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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봉호 Sep 10. 2023

공간의 재발견 : 별밤

3부 소리를 찾는 사람들

  

   갑질, 먹방, 국뽕, 가심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21세기 이후 등장한 신조어라는 부분이다. 신조어는 세월이 흐르면서 살아남거나 사라진다. 살아남은 신조어는 자연스레 표준어로 흡수되기도 한다. 3장에서 소개하는 엘피바 역시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단어다. 무려 7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LP가 버젓이 존재하는데 엘피바가 20년 연식의 신조어라니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1948년 브루노 발터가 지휘봉을 잡은 뉴욕 필하모닉과 나탄 밀스타인이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다. CBS는 이를 LP(Long-Playing Record)라 불리는 음반으로 제작한다. 1980년대만 해도 LP로 음악을 트는 카페는 흔한 풍경이었다. 이후 수십 년간 LP를 수집했던 음악광들이 카페를 개업한다. 음악카페, 뮤직바, 웨스턴바 등으로 불리던 명칭이 차츰 엘피바로 불려지기 시작한다.  


   여기에 LP라는 물성에 관심을 가진 MZ세대가 생겨난다. 서울레코드페어(서래페)에 가보면 절반 가량이 30대 이전의 젊은이다. MZ세대는 LP보다 바이닐이라는 명칭에 익숙하다. 엘피바의 사촌동생 격인 바이닐펍은 이들이 음반문화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이다. 나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신촌의 엘피바를 주로 찾았다. 신촌역에서 연대정문 사이에 위치한 먹자골목에 엘피바가 우후죽순처럼 문을 연다.


   회사동료와는 <밤과 음악 사이>라는 가요엘피바를 자주 갔다. 일층은 주점, 지하는 댄스홀로 만든 이곳은 체인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약속장소가 주로 홍대지구다 보니 요즘은 <크림>, <모토>, <철스뮤직>, <별밤> 엘피바에 주로 들린다. 이외에도 홍대지구에는 20여 개의 엘피바가 포진해 있다. 선택지가 많다 보니 새로 오픈한 엘피바에도 들려본다.   


   신촌과 홍대를 벗어난 엘피바도 빼놓을 수 없다. <20세기 소년>은 광고업계에서 일하던 인물이 제주에 자리를 잡으면서 오픈한 엘피바다. <뮤즈 온>은 신사동과 해운대에 같은 인테리어로 운영하는 곳이다. 이촌동 <카펜터즈>는 알이에프 멤버가 사장이다. 명륜동에 이어 대학로에 오픈했던 <올맨>은 지금은 없다. 2020년 지병으로 작고한 재즈싱어 박성연이 운영했던 <아뉴스>는 이화동 시절에 자주 갔다.


  2001년 오픈한 엘피바 <별밤>은 라디오 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이름을 따왔다. 서교동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팝음악을 주로 튼다. 사장이 나랑 동갑인 관계로 팝의 전성기였던 80년대 감성을 공유할 수 있다. 그의 애청곡은 그룹 저니(Journey)의 ‘Faithfully’다. 넓찍한 좌석배치를 자랑하는 이곳의 인기메뉴는 안주를 포함한 맥주세트다. 6종의 국산 및 수입병맥주를 골라서 주문하면 된다.  

  

   지하에 위치한 <별밤>에 함께 방문한 지인은 30여 명에 달한다. 음악문외한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곡이 나오기에 모임장소로도 나쁘지 않다. 어디선가 들었던 대중음악의 향수를 끌어당기는 엘피바, <별밤>은 그런 곳이다. 코로나19로 영업시간제한이 있던 때는 엘피바의 암흑기였다. 대부분의 엘피바는 새벽 2~3시까지 심야영업을 한다. 다행히도 <별밤>은 환란의 시기를 무사히 넘겼다.   


   여타 엘피바처럼 <별밤> 카운터에는 혼술을 즐기려는 손님이 자리 잡는다. 이 공간에서 친구나 선후배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별밤>은 외부음식 반입이 가능하다. 단 주변에 불쾌감을 주는 향이 강한 음식은 자제해야 한다. 음악볼륨과 신청곡은 엘피바 운영자의 권한이니 무리한 요구는 금물이다. 애연가를 고려한 엘피바도 적지 않다. <별밤>은 큼직한 흡연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별밤을 포함한 엘피바의 치명적인 매력은 신청곡이다. 원하는 음악이 나오면 박수를 치거나 떼창을 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지나친 고성방가는 금물이다. 나는 주로 이른 저녁에 엘피바에 방문한다. 손님이 몰리기 전에 여유 있게 신청곡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사장이 좋아하는 장르 위주로 신청곡을 적기도 한다. 이왕이면 음악의 즐거움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예전 신청곡을 기억했다 틀어주는 친절한 사장도 있다.

    

   어떤 날은 내가 엘피바를 직접 운영하는 꿈을 꾼다. 음악이 흐르는 그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지인들로 가득하다. 어떤 곡을 틀어도 즐감하는 이들과 새벽까지 시간을 보낸다. 배낭여행을 갈 때에는 신경 쓰지 않고 가게문을 닫는다. 과연 이런 엘피바가 존재할까. 주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엘피바 분위기에 어울리는 손님으로 지내고 싶다. <별밤>에는 언제나 ‘소리를 찾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 공간의 재발견 : 엘피바 별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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