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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Aug 05. 2021

촛불

   주말 이른 아침 성당 제대 앞에 커다란 부활초 위에 타오르고 있는 촛불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아 한 주간을 정리하고 있다. 오늘따라 촛불은 유난히 밝은 빛이다. 촛불은 우리에게 소원과 희망으로도 다가온다. 또한 자신을 태워 빛을 밝히는 촛불은 자식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 와도 같은 여인의 모습이다.  

성당 내 성모상 앞에는 수십 개의 촛불이 봉헌되어 있다.


  그중 하나는 그동안 가난에 지지리 찌들어 살면서 여행다운 여행 한번 못해보고 명품 옷 한 벌 제대로 걸쳐보지 못하고 살다가 이제 겨우 살만하니까 남편이 병들어 삼사 년 고생하더니 그만 세상을 달리 한 자기 짝꿍에게 당신을 다시 만날 때까지 한눈팔지 않고 잘 살터이이 기다려 달라고 소원을 비는 촛불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지금껏 살면서 자기 집 전기료가 얼마 인지도 모르고 체크 한 장 써본 경험이 없는 현대판 공주였던 여인이 휴가차 해변을 찾았다가 그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고 두려움에 떨면서 곁을 떠난 남편에게 도와 달라고 속절없이 소원을 비는 촛불.


   사랑스럽고 귀여운 새 며느리를 맞이한 시어머니가 손주를 기다라면서 모지방은 엄마를 닮고, 총명함은 지 아비를 닮은 손녀 하나, 그다음에는 장골이 지대한 지 아빠를 닮은 손자 하나를 갖게 해 달라고 성모님께 봉헌하는 촛불.


   심지어는 남편이 도박을 하여 가산을 탕진하고 길거리에 쫓겨나기 일보 직전에 처한 아낙 내 가 복권 3장을 사놓고 일등은 아니 더러도 아차상이라도 당첨케 해 달라고 소원을 비는 촛불도 있단다.

 

   이 소원의 촛불은 법당 부처님 앞에 서서 합장하고 있는 불자들의 소원과도 함께한다. 그뿐인가? 깊은 산속 암자나 시골마을 한 복판에 우뚝 서 있는 정자나무 밑에 촛불을 켜 놓고 천지신명께 병들어 고생하는 이의 쾌유 를 비는 무당의 소원도 같은 내용일 것이다.


   촛불이 함께 모이면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80, 90년대에 정권과 투쟁하면서 화염병이나 돌멩이도 해내지 못한 일을 참여정부에서는 촛불이 우리의 뜻을 받아들이도록 그들을 혼내 주었고, 최근에는 박 근혜  정부를 여지없이 끌어내리기도 했다. 서울 광화문 광장 앞으로 유모차를 끌고 나와 촛불을 들고 있는 엄마는 보다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책가방을 등에 매고 촛불을 들고 있는 학생은 투명한 경쟁과 노력이 보상받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농사를 짓다 말고 상경한 구릿빛 나는 농부는 내가 바친 조공이(세금) 헛되지 않게 쓰이기를 바라는 소박한 소원이었을 것이다.


   어둠을 밝히고 새벽을 기다리는 촛불은 참고 기다리면 밝은 아침이 찾아온다는 희망의 메시지  이기도 하다. 바람이 불어도 거역하지 않고 불꽃을 바람 부는 대로 기울이고 꺼진 줄만 알았던 불꽃이 죽지 않고 다시금 살아나는 촛불은 우리의 삶에서도 꿈과 노력이 좌절돼 더러도 굴하지 말고 다시금 일어서라는 희망의 메시지다  


   넉넉한 부잣집 맏딸로 유복하게 자란 처녀가 시골서 올라온 어느 참한 젊은이에 눈이 멀어 결혼한 후 그동안 시어머니 시집살이, 시누이 들의 홀대에도 묵묵히 살아준 아내 생일상에 촛불을 켜놓고 남편이  “여보, 나를 믿어줘서 고마워,  당신의 결정이 참으로 현명했다는 것을 내가 꼭 보여줄 거야”라고 다짐한 이 한마디는 희망 이 살아 있는 등불 일 것이다


   이제 성당의 전깃불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한다. 미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옆사람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칠흑 같은 어두움이다. 곧바로 성당 입구에서 부제님이 부활초를 들고 입당하신다. 이 촛불이 입당해 있는 400여 신자들에게 들불처럼 번져 어둠을 밝혀준다. 기쁘다.     마침내 내 손에서도 부활의 촛불이 타 오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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