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작가는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어른들은 왜 아이의 반응를 바라며 아이를 울릴까?”라는 질문을 한다. 나는 이 물음을 “그때 왜 고모가 나를 울릴 생각을 했을까?”로 바꿔 읽는다. 나는 생각한다. 고모가 어린 나를 울린 그 일로 인해 "나는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고모는 나를 매우 사랑했다고 말한다. 고모의 이 말은 맞다. 그래도 고모는 나를 갖고 놀지는 말아야 했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즉 네 살에서 다섯 살 정도였을 때였을 것이다. 어느 날 고모는 옛날 옛적 이야기, 콩쥐와 팥쥐 같은 이야기를 하다가 훌쩍훌쩍 울었다. 아주 슬픈 듯이 울면서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며칠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나는 그때 고모를 따라 엉엉 울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모가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울리려고 우는 척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데 문득, 내가 이렇게 따라 울었던 장면들이 주르르 떠올랐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과 저번에 있었던 일과 조금씩 다르지만 이와 비슷한 일이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모는 내가 따라 울 때마다 활짝 웃으며 “아이고, 우리 정희.” 허면서 나를 끌어안았다는 것도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번엔 울지 않기로 작정했다.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모를 말말똥말똥 쳐다보았다. 고모는 내 마음을 읽어내곤 더 슬픈 척, 우는 연기를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바보가 아니야. 나를 울리려고 일부러 우는 걸 알아." 내가 따라 울지 않자, 고모는 울음을 멈추고 "정희 운다~ 운다~ 운다~" 하고 나를 놀렸다. 나는 더 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번 울음은 이전 울음과 달랐다. 이전 울음은 고모를 따라 운 것이고, 이번 울음은 고모가 나를 놀리는 게 싫어서 울었고, 고모를 따라 울었던 게 속상해서 운 것이다. 맘먹은 것과 달리 울어버려서 더 크게 운 것이다. 울면서 다짐했다. 다시는 따라 울지 않겠다고. 고모는 아번에도 만족스럽게 웃으며 "아이고, 우리 정희"하며 안아주었다. 나는 그런 고모를 뿌리쳤다.
고모가 왜 나를 울리려고 했는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그것은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니까. 대신 내가 그 일로 어떤 영향을 받았을지를 깊이 생각해 본다. 먼저 나와 고모 사이에 있었던 일이 심리학적으로 내가 어떤 영향을 받았을지 알아본다.
이런 경험은 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을 의심하게 만들고 감정 표현을 꺼리게 할 수 있다. 또 놀림의 대상이 되는 경험은 수치심을 만들고 관계에서 이중성을 학습하게 만든다. '다정한 사람도 나를 놀릴 수 있다.'는 배움은 가까운 관계에서도 거리를 두게 만든다.
지난 날 나는 '좋다' '싫다'라는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뒤로 반발 뒤로 물러났다. 내가 이런 성향이 된 건 고모가 내게 한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고등학교 입학 후 한 달쯤 지났을 때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담임 선생님이 70명에 가까운 아이들 중 세 명의 아이를 지목해서 말을 했다.
한 아이는 현모양처감이라고 했다. 현모양처감이란 말은 그 시대 여성에겐 찬사였다. 그 아인 착실하고 행실이 반듯 했으니, 선생님만이 아니라 반 아이들 모두 그렇다고 생각했다.
한 아이는 선생님에겐 이쁨을 받으나 친구들에겐 미움을 받는다고 했다. 이 아인 선생님둘에겐 이쁜 짓을 하고 이쁨을 받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그러지 않아 좋아 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선생님은 아이들이 어떤지 알아보는 능력이 있었다.
나머지 한 아이가 바로 나였는데 "정희는 냉정하다."였다. 나는 놀랐다기보다 충격을 받았다. 나는 예의 바르고 도덕성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성적이라 앞장 서지는 않지만 모든 일에 협력했다. 나는 다른 사람 눈에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무던하게 생활하는지라 나는 선생님의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짝꿍과 앞뒤에 앉은 아이 심지어 다른 분단의 아이들에게까지 찾아가 내가 냉정하냐고 물어봤다. 아이들이 나를 냉정하게 생각했더라도 "그래 넌 냉정해."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교무실로 갔다. 선생님에게 "왜 저를 냉정하다고 하셨어요?"라고 물었다. 선생님은 "정희 너는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나는 "아뇨. 저는 냉정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날 이후 계속 생각했지만 선생님이 왜 나를 냉정하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주 정말 내가 냉정한 사람인지 생각했다. 이 일이 나를 어린아이에서 생각하는 사춘기 청소년으로 넘어가게 했다.
내가 냉정한 사람인가를 자주 생각했지만, 나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가슴속 한구석으로 이 일을 밀어 놓았다. 무슨 일을 이해 못 하는 것은 그 자리에서 머물러 있다는 뜻이고 그것은 삶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한 발짝 건너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선생님이 내가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성향을 알아보았을 수도 있겠다고. 선생님이 나의 이런 성향을 냉정하다고 잘못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나는 마음이 열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일 뿐이다.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을 냉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냉정하다는 것은 사람을 차갑게 대하거나 쌀쌀맞게 대하는 태도를 말하니까.
작년에도 처음 만난 사람이 나에게 착하다고 했다. 사람을 쌀쌀맞게 대하는 사람을 착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실은 착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차갑게 대하지 못한다.
선생님이 말한 "정희는 냉정해."라는 한마디 말을 건너오는데 50년이나 걸렸다. "정희는 냉정하다.'는 선생님이 나를 잘못 표현한 말이다. 나는 이 말에 마침표를 찍는다. "나는 냉정한 것이 아니야. 사람 관계에서 마음이 열리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것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