 제출일이 바로 눈앞인데, 나는 오늘 저녁이 되어서야 원서를 꺼냈다. 이름과 연락처, 자격증 번호, 특화 분야를 입력하는 동안 묘한 긴장감이 밀려왔다. 손끝은 분주하고 머리는 복잡했지만, 마지막 확인 버튼을 누르자 ‘그래도 이제 끝냈다’라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막혔던 속을 비운 듯 후련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마감 직전의 긴장감과 그 직후의 해방감. 그 양가적인 감정이 내 인생의 리듬처럼 반복됐다.


우리는 언제나 마감이라는 선(線)을 향해 살아간다. 학교 시절에는 숙제 제출 마감, 회사에서는 보고서 제출 마감, 사회에서는 세금 납부 마감. 인생에도 마감은 있다. 젊음의 마감, 기회의 마감, 그리고 생의 마감. 그렇게 모든 시간은 마감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마감에 닿기 직전에서야 비로소 진심을 다한다. 그때의 몰입은 기적처럼 짜릿하다.


직장에 다닐 때도 그랬다. 사업 신청 마감일이 다가오면 모두가 분주했다. 사이트는 접속이 되지 않고, 프린터는 말을 듣지 않으며, 전화기에는 민원이 쏟아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때의 열기가 나는 싫지 않았다. 마감은 사람을 괴롭히지만 동시에 살아 있게 만든다. 끝이 정해져 있어야 비로소 시작이 가능하고, 압박이 있어야 집중이 생긴다.


사람들은 왜 마감 직전에야 움직일까. 나도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게으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인간은 막다른 길에서 가장 창의적으로 되기 때문 아닐까. 아무 기한도, 아무 한계도 없다면 우리는 결코 최선을 다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마감은 우리 안의 에너지를 불러내는 마법 같은 스위치다.


교통 범칙금 고지서를 받아 든 날을 떠올린다. 납부 기한이 지나면 가산금을 내야 한다는 문구가 또렷하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 기한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직 시간 있겠지’라는 안일함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그제야 생각이 또렷해진다. 마감은 우리의 시간을 현실로 되돌리는 일종의 알람이다.


작가들도 원고 마감 앞에서 피를 말린다고 한다. 며칠, 며칠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정작 명문은 마감 전날 새벽에 탄생한다. 그건 우연이 아니다. 시간의 벼랑 끝에서 인간의 집중력은 다른 차원으로 진화한다. 쫓기고, 압박받고, 초조해진 순간, 우리는 가장 솔직하고도 강렬한 에너지를 쏟아낸다. 그러니 마감이야말로 창조의 불씨다.


나는 마감이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공정하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을 주고, 누구나 같은 시계를 바라보게 한다. 그 안에서 각자의 태도와 선택이 드러난다. 어떤 이는 포기하고, 어떤 이는 끝까지 달린다. 마감은 결국, 인간의 진심을 드러내는 시험대다.


그렇다고 마감이 늘 성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때로는 놓치기도 하고, 미완으로 끝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미완의 경험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다음 마감을 향해 다시 달릴 수 있는 힘이 거기서 생긴다. 실패의 기억 속에도 성장의 씨앗이 있다.


오늘 지원서를 마치며 문득 생각했다. 인생의 모든 일에도 마감이 있다면, 나는 그 마감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후회일까, 안도일까.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중요한 건 완벽한 결과가 아니라, 마감이라는 벼랑 끝에서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 본 용기다.


결국 마감은 나를 몰아세우는 적이 아니라 나를 깨우는 동반자다. 미루고, 버티고, 주저하던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존재. 그 덕분에 나는 오늘도 ‘마침’이라는 단어를 통해 ‘시작’을 배운다. 그래서 내일의 마감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기다려진다.

마감이 있기에. 그 끝이 곧 또 다른 출발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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