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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Aug 04. 2021

굴곡진 꽃대






   햇볕이 따사한 봄날 뜨락에서 향내음을 품어내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꽃 한 송이 앞에 쪼그려 앉아 여흥을 즐기고 있다. 일찍이 새싹이 돋아날 때부터 지켜봐 왔던 터라 정감이 간다. 자세히 보면 꽃대에 굴곡이 있다. 이웃집 강아지가 짓밟아 꽃대가 부러져 이를 어렵사리 살려낸 아픈 상처다. 나의 둘째 아바타(아들)와도 같은 상처를 갖고도 이토록 아름다운 꼿 송이를 피어, 나를 행복케 하고 있다.


   4년 만에 대학 졸업장을 받아 쥔 아바타는 엔터프라이즈라는 렌터카 회사에 취직을 한다. 젊은이들의 로망인 포드 머스탱 새 차도 한대 뽑고, 양복은 패션아일랜드 “BONOBOS” 에서 뉴 패션으로 맞춰 입고, 대학교 때부터 사귀던 여자 친구와 테이트도 하면서 멋진 인생을 시작한다. 동양인 치고는 유별나게 훤칠한 키(193 cm), 잘생긴 얼굴에 어엿한 직장도 구했으니 뽐낼 수밖에.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찾아와 직장을 그만뒀다고 하면서 당분간 부모님 집으로 들어와 살게끔 허락을 해 달라는 것이다. 사연인즉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적발돼 이를 직장 상사에게 보고 했더니 회사에서 쫏겨나기 전에 자진 사퇴를 권했단다. 만약 회사에서 쫏겨날시는 훗날 다른 직장을 구하는데 커다란 결격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의기양양하고 뽐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풀이 죽어 방에 처박혀 나오질 않고 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나와 마주친 모습은 초라해져 간다. 음주 차량은 경찰에 압류돼 견인됐고 음주운전으로 인한 벌금, 교육, 사화봉사 활동 등 요구조건은 한국에서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가혹하다. 뜨락에 부러진 꽃대를 동여매 놓고 다시 살아나기만을 기다렸듯 나의 아바타도 이 고비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지켜볼 수밖에.  성인이 됐고 대학교육까지 마친 그에게 충고, 꾸중,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 혼자서 스스로 일어나야만 한다.


   보아하니 여기저기서 각종 청구서가 날아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청구서들을 엄마, 아빠 눈에 띄는 곳에 군데군데 놓았다. 마치 차고에 쥐새끼를 잡기 위해 주요 통로에 덫을 놓듯이, 이 청구서들을 보고서 도와줬으면 하는 저의가 분명하다. 아바타가 의도했던 대로 카드 청구서를 보게 됐다. 깜짝 놀랐다. 갚아야 할 금액이 무려 일만 삼천 불($13,000), 거기에다가 자동차 월 납입액이 오백 삼십 불($530), 전화비 등 대여섯 개의 청구서를 합하여 보니 감당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음주운전 전과자라는 것만으로도 당분간은 막노동 외에는 취업이 쉽지 않을 테니까. 우리는 그동안 각종 청구서로 무언의 대화를 했으니 거기에 대한 답을 해야 할 차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서 아내와 아바타 셋이 앉아 아바타에게 물었다. 카드결제 금액이 무려 일만 삼천 불이나 되는데 어찌 된 사연이냐고?  대학교에 다니면서 카지노에서 도박을 했단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당시에는 유행처럼 많은 대학생들이 카지노에서 도박을 즐겼던 것이다. 허지만 학생 신분인 처지에 어떻게 일만 오천 불짜리 신용카드를 발급받았는지 도무지 궁금하다.  내가 주재원으로 미국에 와서 크레디트 카드를 신청했을 시 급여 명세서와 회사 재직 증명서를 요구하며 겨우 오백 불 짜리 카드를 발급받았는데 아바타는 단숨에 일만 오천 불짜리 카드를 손에 쥐다니.  얘기인즉, 은행에 가서 아빠 회사에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더니 이처럼 거액의 카드를 만들어 줬다는 것이다. 추측컨데 둘 중의 하나다.  사람을 홀리는 남다른 재주가 있거나, 키 크고 잘생긴 동양 젊은이에 넑이 나간 어느 직원이 호의를 베풀어 줬든지.  미국 사회가 이토록 엉성한 면도 있다는 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한 푼도 도와줄 생각이  없으니 돈을 갚을 능력이 없으면 개인 파산선고를 하든지 아니면 스스로 대책을 강구하라고 했다. 미국 사회에서 개인 파산선고를 하면 십 년간은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정신을 못 차리고 천방지축으로 사회생활을 했던 대가를 치르게 해주고 싶었다. 그 사이에 정신을 차리면 십 년 후 그의 나이  34살. 그때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다.


