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드득뽀드득 펑펑
2년 전, 눈이 펑펑 오던 날이었다. 종로3가역에서 내려 뽀드득뽀드득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그 소리들을 즐기며 걸었다. 옆자리를 비우고 시간이 꽤 흘렀는지...
12월의 종로에서 눈을 맞고서야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익선동 입구의 술집부터 안쪽 작은 매장들까지 성탄 준비가 한창이었고 사람들의 들뜬 목소리가 좁은 골목골목 들려왔다. 연인들은 내려간 온도만큼 거리를 좁혀 걸었고 따스한 입김을 증기기관차처럼 폴폴 내뿜고 다녔다. 별생각 없이 산책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나왔었지만, 이 분위기에 나 혼자 청승맞게 걸어 다니기에는 장소가 적합하지 않아 좁은 골목을 빠르게 빠져나와 익선동 반대방향으로 무작정 걸었다.
어디를 가볼까 지도를 보며 고민하다 보니 세운상가가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상가에 들어가면 느껴지는 그 쿰쿰한 먼지 냄새와 물건을 잔뜩 쌓아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사장님들의 여유로운 믹스커피 한 잔이 보고 싶어졌다. 역 앞 횡단보도를 지나고 언젠간 나도 포근한 누군가와 따뜻한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겠지 생각하며 익선동과 그렇게 작별했다. 멀어질수록 차츰 겨울의 설렘보다는 겨울의 하얀 차분함이 마음속에 자리 잡혔고, 노래가 듣고 싶어 져 내 오래된 마샬 헤드셋을 가방에서 뒤적거리며 천천히 발을 옮겼다. 그렇게 한참을 가방만 응시하며 걸었고 헤드셋을 찾는 오랜 집중에 주변시야가 사라질 때쯤, 노래가 들려왔다. 이젠 가물가물 하지만 캐롤 풍의 오래전 팝송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은, 노래가 흘러나오는, 아주 크지도, 그렇다고 아주 작지도 않은 종로 거리의 매장으로 이끌기에는 충분한 자극이었다.
매장에 들어서니, 아직 바깥 냉기가 몸에 남아 있었는지 가벼운 입김이 나왔다. 입김 사이로 매장 왼쪽 벽면에는 꽤나 나이가 있어 보이는 테이프들이 보였고, 중앙에는 음반들이 알파벳 순으로 차곡차곡 꽂혀있는 것이 보였다. 노래를 꽤나 많이 들어왔다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처음 보는 음반들이 대부분이었다. 원래라면 심오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겠거니… 쓴 미소를 지으며 흥미를 잃고 나왔겠지만, 매장에 손님이라고는 나 혼자가 전부였고 오래간만에 찾아온 손님인 내가, 들어오자마자 나갔을 때 매장 주인이 꽤나 속상할 것 같아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조금만 더 둘러보고 빠져나가야겠다 생각하던 찰나 때마침 아는 노래가 나왔다. 패딩과 그 안의 티셔츠와 그 안의 맨살 위에 앉아있던 냉기가 완전히 빠져나가며 몸이 한 번 떨렸고 온기가 스며들었다.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은 그렇게 몸을 녹이며 들어왔다.
매장의 음악이 턴테이블로 재생되었는지, 그저 컴퓨터에 연결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는지 지금 와서는 알 방법이 없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바이닐들을 둘러보며 듣던 그 노래에서,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바이닐을 사고, 구매한 그 음반을 얼마나 소중히 집까지 가져가서, 자신이 애지중지 다루는 턴테이블 위에 어떻게 살포시 내려놓고 재생버튼을 누르는지… 느낄 수 있었다.
발걸음을 계산대 앞으로 옮겼다. 그 당시에는 턴테이블이라는 기계에 대해서만 대충 알고 있을 뿐 그것 외에 LP를 재생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가격은 어느 정도인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에, 카운터에 있는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 생각보다 값이 나갔던 턴테이블과 스피커 가격 탓에 고민을 하며 매장을 나서려던 순간,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녀와 매장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쳤고 이 사람들도 나처럼 따스함을 느끼고 나오길, 행복 한 줌을 품고 나올 수 있길 바라며 문을 당겨 잡아준 후에 나왔다. 따뜻한 온기와 음악에서 벗어나 다시 차갑고 자동차 소리만이 들리는 길거리로 나왔지만 전과는 달리 적막함보다는 충만함이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