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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Oct 10. 2023

자녀를 이렇게 길러보고 싶지 않으세요?

나는 자녀교육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자녀 교육에 성공했다고 하면 그 기준이 뭘까요?


지방에서 삼 형제를 교육시켜 서울대에 합격시켰고, 강남학원에 매달리지 않고 독서에 충실하도록 하여 두 딸을 서울대와 카이저에 합격시켰다고 어느 일간지에 성공사례로 게재된 내용을 읽었습니다. 최근에는 서울대에 다니던 학생들 상당수가 재학 중 진학공부를 다시하여 의대로 전향하는 사례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나요?


물론 대단하지요, 서울대가 어떤 대학인데?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둘, 셋을-----. 졸업하면 그들의 직업은

의사, 교수, 검사


의사, 돈도 잘 벌고 안정적인 직업이기에 집안에 의사 하나쯤 있으면 얼마나 든든한데요. 이제는 세상 살아가는데 대단한 빽이 됐다고들 합니다.  검사,  사회적인 권위와 영향력은 말할 필요도 없고 훗날에 변호사라도 개업하면 돈도 잘 벌테니까요. 교통신호 위반에 걸리면 교통경찰에게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 우리 아들이 서울 중앙지검 형사부 검사야" 하면 어느 간 큰 경찰이 "그래서?" 하고 말대꾸하겠는가?


이들을 일컬어 엘리트층이라고 불러 주고 싶다.  이런 부류는 한국뿐만 아니라 선진 어느 국가에도 다 있다. 그런데 미국에 사는 우리는 한국처럼 여기에 목메이지 않는다.  그냥 여러 직업군중에 하나일 뿐이다.

왜? 돈도 잘 벌고 권력도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는 권력을 쳐다보며 살지도 않고 이대로의 내 삶이 너무나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말처럼 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T.V.연속극의 주제가 대부분

#  의사를 만들어 낸 부모들의 위풍당당함.

#  화려한 집안을 배경으로 한 검사들이 재벌이나 정관계 인사들과 한판 승부.  정장을 한 검사가 부하직원

    들을 이끌고 불량배 일당을 일망타진하는 통쾌함. 

유별나게 T.V. 앞에 쪼그려 앉아있는 시간이 많은 한국 사람들을 마치 의사나 판. 검사 쪽으로 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평범하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보다는 좀 더 자극적인 내용을 선호하는 시청자 때문은 아닐는지?


초등학교 학부모나 내일 모래 대학진학을 앞두고 있는 고3 학부모나 모두 서울대와 의사 만들기만을 생각하면서 강남학군을 넘 너다 보고, 강남이 아니면 상계동이라도---  엄마 아빠는 오직 자식들에게 올인하고 있다.


저는 사내아이 둘을 키워 냈는데 나름 성공했다고 생각하기에 그 경험담을 공유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저의 자식들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상을 받으러 연단에 올라가는 자식을 쳐다보는 부모의 가슴은 공부 잘하는 고3 학부모의 기쁨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될 놈은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벌써부터 공부를 잘하니 무슨 꿈인들 못 꾸겠습니까?


큰 아이는 일 학년부터 6학년 졸업 때까지 학업 성적이 전교에서 1,2,3등으로 곧잘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한국처럼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지는 않지만 상위권 학생 인지라 담임선생이 귀띔을 해 주더군요. 책 읽는 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주말이면 서점에 가고 싶다 하여 데려다주면 일주일간 읽을 책을 서너 권씩 사 오곤 했지요. 집에서 딱히 할 일이 없으면 방에 앉아 책 읽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기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학교에서 책 읽기를 권장했지 않나 싶어요.


