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그림책

나의 두 번째 연인

by 할수 최정희

100-1 백일백장 쓰기 프로젝트 사명서(2022. 11.01)


펭귄은 무얼 바라보고 있을까.

그림책을 처음 본 때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요즘은 태어나는 순간 그림책과 함께 사는데. 그림책을 처음 보는 순간 난 그림책에 빠지고 말았다.


국민학교 4학년 때였다. 이때는 1960년대로 새마을 운동이 한창때고 월남 파병을 하던 시기였다. 학교에서 매일 듣는 노래는 동요가 아니었다. 새벽종이 울렸네와 백마고지 용사들아 같은 새마을 노래와 군가였다. 우리 집 조명은 호롱불이었다. 우리집에는 라디오도 없었다. 신문이라던가 텔레비전은 세상에 있는 줄도 몰랐으니, 그림책은 내게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담임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신데렐라, 백설공주 같은 그림책을 몇 권 들고 오셨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책이 있다니!. 이렇게나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니! 교과서 이외의 책을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이날부터 도서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림책을 처음 본 날. 도서실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안 날. 바로 도서실에 가기 시작했으니. 매일 도서실 문을 닫을 때까지 책을 읽었으니. 덜 읽은 책은 서가의 책 뒤에 숨겨두었다가 다음 날 와서 꺼내 다시 읽었으니. 도서실에서 책을 읽는 아이는 나뿐이었는데. 책을 숨겨두기까지 했으니. 그림책은 첫눈에 빠진 나의 두 번째 연인인 것이 분명하다.


나의 첫 번째 연인은 따로 있다. 이 이야기는 차차 해야겠다. 지금은 그림책 이야기 중이니까. 그날부터 전래동화, 이솝이야기, 안데르센 이야기, 위인전과 문학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탐정소설을 읽으며 홈즈와 루팡에 빠져들기도 했다. 십 대 후반엔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며 끙끙대기도 했다.


나의 책 읽기는 반쪽 사랑이었다. 백일장에서 상을 타는 친구가 어떻게나 글을 잘 쓰는지 신기했다. 난 일기 숙제 세 줄 채우기 어려운데. 저런 글 한번 써봤으면 하는 맘뿐이었고, 독후감조차 써 본 적이 없다. 책 읽기만 좋아했지 문학소녀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숲해설가다. 숲에서 활동하면서 스토리텔링 생태공예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스로리텔링 생태공예 수업에 긴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까. 다시 그림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림책의 그림 몇 장 글 몇 줄 속에는 우리가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삶이 녹아 있었다. 그림이 예뻐서 그림책인 줄 알았는데. 그림책이 그냥 그림이 있는 책이 아니었다. 소설 한 권과도 맞먹는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지금의 그림책 읽기는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고 있다.


스토리텔링 생태공예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런 자연물 공예는 처음 해본다며 신기해한다. 또 스토리를 이용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다 보니, 시간이 언제 흘러갔는지 모르겠다고. 자신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힐링되었다고. 참여자들은 웃으며 말한다. 이 수업을 진행하는 나도 그들과 함께 힐링되는 좋은 프로그램인데. 아쉽게도 불러 주는 곳이 별로 없다.


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나서 어떤 기관에 홍보를 갔는데 담당자가 질문했다. 논문 같은 근거가 있느냐고. 교육기관의 담당자가 공예와 스토리텔링의 장점을 몰라서 묻겠는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고졸이었기 때문이다. 학사 학위라도 있었으면 이런 것 전공한 사람이라고 명함이라도 내밀었겠는데.


작년에 또 그런 일이 있었다.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스토리텔링 생태공예 프로그램을 하기로 했는데 내 이름으로는 계약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인데. 내게 학위가 없어서라고 했다. 아직도 졸업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 많다. 나는 지금 방송대에 다니고 있다. 대학 졸업장이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인데 졸업장이 없어서 못하고 싶지 않아서다.


짧은 동화와 그림책 이야기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삽화엔 내가 만든 생태공예 작품을 한두 개 삽입하려고 한다. 또 숲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쓸 것이다. 하루 하나의 글감, 백 개의 글감을 찾는 일도 만만하지 않은데. 그 글감을 이용하여 하루에 글 하나 쓴다는 것은 내게는 큰 도전이다. 이제까진 글 한 개를 쓰는데 일주일 정도 걸렸다. 퇴고를 하다 보면 고칠 곳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글도 고칠 곳이 보이는데.


백백이라는 프로젝트에 도전한 이유는 글쓰기에 몰입해 보고 싶어서다. 나는 몰입해 보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몰입해 본 적이 없다. 내 몸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인데 다른 사람과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글쓰기를 하게 되어 무척 기대가 된다.


나의 스토리텔링 생태공예 프로그램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한 몫했다. 나를 불러 주는 곳이 늘어나기를. 그리하여 스토리텔링 생태공예를 하는 짧은 순간이라도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백일백장 글쓰기를 완주할 수 있기를.


백백에 도전하신 여러분 파이팅!!

나도 파이팅!!


생태공예힐링핼퍼1호: 할수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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