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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봉호 Sep 14. 2023

공간의 재발견 : 디스크 유니온

7부 뭐라도 사겠지 



   올해 2월에 지인과 도쿄에 다녀왔다. 기억해 보니 10번째 일본행이더라. 한국처럼 대중교통과 치안이 훌륭한 일본은 배낭여행으로 적격이다. 내게 일본행은 여행이라기보다 목적 있는 방문에 가깝다. 매번 들려야만 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레코드점이다. 한국보다 2배가 넘는 인구를 가진 섬나라, 그곳에는 수백 개의 레코드점이 존재한다. 일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가게가 레코드점이다.  


  1990년대만 해도 서울시내 곳곳에 음악이 흘러나왔다. 레코드점에서 틀어주는 리듬과 멜로디가 마음을 가벼이 해줬다. 음원의 시대가 열리면서 레코드점도 서점처럼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다. 좋았던 시절은 늘 빛의 속도로 자취를 감춘다. 서울에서 홍대와 명동을 제외하고 오래된 레코드점을 찾기는 만만치 않다. 반면 음반에 관한 관심도가 한국보다 높은 일본에는 아직도 레코드점이 적지 않다. 


   나는 1997년에 일본에 처음 방문했다. 목적은 도쿄 레코드점 순방이었다. 당시 발견한 중고레코드점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가게가 <디스크 유니온>이었다. 한국말로 하면 음반연합 정도 되려나. 여하튼 이곳은 규모나 소장음반 면에서 경쟁력이 있는 공간이었다. 말로만 듣던 수백 만원의 희귀 음반에서부터 유명음악가의 알려지지 않은 음반까지 판매하는 곳이었다. 


  당시의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이후 <디스크 유니온>은 일본 전역에 등장한다. 2023년 9월 기준으로 무려 48개의 점포를 가진 일본음반점의 고질라가 되었다. <디스크 유니온>은 장르별로 매장을 운영하기도 한다. 자주 가는 신주쿠를 예로 들어 보자. 이 동네에는 무려 18개의 점포가 있다. 재즈, 록, 헤비메탈, 프로그레시브, 펑크, 인디, 라틴, 제이팝, 클래식, 애니송, 댄스뮤직에 이르는 단일매장을 자랑한다. 


  신주쿠는 명동처럼 숙소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 하지만 이동시간을 고려하면 신주쿠에 숙소를 고려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외국방문에서 시간은 돈과 다름없다. 게다가 신주쿠에는 하루에 다 돌아볼 수 없는 10개의 <디스크 유니온>과 수십 개의 음반점이 존재한다. 음반덕후에게 신주쿠는 일종의 성지와 다름없다. 그러다 보니 중고음반의 회전율도 빠른 편이다.      


  <디스크 유니온>에서 가장 선호하는 매장은 재즈점이다. 1990년대 후반에 홍대에 <Only Jazz>라는 음반점이 있었다. 취지는 좋았지만 수요층이 얇다 보니 몇 년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이후 황덕호 작가가 운영하는 <After Hours>라는 재즈전문점이 오픈했지만 가게를 이전한다. 이런 연유로 <디스크 유니온> 재즈점은 신주쿠, 시부야, 오차노미즈, 키치죠지 4곳을 모두 방문했다. 


   일본에서 구입하는 중고음반의 경쟁력은 보관상태에 있다. 다른 나라에서 구입하는 중고음반에 비해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깨끗한 상태를 자랑한다. 매사 꼼꼼한 일본문화의 오랜 습성 때문이다. 보관등급이 B만 돼도 신품과 다를 바 없는 음반을 구입할 수 있다. <디스크 유니온> 역시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음반상태에 예민한 이라도 B등급 이상이라면 안심해도 무방하다.  


   30만 원대의 고가 LP는 구해달라는 후배와의 에피소드도 있다. 출발 전에 리스트를 받았는데 막상 결제를 하려다 하니 고민이 앞섰다. LP는 겉으로 봐서는 튀거나 스크래치가 나는 현상을 잡아내기가 어렵다. 고민 끝에 후배가 요청했던 LP는 구입을 포기했다. 귀국해서 음반가격을 받았다가 혹시나 LP에 문제가 있어 오해가 생길까 두려워서였다. 늦었지만 지면을 통해 당시의 미안한 감정을 토로해 본다.   


   방문 횟수가 잦다 보니 <디스크 유니온>에서 구한 음반도 상당하다. 사재기보다는 10장 내외의 진액만 구입하자는 생각이지만 막상 음반을 발견하면 지름신을 막아내기가 힘들다. 요코하마, 치바, 사이타마 지역의 <디스크 유니온>은 내년부터 방문해 볼 계획이다. 신주쿠와 시부야 정도의 규모는 아니겠지만 방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다. 요코하마의 해안가의 달달한 풍경은 덤일 것이다. 


   이번 일본행에서 확인한 점은 중고음반 가격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매장직원 말로는 일본음반점도 위기라고 했다. 실물로 음악을 감상하려는 문화가 점점 사라져 간다. 그럴수록 자취를 감춘 공간에 대한 아쉬움이 커진다. <디스크 유니온>도 언젠가는 자취를 감출 것이다. 이언 헌터(Ian Hunter)의 노래 ‘Old Records Never Die’를 듣는다. 나는 기적의 공간을 꿈꾼다. 그곳에는 사연있는 레코드가 숨 쉬고 있다.      



< 공간의 재발견 : 디스크 유니온 신주쿠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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