반면에 둘째는 공부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지 않기에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여튼 책 읽기엔 도통 관심도 없으면서 자기 형이 서점에 가면 같이 따라가서 자기도 책을 읽게다며 3-4권씩 사 오는데 책 읽는 꼴을 본 적이 없을 만큼 책과는 벽을 쌓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책을 안 읽으니 사줄 수 없다고 하지는 못하고 버린셈치고 사 달라는 대로 꾸준히 사 줬습니다. 아마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완독을 한 책이 한 권도 없었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부모들도 자식들 학업성적에 대해서 그렇게 연연 하지를 않습니다. 그저  운동에 더 열중이었지요. 농구, 야구, 수영, 아이스하키, 테니스 말 그대로 초등학교 때에는 각종 운동을 섭렵했습니다. 미국은 학교가 아닌 커뮤니티에  야구반, 농구반 각종 스포츠 그룹이 있어 여기에 사인만 하면 합류할 수 있습니다. 이런 그륩들이 전국적으로 조직화 돼있어 동네에서 군 단위 대항으로, 군에서 도단위 대항으로 나중에는 전국단위 대항까지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 부모님들은 농구, 야구와 같은 단체 스포츠보다는 테니스와 같이 코치로부터 단독으로 레슨 받는 걸 더 선호합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테니스 코치에게 떨어뜨려 주고 레슨이 끝나면 픽업만 해오면 되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농구, 야구와 같은 단체 스포츠 위주로 운동을 시켰습니다. 왜냐면 단체활동을 하면서 팀원들과의 유대감과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 가보면 한국 부모님들을 만나볼 수가 없었습니다. 대부분이 미국, 중남미, 일본계들입니다. 이런 단체 스포츠에는 자식뿐만 아니라 부모님들도 함께 모여 응원을 하고 부모님들 간에도 교류가 이루어집니다. 언어의 불편 때문에 한국계 부모들이 기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곳에서 운동을 시켜보면 자녀들의 성격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큰 아들이 농구게임 하는 것을 보면 지나치리만큼 억척스럽게 게임을 합니다. 예컨대 상대팀의 공을 훔치려고 심판이 떼어놓을 때까지 붙들고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한번 물면 놔주지 않는 불도그 견(개)과도 같더군요. 그러나 게임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한 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둘째는 기껏 몇 분 뛰다가 코치에게 지쳤으니 다른 선수와 교체해 달라고 요청하는 걸 보면 의욕도, 경쟁심도 없어 보였습니다.


서로 다른 두 아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만도 크나큰 소득이었습니다. 이게 그들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일 테니까요.




중등학교 과정도 초등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게 운동과 책 읽기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은 컴퓨터에도 집중하기 시작하더군요. 게임이 아니라 프로그래밍을 공부하여 중학교 때 벌써 웹사이트를 만들 정도로 상당한 수준에 이르더군요. 여름방학 기간에는 커뮤니티 컬리지에 가서 대학생들과 함께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업을 받을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둘째는 정 반대로 음란물 사이트나 들여다 보고 또래 애들처럼 게임에 열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개의치 않고 계속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중학생 정도면 이성에 관심이 많아 음란물을 훔쳐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고등학교로 진입하면 크게 두 가지가 달라집니다. 첫째는 학과공부가 탁월하면 과목별로 월반을 시켜 줍니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이를 A.P. class라고 부르지요. 그리고 activity (일종의 스포츠 과목)를 하나씩 선택해야 합니다.


큰애는 여전히 학업성적이 우수하여 학년 300명 중에 10위권을 유지하였고 5-6개 과목이 A.P. class였습니다. 작은애도 A.P. class 가 3개나 있어 우리 아들이 그런대로 공부를 제법 잘 한다는 데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찾아가 A.P. class 가 아닌 정규반으로 강등시켜 달라고 요청했답니다. 이유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과 경쟁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는다나요? 다른 애들은 A.P. class에 진입하지 못하여 안달인데 우리 애는 이를 포기하고 쉽게 쉽게 공부하고 싶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내가 잘 알고 있는 자식 인지라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activity에서 큰애는 아메리칸 풋볼을 (포지션은 running back) 작은애는 농구를 각각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이 activity는 고 2학년까지만 하면 되고 고3이 되면 선발 테스트를 거쳐 합격해야만이 운동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이를 varsity team 이라고도 부르는데 대학진학 시 운동으로 스카우트되어 대학을 가는 코스 이기도 합니다. 큰애는 졸업할 때까지 풋볼을 계속했고 둘째는 고2까지만 하고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선발에서 탈락했기 때문입니다.  


아들들이 고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면 하나씩 불러 다음과 같은 제의를 합니다.


"너가 대학을 가고 싶다면 부모가 학비를 전액 보조해 줄 용의가 있다.  부모가 보조해 주는 이 돈은 너희들이 대학을 마친 후에도 부모에게 갚을 필요가 없는 돈이다. 그냥 주는 돈이다. 단 조건이 있다.

첫째는, 너희들에게 투자 가치가 있다고 할 만큼 괜찮은 대학에서 입학 허가서를 받아와야만 하고

둘째는, 대학 4년 동안만 도와주겠다 (미국에서는 4년 이내에 대학을 졸업 못하는 학생들이 괭장히 많음)"  



그리고 대학진학을 하면 왜 좋은지 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줍니다.


