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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Aug 07. 2021

훌륭한 미국 교장 선생님

   미국에서  6년간의 주재원 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두 자녀들 학교 단임 선생과 면담을 했는데 둘째 아이는 95%  Americanize 미국화 됐다고 한다.  겉모양은 한국인 이요 사고하는 것은 미국인이라는 것이다. 큰 애는 강북에 있는 C 중학교 2학년, 둘째는 S 초등학교 6학년에 각각 등록시켰는데 두 학교 모두 외국에서 살다가 온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단다. 지금이야 가족여행도 해외로, 대학 재학 중에  어학연수 2-3년, 학교에는 원어민 교사가 있어 다른 문화를 접하기가 한층 쉬워졌다. 그때만 해도 우리 애 들은 낯선 이방인에 가까웠다. 이 이방인들이 학교를 마치고 가족들과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하루 있었던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으면 우리 두 부부 에게는 아무런 생각 없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일들이 투영되어 많은 것을 생각게 만들었다.

 


  

 아빠, 오늘 학교에서 시험을 치렀는데 우리 반에서 공부를 매우 잘하는 학생이  한 문제 못 맞히고 다 맞췄단다. 그런데 이 학생은 한 문제 못 맞혔다고 책상에다 머리를 쥐어박는 게 있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그 많은 문제를 다 맞히고 한 문제 틀렸으니 아주 대단한 게 아니야?  나 같으면 춤을 추겠는데 이 학생은 거의 울상 이더라.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워.


미완성은 "우리를 끊임없이 도전케 하고 갈증을 느끼게도 한다. 다음에는 결단코 그 마지막 퍼즐을 맞추어야지."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차분해지지 않을까? 긍정과 부정이 상반된 것이기는 하나 우리가 보는 앵글(각도)을 조금만 달리하면  충분히 넘나들수 있을 것이다. 우리 집 이방인이(아들) 의아해하는 것은 보는 앵글이 조금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



 

 학교에서 영어 시험을 치렀는데 오답으로 처리된 어떤 문제에 대해 우리 애가 선생님에게 이의 제기를 했다. 선생님과 우리 애 두 사람이 한참이나 토론을 했는데도 결론이 나지 않차 교무실로 자리를 옮겨, 다른 영어 선생님 5명과 다시금 토론을 했다. 결과는 우리 애가 맞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선생님 왈

“네가 맞는 것은 인정하겠으나 점수를 고쳐줄 수는 없다”

는 것이다. 이유는 다른 학생 50명의 점수를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밥상에서 우리 애가 눈을 부릅뜨고 화를 내면서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참으로 이상한 학교 아니냐? 아니 참으로 이상한 나라야!”


나는 그 선생님을 대신해 무슨 변명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그 선생님이 이 이방인을 속였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궁색한 생각마저 들었다.  공정 과 원칙 그리고 학교교육이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잘못된 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진다"는 것 만이라도 보여줬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다. 이 이방인은 일 년 정도 학교를 다니더니 자기가 교육을 받았던 미국으로 다시금 돌아가고 싶다고 하소연을 하면서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아프리카도 좋으니 한국만이라도 떠나게 해 달라고 할 때는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엄마, 나도 다른 애들처럼 학원에 보내 주세요. 학교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뜬금없이 학원에 보내 달라는 것이다.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학교에서 선생님이 공부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 애가 자기표현을 잘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의심했다.


- 그러면 선생님은 무엇하니?

@ 학생들 더러 복습하라고 일러주고 선생님은 자기 책을 보고 있던대요.

- 복습? 그렇다면 선생님이 전에 가르쳤단 얘기 아니냐?

@ 아니요, 학생들이 오늘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부문을 학원에서 이미 공부해 버렸데요.


선생님이 가르칠 게 없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애는 학원에도 안 갔지,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공부를 가르쳐 주지 않으니 미국에서 온 이 이방인은 한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학원은 학교 교과 진도에 앞서는 선제적인 수업을 하여 학원의 필요성을 인정받고, 학교는 학원 선생과 비교 평가받는 일이 없도록 자리보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 중 어느 골목길에서 불량배 들로부터 얼굴을 얻어맞아 가벼운 피멍이 들어 돌아왔다. 서너 명이 에워싸더니 아무런 이유도 없이 구타를 했다는 것이다.  

"무슨 이유가 있었을게 아니냐?  돈을 요구했다든가 아니면 소지하고 있는 값진 소지품을 원했다던가?”

아무런 이유 없이 때렸다는 것이다. 줄행낭을 쳐 인근 파출소를 찾아가 신고를 했더니 경찰 아저씨 께서

“네가 그런 음산한 골목길을 피해 다녀야지 가리지 않고 다니니 그런 일이 생기잖아?”

이 이방인은 교육받은 대로 경찰에 신고했고 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되려 골목길을 가라지 않고 다닌다고 꾸중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내가 겪었던 사례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어느 날 늦은 저녁 시간에 불량배들이 돌을 던져 우리 집 유리 창문을 깨뜨렸다. 경찰에 신고했더니 정확히 5분 만에 출동하여 현장을 확인하고 필요한 정보를 입수한 후 철거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어 경찰서에 전화하여 상관을 찾아

 

? 우리 집에서 일어났던 사고를 보고 받았느냐?

@ 받았다.

?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졌느냐?

@ 못 찾았다

? 그래? 그러면 앞으로를 대비해 총기를 구매, 소지해야겠군.