   일주일을 지켜봤지만 아무런 대책 없이 방안에 은둔 중이다. 대책이 있을 수가 없다. 사람이 큰 충격을 받거나 곤경에 처하면 컴퓨터가 작동을 멈춰 버리듯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저 바보 같은 지난날을 후회할 뿐이다.  매일 밥상에서 마주치는데 고개를 처박고 식사를 하며 식사가 끝나자마자 방으로 냉큼 돌아간다. 나는 서서히 짜증이 나고 실망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바타에게

 “나라면  허드렛일을 해서라도 우선 급한 불을 끄고 보겠다”라고 주문했다.  그랬더니 아바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용직을 연결해주는 직업센터에 등록을 해놓고  전화 연락이 오기를 기다린다. 때로는 밤 12시, 새벽 4시, 시도 때도 없이 뛰쳐나간다. 주로 하는 일은 창고청소, 페인트 도우미, 야외 샤핑몰 청소, 손님 차에 크리스마스 나무 실어주기, 말 그대로 막노동이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모습은 보기에도 민망하다.  옷에 페인트가 범벅이 돼 있고 때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먼지투성이다.  엄마가 차려준 밥상은 마치 삼 일간 굶은 돼지처럼 숨도 안 쉬고 단숨에 깨끗이 먹어 치운다. 하루는 삼십 불도 벌고, 별 볼 일 없는 날은 두 시간짜리 노동으로 십오 불을 벌어오기도 한다. 허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카드는  최소금액만 내면 사용 정지를 면할 수 있고, 전화도 사용중지를 면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아바타 세상은 그렇게 사는 거야. 그라운드 제로에 새로이 집을 짓는 마음으로 해봐라”


   그럭저럭 두세 달이 지나니까 회사에 취직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어느 날 저녁은 목소리가 제법 낭랑하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금융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마쳤는데 모두 합격이 됐고 마지막으로 신원조회에서 하자만 없으면 된단다. 이삼일을 기다려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다른 회사 두세 군데  다시금 지원해본다. 역시 이력서와 면접에서 합격하고 신원조회에서   무소식이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음주운전 전과가 결정적인 하자로 기대가 꺾인 것이다.  나는 아바타에게 어떤 주문을 해줄 수 있는지 궁리해본다.

 “아바타, 너 취직하기가 쉽지 않을 거야. 전략을 바꿔라”

 “면접시험 시 음주운전 경력이 있는데 이게 문제가 된다면 더 이상 진행하지 말고 나를  이 자리에서 나가라고 말해주라” 고 해라.

문제점을 숨기는 것보다는 당당하게 먼저 밝히면 상대방에게 믿음을 줄 수 있다는 생각 에서다.


   이제 다섯 번째의 면접 날이다. 나는 아주 태연하게 행동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주님께 기도하고 있다. “주님, 어린양이 어리석은 삶을 살았는데 충분히 반성하고 뉘우치고 있으니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옵소서”.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아바타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빠 나 합격했어” 역시 내 주문이 유효했다. 음주운전 전과를 사전에 밝혔더니 마약 경력만 없으면 같이 일할수 있다고 한다. 부모의 존재란 한 세상 먼저 살았고,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괜찮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식들 앞에서 괜스레 나도 한때는 대기업 간부급으로 일할 시 부하직원을 30여 명 거느렸고 해외출장 시 거래선이 자기 전용기로 나를 픽업해줄 정도로 대단했었다고 개폼 잡는 것보다는 삶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지혜로운 멘토.


   멋진 양복을 다시금 꺼내 입고서 회사 출근을 시작한다. 회사도 정말 괜찮은 회사다. 미국에서 규모가 가장  물류운송회사 J.B Hunt . 연간 매출이 15 불에 달하는 최대 규모다.  앞에 놓여있는 꽃나무가 강아지에 짓밣혀 부러진 꽃대를 동여매어 주니까 어렵사리 영양분을 다시금 빨아올리기 시작한 그때와도 같다.  연간 매출이 삼백만  정도 되는 자그마한 엘에이  소재 오피스에서 일을 하는데 들어간    년도 안돼 한국계 대기업 서너 군데와 거래를 성사시켜 단숨에 매출을 칠백만 불로 끌어올린다. 보아하니 새벽 1시가 됐는데도 전화벨이 울리고 누군가와 업무 얘기를 하는  같아 보였다.  “누구니? 어찌 밤늦은 시간에?”  한국에서 걸려온 거래선 전화였단다. 문제가 있거나 상의할 내용이 있으면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했단다. 그래 그대는 역시 나의 아바타야.  정도는 돼야지. 사람이 살면서 누구나 실수를  수는 있지만 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책임감만이 자신을 차별화시킬  있기 때문이다.


   2년이 지나니까 알칸소 소재 본사로 와서 근무하라는 제의가 온다. 이를 수락하고 거래선을 찾아다니며 송별인사를 하는데 모두들 “당신이 떠나면 거래처를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라고 한다.   J.B.Hunt 와 같이 큰 대기업에서 한국사람이 찾아와 거래 제의를 한 사례는 당신이 처음이었고,  완벽한 이중언어 구사로 친근감이 더하여 거래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떠나자 마자 거래선이 이탈하여 매출이 반감된다면 거래선 관리에 문제가 있다 싶어 그동안 눈여겨봐 왔던 한국 젊은 친구를 접촉, 아바타 후임자로 회사에 천거를 한다. 회사에서도 쾌히 승낙한다. 불과 이삼 년 전만 해도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처럼 초라해 보이더니 거래선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를 대기업에 취직도 시켜 주다니 이젠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이 친구는 연봉 삼만 불짜리 봉급쟁이에서 오만 오천 불 짜리로 행운을 잡게 되었다.


   아바타가 이곳 생활을 청산하고 알칸소로 떠나던날 나는 내 앞에 마주 보고 있는 꽃 20송이를 사서 꽃다발을 건넸다. 그렇게 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니까 빚도 다 청산하고 조그마한 집도 장만했다면서 돌아온 추수감사절은 자기 집에서 모이자고 초대한다. 엄마, 아빠, 형 세 사람의 비행기 표도 사서 보내왔다. 설래인다. 굴곡진 꽃 대위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 그 향기에서  나의 자랑스러운 아바타 체취도 함께 묻어 나오는 것만 같다. 사진도 한컷 찍어 아바타 집을 방문할 시 액자 속에 이 꽃을 담아, 벽에 걸어 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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