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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같은 삶을 산 사람들

한글교실에서

by 할수 최정희

며칠 전 사회복지사가 말했다. “올해 문집 만드는 것 너무 힘들면 안 해도 괜찮아요.” 복지사의 말대로 교육생들도 글 쓰는 걸 힘들어하고 나도 이 일이 버겁다. 한 분만 혼자 글을 쓸 수 있고 다른 분들은 내가 그분들의 말을 듣고 그 말을 글로 써야 한다. 그래서 한 분 당 글 두 개만 쓰기로 했다..


지혜의 나무 12권의 마지막 장을 하눈 날 교육생들과 이야기를 좀 길게 나눴다.


”어데 가노? “ 한 교육생이 가방을 메고 아파트를 나서면 친한 친구가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이럴 땐 “ 영감 주우러 간다. 많이 주우면 하나 줄까?”라고 웃어넘긴다고 한다.


이때 내가 곧장 이어 말했다. “바로 그런 것 쓰면 됩니다." 이 교육생 저 교육생들이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또 “그것 쓰면 돼요.” “그것 쓰면 돼요.”를 연발했다.


복지관에서 문집을 만들어 한 권씩 준다면서 글을 쓰자고 하면 매번 고개를 젓던 분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교육생은 몇 달 전 아버지가 육이오 때 전사하셨는데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고 말하다가 눈물을 흘렸던 분이다.


작은 집에 얹혀 설며 온갖 일을 했는데도 먹을 것도 없어 굶기도 했고, 가난해서 학교에 못 가갔다는 말을 하다가 또 눈물을 쏟아내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던 분이다.


이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세 살 때 자기를 버리고 집을 나간 줄 알고 있었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젊은 과부가 된 며느리가 전사한 아들의 보상금과 집과 논밭을 팔아 들고 도망갈까 봐 때려서 맨 몸으로 쫓아낸 거였다.


옆 자리 교육생이 같이 눈물을 흘렸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고. 이 옆 자리 교육생의 삶도 만만하지 않다. 서당 훈장인 아버지가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된다며 글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 분은 9 살 때부터 가마솥에 불을 때 밥을 했고, 12살엔 남의 집에 식모 살러 갔다고 한다.


스무 살에 결혼을 했다. 근데 첫날 상을 뒤엎은 남편과 살아내느라 고생이 많았다. 그런데 씩씩하고 신명도 많다. 글자 한 자 모르면서 유행가 가사 모르는 게 없다. 진짜 아깝다. 글자만 알았다면 잘 풀렸을 건데.


또 다른 교육생은 희망원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입소자들을 학대했다고 뉴스에 나왔던 그곳이다. 가족이 같이 입소했는데 아버지 따로 엄마 따로 자기 따로 살아야 했다. 엄마를 따라 가려다 이마를 맞아 피가 났다는데 아직 그 흉터가 남아 있다. 이 교육생은 눈물을 흘리며 내게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내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일이 바로 그들의 삶이었다. 나는 이분들에 비하면 훨씬 가벼운 삶이었는데, 나는 왜 그리 무겁게 느꼈을까? 밥이 없어 굶은 적이 없었고, 가마솥에 불을 때는 일도 설거지도 한 적 없고 고등학교까지 잘 다녔는데 말이다. 대학교가 뭐라고 꿈이 뭐라고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겪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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