@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바 가 아니다.

? 그렇다면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야?

@ 대신 우리가 너의 집 근처 순찰을 강화하겠다.

? 그래, 그게 내가 당신들로부터 듣고 싶은 얘기야, 고마워요.

그렇다. 우리가 정립해 놓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 사회가 너무나 아쉽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아이는 키가 이미 170 센티미터. 학교에서는 교복을 입어야 하는데 거기에 맞는 사이즈가 없어 학년이 6-7개월 정도 남았으니 사복을 입고 다니란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 키가 너무 커서 튀는데 거기에다 사복을 입고 다니라니 그것도 반길 일은 아니었다. 어린 애선생이 학교에 출근하는 것처럼 보였다. 시내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하는데 초등학생 토큰을 넣었더니 버스기사 께서


- 야! 너 왜 초등학생 토큰을 사용해?

@ 저 초등학생인데요.

- 웃기지 마,  네가 어떻게 초등학생이야?  다음에는 그런 짓 하지 마?


버스 기사께서 왜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한다. 이런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는 것이다.  둘째에게 물었다.  


- 미국에서는 버스 기사께서 뭐라고 했을 것 같아?

@ 당연히 학생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하지요.  


나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예단하는 우리의 이러한 화법은 어데서 온 것일까?


"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끝까지 안 들어도 나는 다 알아,  

당신 이 얘기하려고 그러지?"


많이 들어본 얘기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존중이 필요한 화법도 생각해봄직하다. 미국 병원에서 의사와 환자가 서로 나누는 대화를 듣노라면 그 인내심과 배려는 놀랄만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거짓말쟁이가 돼버린 이 이방인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애가 학교 정문 앞을 지나칠 때 누군가가 뒤통수를 치면서

“인마, 비껴. 선생님 가시는데”

 물론 선생님은 장난기 섞인 애틋한 정감의 표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학생은 불평이다.

“뒤에 눈을 달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선생님이 뒤에 오고 있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 겠어.”  

이런 생활에 익숙해 있는 다른 친구들은 뒤통수를 얻어 맞고도 아무 러치도  않는 듯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을 것이다. 불 필요한 신체접촉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미국에서 자라온 이 이방인은 참으로 이해하기 난해 했을 것이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둘째가 5학년 재학 , 학교에서 친구들과 농구 게임을 하다 조그마한 사고가 났다. 미국애(에릭) 태클을 걸어 우리 (제임스) 넘어뜨린 것이다. 충격에 순간 정신을 잃은 제임스는 곧바로 일어났지만 학교에서는 119 불러 병원으로 호송을 하고 부모를 급히 병원으로 호출했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전해듣는 충격적인 소식에 전력 질주하여 병원을 찾았더니 이미 모든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집에  보니 제임스는 동네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어떻게  영문이냐고 묻지 않을  없었다. “선생님에게 괜찮다고 했는데도 병원으로 싣고 가던데!”  그렇다 미국에서는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병원으로부터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최종 확인을 받기 이전에는 학생을 되돌려 보낼 수가 없다. 만에 하나 훗날에 후유증이 있어 문제 제기를 하면 모든 책임을 학교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 사건과 관련하여 두 학생 부모에게 학교에 출두해 달라는 통지서를 보낸 것이다. 커다란 원탁 테이블에 학교 교장선생, 우리 가족 3명, 에릭 가종 3명,   합하여 7명이 함께 모였다. 교장선생이 우리 제임스에게

-  제임스, 무슨 이유로 싸운 거야?

@. 에릭이 나에게 태클을 걸어 고의로 넘어 뜨렸어요.

교장선생이 제임스가 진술한 내용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기록을 하고 있는 사이에 에릭 부모가 뭔가를 얘기하려고 하니 교장선생이

“ 쉬------  당신 에게도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줄 터이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세요”

이윽고 제임스 진술이 끝나고 에릭에게

-  에릭은 왜 싸운 거야?

@. 나는 싸운 게 아니고 우발적인 제 실수로 제임스가 넘어졌어요.

두 사람의 진술이 끝나자 교장선생은 두 학생을 밖으로 내 보내고서 부모님 끼리만 함께 하면서

“애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양가 부모님 께서 이해해 주신다면 두 학생이 다시금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양가 부모로부터 이의 제기가 없자,  교장선생은 두 학생을 다시금 불러들이더니

“나는 너희 둘이 학교에서 사이가 좋은 학생으로 생활해 주기를 바란다.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묻자, 제임스는 다소 주춤거리고 있는 사이에 에릭이 당당하게 말문을 먼저 열더니

“제임스에게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자고 하겠습니다”

교장 선생이 제임스를 향해

-  제임스는 어떻게 생각해?

@. 나도 에릭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요.

두 사람이 일어서더니 악수를 하면서 앞으로 잘 지내자고 한다. 다시금 교장선생이

“너희 둘이 농구를 좋아하니 내가 프로 농구게임을  보러 데리고 가지”

그렇게 시간이 한 달여 지났을까? 어느 날 교장선생이 주말에 우리 집에 와서 제임스를 픽업, 프로 농구게임을 보러 데리고 간 것이다.  두 학생의 화해를 위해 교장선생이 주말에 소중한 개인 시간을 할애, 두 학생과 시간을 함께하느것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아니  우리 애들이 이런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다는 게 매우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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