사회에 나가서 좋은 직업을 찾고, 경제적으로 쪼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살아 갈려면 대학을 마치는 게 가장 쉬운 길이고, 지름길이라고 일러 줍니다. 그러나 선택은 각자의 몫이라고........

부모로부터 학자금을 전액 보조를 받을 수 있는 행운이 있다는 것도 알려 줍니다.  미국에서는 부모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으면 학비를 보조해 주지 않기에 부모로부터 학비보조를 받는다는 것 자체를 큰 행운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큰 아들이 SAT (한국 수능시험과 같은 것인데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두세 번 응시하여 가장 좋은 점수를 대학에 제시함) 시험을 보고 나서 점수가 기대에 미치지 않았는지 자기는 육군사관학교를 가겠다고 선언하더군요.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국가에서 학비를 전액 지원해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 애는 이 점수로는 부모로부터 학비 보조를 받기가 어렵겠구나 하고 판단을 한 거지요. 그래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 남은 기간 안에 분발토록 독려를 했습니다.


결과는 하버드대에 지원했는데 합격하지 못하고 UC Berkerly와 USC에서 합격증을 받아 았습니다.

you are lucky. you got my money. (너는 운이 좋은 거야. 학비를 지원 해주겠다.)


둘째는 형에 비해 기대치가 높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UC Riverside에서 합격증을 받아와 크게 고민하지 않고 받아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둘째가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칠 때까지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하교 후에는 자기 방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놓고 여전히 음란물 훔쳐보기와 게임에 열공 중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이쯤 되면 충격요법이 필요하다 싶어 현금 오천불을 준비해 놓고 셋이서(와이프, 둘째 아들 그리고 나) 가족회의를 했습니다.


너 공부하면 스트레스받지?

예!

그렇다면 여기서 학업을 중단하면 어때? 고등학교 졸업장 그것 별것 아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내가 현금 5천 불을 줄 터이니 이 돈으로 지금부터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게 좋겠다.  똥차도(중고차) 한대사고 아파트 렌트도 하고, 그리고 여자친구를 사귀어 동거도 해보고, 돈도 벌면서 일찍 자립하는 게 더 낫지 않겠니?

싫어요

왜?

저도 대학을 가보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 나가서 혼자 산다는 게 무섭기도 해요.

그런데 그래 가지고 어디 대학을 갈 수 있겠니?

지금부터 열심히 할게요

그래? 그렇다면 어디 지켜 보자꾸나


오천불을 준비해 놓고 아들과 대화할 때는 공갈협박이 아니라 진심이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아들 또한 부모의 제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전공을 선택해야 할 때가 되니 부모를 찾아와 무엇을 전공했으면 좋겠냐고 상의하더군요. 나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녀본 적도 없고 미국에 대해서 잘 모르니 친구 부모님들이나 학교 선생님과 많은 대화를 해 보라고 권했습니다. 이쯤 되면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은 주저하지 않고 “의대, 법대"를 권 하지요. 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자기가 좋아하고 적성에 맞은 일을 찾으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미국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큰 아들은 비즈니스를 전공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작은 아들은 사회심리학을 선택하더군요. 이유를 물었더니  비즈니스를 공부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이고 사회심리학을 전공한 아들은 세상을 살아 가는데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볼 줄 아는 통찰력이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결정을 존중했습니다.


애들을 기르면서 공부하라고 재촉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아이러니칼 하게도 대학 다니는 중에 딱 한번 있었습니다.  학업성적을 상위 5% 이내로 유지하도록 당부했습니다. 그 이유는 상위 5%는 졸업과 동시에 기업체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지만 나머지 95%는 이력서를 수십 장 만들어 잡(job)을 달라고 이회사 저회사 문을 두드리며 구걸해야 하는 신세가 되니까요,


운이 좋았는지 애들이 열심히 잘해주었는지 졸업과 동시에 큰 아들은 Bank of America 투자팀으로부터 둘째는 Enterprise라는 렌터카 회사로부터 각각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부모의 어깨를 한결 가볍게 해 주었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취업도 했으니 자식에 대한 부모의 퍼즐 게임은 이제 끝난 것이 아닐까요?


허지만 취업을 하고 난 후에도 부모는 끊임없이 자식들 걱정입니다.

