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누군가의 우렁각시가 되고 싶어
송찬호 시인의 동시집 ' 여우와 포도'를 읽었다. 그중에서 악어와 악어새를 읽을 때, 내 가슴을 탁 친 구절이 있었다. 이 동시는 악어새가 악어 이빨 사이에 낀 고기 찌꺼기를 빼먹는 동시다. 아래는 내 가슴을 탁 친 구절이다.
악어가 입을 닫았다
연주가 끝나고
피아노 뚜껑이
탁, 하고 닫히는 것 같았다.
악어가 먹이를 물고 입을 닫는 장면이 머릿속에 훤히 떠오른다. 사람이나 동물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악어의 이빨이 피아노 건반이라나! 시인의 상상력이 놀랍다. 이 동시의 삽화를 보면 악어의 아래 이빨이 피아노 건반이다. 악어 등 위에서 새가 기타를 치고 관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새 한 마리는 악어의 콧등에서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입 속 건반 위에는 고기찌꺼기를 빼먹는 새가 있다.
악어새에겐 피아노 건반일 수도 있겠다. 악어가 입을 벌리고 다가오면 악어새는 기쁠 것이다. 악어 이빨 위에 날개를 접고 내려 사뿐사뿐 걸어 다니며 콕콕 고기 찌꺼기를 빼먹을 때, 얼마나 신나고 흡족하겠나. 그러니 악어새가 악어 이빨을 걸어 다니면 고기 찌꺼기를 빼먹는 것은 랄라 룰루 피아노 소리가 나는 건반을 걸어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악어의 입속에 들어가면 날카로운 이빨에 살점이 찢어지고 우지직 뼈가 부러져 죽겠지만. 악어 이빨이 악어새에겐 우렁각시가 차려놓은 맛있는 밥상이 아니겠나. 새가 물고기 하나 잡으려면 물속을 세심히 살펴봐야 하고 물고기를 발견하면 잽싸게 날아내려 물고기를 부리로 잡아 물고 또다시 날쌔게 날아올라야 한다.
근데 악어새는 날갯짓 한 번 하지 않아도 되는, 부리로 꼭꼭 쪼기만 하면 되는 밥상이 눈앞에 차려져 있으니 얼마나 좋겠나. 무시무시한 악어가 악어새에겐 우렁각시인 것이다. 나도 가끔 누군가의 우렁각시가 되고 싶다. 내게도 이런 우렁각시가 있어서 종종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면 좋겠다.
우렁각시가 차려준 밥을 먹을 때, 우리의 감동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바로 음악이 아닐까? 죽은 나를 관속에 넣고 남은 가족이 관 뚜껑을 닫을 때 탁, 피아노 뚜껑 닫는 소리가 나면 좋겠다. 이때 내가 일생동안 아름다운 소리를 낸 피아노 같다고 가족들이 느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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