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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Nov 07. 2023

제 이름은 길치 입니다

제 이름은 "길치"입니다.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 아니라서 호적에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나름 유명 인사들이 즐겨 쓴 호(아호)도 아닙니다. 동서남북을 구분치 못하고 길을 헤매는 사람.  그러니까 내비게이션이 나오고 나서야 길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한 사람이라 저를 자학하는 의미에서 제가 저 스스로를 비아냥 거리는 이름입니다. 아마 주변에도 동명이인이 있을 겁니다.


아직 까지는 집을 못 찾아오는 일은 없었지만 길거리에 내놓으면 행여 제자리를 못 찾아올까 봐 안절부절못하지요. 골목길이 두세 번 꺾이면 눈도장을 찍곤 하는데 "정류장에서 3 블락, 붉은 벽돌 5층빌딩에서 우회전, 2 블락 지나서 은행나무가 서있는 도로에서 좌회전" 식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른 은행나무가 있다거나 붉은 벽돌 5층 건물이 하나 더 있으면 여지없이 길을 헤매는 사람이지요.  


내비게이션이 나오기 전에는 살아서 움직이는 내비게이션이 있어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았지요. 바로 제 와이프입니다. 그녀는 저와는 대조적으로 길눈이 대단하더군요. 한번 다녀온 길은 도로명을 잊지 않고 다 기억하니까요.  훗날에 그곳을 다시 찾아갈 때면 자동차 옆자리에 앉아서 "노해로 길이 나오면 좌회전, 응암길이 나오면 우회전" 하고 일러주곤 합니다.  그녀에게 묻곤 하지요. 세상 살면서 우리가 기억해둬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진대 어떻게 길 이름을 잘도 기억하느냐고요. 그냥 머릿속에 입력이 될 뿐이지 딱히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는군요. 한번 스치는 도로 이름이 그리도 쉽게 잘도 입력된다면 영어단어나 역사는 얼마나 잘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는다나요. 길치에게는 신기하기만 합니다.


약속장소를 못 찾아 시간에 늦곤 하면 길을 헤맸다는 얘기는 못하고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는 길에 차가 밀려서 식으로 거짓말을 해야 하니 참으로 딱하기도 하지요. 단체활동을 하다 보면 길을 헤매다 뒤늦게 풀이 죽어 나타나는 사람을 보면 공부 잘하고 총명해 보이던 사람도 띨띨해 보였으니까요. 어쩌다 약속장소에 제가 일찍 도착하여 상대방을 기다리다 길을 헤매서 늦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나를 보는 듯했고 재촉 이느라 얼마나 진땀을 뺐을까 하고 동정심 마저 들곤 한답니다.


우리가 살면서 남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이 있으면 반대급부로 잘하는 게 있기 마련이죠. 그런데 길치는 사람을 인식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어 보여요. 


미국에서 개인 비즈니스를 하면서 손님들이 차를 영업장에 맡겨놓고 1시간 또는 2시간 후에 차를 픽업하기 위해 돌아오면 그들을 가끔 알아보지 못하고 처음 찾아오는 손님인양 "어떻게 도와 드릴까요?"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러는 길치를 보고서 "어이가 없다"는 반응 대신 "맡겨놓은 차를 찾으러 왔다"고 하면 나는 "미안해요 제가 오늘 정신없이 바빠서 이런 실수를 하네요" 하고 또다시 거짓말을 하곤 했답니다.


이를 지켜본 종업원이 길치가 딱했는지 아니면 곁에서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손님이 되돌아오면 "길치야, 저 손님이 맡겨놓은 차는 포드 픽업트럭이야" 하고 기억을 상기시켜 주곤 했습니다. 하물며 6개월 전 또는 일 년 전에 다녀간 손님을 알아본다는 것은 택도 없는 일이지요. 종업원은 어김없이 내게 다가와 "지금 사무실로 접근해오고 있는 손님은 6개월 전에 현대 제네시스를 갖고 와 타이어를 교체해 간 손님"이라고  일러주면 나는 기억을 하고 있는냥 "다시 찾아 주셔서 고마워요. 지난번에는 제네시스를 갖고 오셨는데 오늘은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하면 그들은 "고마워요 벌써 당신 집에 세 번째 찾아옵니다"


미국 UCLA extension 코스 강좌에서 들었던 얘기입니다. 비록 세탁소를 운영하더라도 고객 서비스를 차별화해야 한다고요.  대부분의 세탁소는 옷을 맡겼던 손님이 옷을 찾으려 오면 영수증을 요구하고 그 영수증을 들고서 손님 옷을 찾기 시작하는데 차별화란  손님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손님이 주차장에 나타나면 머리 옷을 꺼내놓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 이름을 불러 주면서 "John 당신 옷 여기 준비돼 있어요" 하면 그 손님은 자기 이름을 기억해 주고 옷을 미리 준비해 준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할 것이라고. 맞아요  헌데 불과 몇 시간 전에 다녀간 손님 얼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비즈니스에 성공하겠어요. 말아먹지 않았던 것 만도 운이 좋은 게지요.


