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후아힌 리조트에서 겨울나기
snow bird 란 말을 미국에 가서 처음 들었다. 캐나다인들이 겨울이 되면 따뜻한 캘리포니아 남쪽 헤및(Hemet)이나 팜 스프링(Palm Spring)으로 내려와 살다가 봄이 되면 다시금 고향으로 돌아간 그들을 우리는 snow bird 라 부른다.
지난해 여름에 우리 집 처마밑에 둥지를 틀었다가 겨울이 지나고 날이 풀리면 다시 찾아오는 제비들처럼.
다른 새들은 추운 겨울을 나느라 고난의 시간을 보내는데 제비는 따뜻한 남쪽을 다녀오곤 한다. 최적의 환경을 찾아다니는 인간제비들을 그래서 snow bird 라 부르지 않나 싶다.
나는 영상의 날씨에도 발에 동상이 걸린다. 취침 전에 보온용 양발을 챙겨 신는 게 베개 못지않게 중요한 필수품이다.
이런 연유로 “나도 제비처럼 살 수만 있다면” 꿈같은 상상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제비처럼 살고 있는 snow bird 가 나의 겨울나기 길잡이를 해줬다.
한국에 나와 첫겨울은 따뜻한 남쪽나라 칠레를 찾았다. 칠레에 머무는 동안 한국은 모질게도 추웠다 한다.
한겨울에 떠났는데 현지에서 여름의 낭만을 즐길 수 있다는 게 나에게는 꿈같은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태국에 후아힌 이라는 휴양지를 찾아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찾는 치앙마이나 푸켓을 택하지 않았던 이유는 ChatGPT 권유 때문이었다.
관광객이 붐비지 않고 조용한 해안가 그리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골프를 칠 수 있은 곳을 추천해 달라고 해 후아힌을 추천 벋았다.
후아힌의 1월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좋은 날씨다. 미국 엘에이에 살면서 이곳이 “천사들이 머무는 곳” 이라고 입버릇처럼 자랑했었다. 그런데 후아힌의 날씨는 내가 살던 엘에이 날씨를 무색게 했다.
태국에 왕족들이 왜 이곳을 휴식처로 선택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아름다운 해변의 도시다.
오전에는 밀물로 30-40 킬로미터의 해안이 문밖까지 바닷물로 출렁인다. 그러다 오후가 되면 썰물로 하얀 모래사장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낸다. 기저귀를 차고 모래밭을 파 헤치는 걸음마 어린애부터 90이 다 돼 쭈굴쭈굴해진 하얀 속살을 드러낸 할머니가 팬티와 브래지어만 걸치고 달리기를 하는 장면은 그림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낙원이 이곳 후아힌에도 있다.
말을 끌고 나와 모래사장에서 말타기를 유인하는 사람
오토바이에 조그마한 손수레를 개조하여 오징어를 싣고 다니는 상인. 그들은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저 “이런 것도 있습니다 “ 하고 조용히 묵묵히 모래 위를 달리는데 밉지가 않다.
그런가 하면 의자와 탁자를 싣고 나와 모래밭에서 술과 간단한 음식물을 파는 바(bar)도 차린다. 그들이 귀찮거나 싫지가 않다. 되려 그들이 후아힌의 낭만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날이 어두워지면 바다가 다시 모래밭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줄지어 어디론가 움직인다. 후아힌의 야시장이다. 수백 개의 식탁이 손님들로 금방 채워지고 음악과 공연이 휴양지의 밤을 취하게 만든다.
오전에는 호텔이나 콘도 풀장에 나와 비치의자에 누워 오늘 하루의 담금질을 시작한다. 오후에는 비치로 나가 온몸을 바닷물에 적셔 적당히 간을 들이고 저녁엔 야시장을 찾아 술과 음악으로 하루를 다스리면 내가 겨울을 피해 이곳에 왔다는 것을 까마케 잊어먹게 한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 해야 할 어떤 것들이 기다리고 있고 또 그런 생활에 길들여져 있다. 하다못해 쓰레기를 치우는 계획이라도 있어야 한다.
여행길에 나서는 이유도 하나라도 더 눈에 담고 가슴에 새기고 싶어서다.
그러나 후아힌의 시간은 무엇을 해서도 안되고 할 필요도 없다. 시간을 멈춰 세우고 사고(생각)라는 것을 침대밑에 묻어두고 아침을 맞이해야 한다.
처음 며칠은 샤핑몰도 찾고, 맛집도 찾고, 구경거리가 없나 나름 두리번 꺼렸지만 여기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다른 snow bird 들과 함께 편안하고 조용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조차도 잊은 채 말이다.
방콕에서 후아힌을 찾아 나선 길부터가 이색적이다. 열차여행을 위해 표를 예매하려 하는데 아침 7시 30분 차만 30일 전부터 예매가 가능하고 나머지차는 하루 전 날에야 예매가 가능하단다.
7시 30분 방콕출발 10시 30분 후아힌 도착 급행열차는 12시가 다 돼서야 도착한다. 여기가 후아힌 역이라는 안내방송도 없다. 늦어져서 미안하다는 인사는 한국이나 미국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역에서 내려 택시를 찾으니 트럭을 개조해 만든 툭툭으로 안내하며 “당신은 운이 좋아 제일 큰 사이즈의 튝툭을 타게 됐다”고 의시 댄다. 세단이나 suv 영업용 택시가 없는 도시다. 버스도 같은류의 툭툭이지만 사이즈가 쪼금 더 클 뿐이다.
이곳을 찾는 snow bird의 90%가 서양인들이다. 트럭 배드(짐 싣는 곳)에 앉아 30-40 킬로미터의 속도로 도로를 질주해도 그들에겐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여기가 후아힌 이기에 가능한 것은 아닌지? 이를 낭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도로에 나서면 안전에 호들갑을 떨던 그들인데 어찌 그리 빨리도 후아힌에 적웅 하는지 신기하다.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방콕 공항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예약했는데 공항도착 시간을 예측할 수가 없다 한다. 5시간의 여유를 두고 출발하라고 AI는 권유한다.
하루 해를 재촉이지 않아도 오늘 하루가 있어 행복하다.
남들이 다 그렇게 살면 그게 세상사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작년에도 금년에도 한 마리의 새 (bird)가 되어 여기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