이러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 와이프는 가끔 저에게 고맙다고 합니다. 장기간 해외출장을 다녀도 잊지 않고 와이프를 기억해 주고 집을 찾아올 줄 안다고요. 농담 이겠지만 그만큼 저라는 사람은 엉뚱한 데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직장 생활할 때는 같은 공간에서 십수 년간 같은 동료들끼리 살았던 터라 나는 극히 평범한 사회인, 똘똘한 직장인 줄만 알았습니다.  우리는 직장생활 10여 년, 나이 40대면 사회생활을 할 만큼 했고, 사회생활에서 제법 다져진 사람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그들을 "유리온실 속에 사람들"이라고 불러주고 싶어요. 매일 십여 명의 손님들과 마주치면서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한 저의 약한 부분들이 사회에 나와 이 정도로 문제가 심각할 줄은 몰랐으니까요.


개구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몸 색깔이나 무늬를 주변환경에 맞게 변화시키듯이 길치도 사회생활에 대처하기 위하여 나름 묘안을 찾곤 한답니다.


성당에서 와이프가 새로운 친구를 소개해 주면서 "자기야 여기는 내 친구 스텔라" 하면 나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니까 외모의 특징적인 것으로 각인하려고 노력하지요.  와이프와 대화 중에

"지난번 만났던 스텔라 씨 있잖아?

누구 말이요?

거 있잖아요 키 크고 얼굴 가름한 분

아!!  깡패?"

그녀의 말투는 직설적이었고 터프해 보여 내 나름대로 "깡패"라는 딱지를 붙여 메모리 장치에 저장해 두었다. 이렇게 살다 보니 그녀의 친구들이 "깡패, 못나니, 왕방울(눈이 큰 사람), 대구 (생선 대구 처럼 입이 커서), 해교언니(배우 송 해교를 닮았다 해서), 매부리코  들로 각인돼 있답니다. 미국사람들은 first name을 불러주면 친근감을 느끼고 좋아한다는데 그리하지 못하고 옹색한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이 또한 사회생활 하는데에 핸디캡이 아닌가도 싶다. 


그러고 보니 문제가 하나 더 있네요.  몸치 이기도 합니다. 뇌에서 손이나 발에 행동명령을 내리면 즉시 움직여야 하는데 한 템포 느린 게지요. 모르겠어요. 행동명령 전달과정에 문제가 있는지, 상황판단을 하는 뇌에 문제가 있는지?


친구들과 또는 직장동료들과 배구 게임을 하기 위하여 편을 가르면 어느 팀도 저를 원하지 않아요. 아니 상대팀은 제가 자기네들 쪽으로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반기는 모습이 눈에 보여요. 왜냐면 그들은 내가 "구멍" 이다나요. 상대팀이 스파이크로 공격하면 막지 못하고 그 공이 저의 얼굴에 맞는다거나 몸에 맞곤 하지요. 그러니까 서있는 허수아비라고나 할까요.


그뿐인가요 축구 게임을 하면서 저에게 패스해 주는 공을 힘껏 차지만 공이 어느새 가랑이 속으로 빠져나가 버리니 우리 팀 멤버들이 얼마나 속상했겠어요? 그들은 저에게 묻곤 했지요. 어떻게 하면 저처럼 "똥볼(볼을 허당 치는 것)"을 찰 수 있나구요. 그냥 가볍게 발만 갖다 대면 되는 일인데 그게 그렇게도 어렵냐고 불평하곤 했으니까요.


재산이건, 재능이건, 실력이건 갖은자는 항상 쉽고, 여유 있고, 당연할지 모르지만 못 가진 자는 이처럼 어렵고 노력해도 쉽지만은 않는답니다. 


길치가 길을 헤맬 때 길잡이 역할을 해 주었던 와이프,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할 때 도움이 역할을 해주었던 뚱땡이 마리오라는 종업원, 배구, 축구 게임을 할 때마다 제외시키지 않고 함께 어울렸던 그들이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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