@  행여 회사에 감원 바람이 불면 잘리지는 않을까?

@  이회사 저회사 옮겨 다니지 말고 한 회사에서 꾸준히 잘 근무해야 할 터인데!

그러나 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아무리 혹독한 감원 바람이 불더라도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사람은 필요할진대 우리 자식들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설령 회사에서 잘린 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여기까지가 우리 자식들의 능력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부터는 그들의 인생입니다. 이미 화살이 시위를 떠나 버렸습니다. 단 한 가지. 비록 나락으로 추락하더라도 다시금 일어설 수 있도록 자식들을 잘 키웠냐고 나 자신에게 반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자식들이 가보지 않았던 길을 먼저 걸어본 인생의 선배로서 자식들이 필요로 할 땐 그들의 멘토가 되는 것 입니다.


큰 아들이 City Group에서 투자회사로 옮기고 싶은데 아빠의 의견을 묻더군요. 이쯤 되면 대부분의 부모님들 관심사는 옮겨가는 회사의 연봉은? 직급은? 하고 묻습니다. 그러나 저는


"옮기는 것은 너의 선택이지만 회사를 옮기는 이유에 대해서 상사나 회사에 거짓말을 하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상사는 이미 우리 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것을 훤히 꿰뚫고 있을뿐더러 향후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니까요. 나중에 회사를 옮기고 나서 저에게 전화하여 고맙다고 인사하더군요. 그 이유는


회사를 옮기겠다고 통보했더니 꼭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자리를 잡았는지 급여에 불만이 있으면 급여를 원하는 대로 맞춰 주겠고 직급이 문제라면 승진도 시켜 주겠다며 회사에 계속 근무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더랍니다. 우리 아들은 상사를 두 번, 세 번 설득한 끝에 허락을 받아냈고 오히려 새로운 잡(job)을 찾는데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했다나요. 비록 저는 미국을 잘 모르지만 조직사회 에서의 인간관계는 동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이후 큰 아들은 본인이 원하는 길을 잘 선택하여, 전공을 살려 나름 뜻을 이뤄 나이 40에 벌써 은퇴를 생각하고 있답니다. 부럽기도 하고 시샘도 납니다.


작은 아들 얘기입니다.  모든 젊은이들이 그렇듯이 우리 아들도 2년남짓 되니까 다니던 회사를 옮기고 싶다고 연락을 하더군요. 둘째에게 준 답은 달랐습니다.

 "같은 업종을 선택해서 커리어의 연속성이 있었으면 좋겠고, 연봉 2-3만 불 더 받는 것보다는 본인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지요. 하는 일이 좋아서 열중하다 보면 돈과 승진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이후 회사를 2-3번 옮겼으나 같은 직종으로 커리어를 쌓아 지금은 베테랑이 돼 어데를 가더라도 연봉 15-20만 불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




 마지막 퍼즐이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자립심과 책임감에 대한 교육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식이 부모에 의지 하려고 하면 단호히 아니 매정하게 뿌리칠 줄 아는 부모, 살면서 잘못을 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부모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둘째가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다니는데 부모를 볼 때마다 일에 시달려 피곤하다고 어린양 을 부리기에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힘들더라도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있을 거라고" 달래지 않았습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비록 오늘이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회사를 그만 둘 수도 있으니까요. 이후 밤새도록 일을 하고도 힘들다는 얘기를 들어본적이 없었던 같습니다.


대학도 졸업하고, 취직도 하고, 여자 친구도 사귀면서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룬 양 절제하지 못하고 함부로 날뛰다가 직장 2년 차에 그만 음주운전에 걸려 직장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잃게 됐습니다. 그동안 카지노에도 들락 거리면서 도박을 하여 빚도 많고요.  대학까지 가리켜 놓은 자식이 한 번의 실수로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지는 것을 지켜본 부모의 심정은 "하늘도 무심하시다"라고 원망도 했고 "내가 세상을 잘 못 살았나?" 하고 자책도 했습니다.  그동안 자식에게 투자해 놓은 것이 너무 아까워 이번 한 번만 도와줄 터이니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타일러 주고 싶은 유혹도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아들의 장래를 망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한 번의 실수 일지라도 대가를 치러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개인파산을 하라고 했습니다. 음주운전에 걸리면 미국에서는 당분간 잡(job)을 찾는다는 게 쉽지가 않아 빚을 갚아낼 능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개인파산 선고를 하라고 했지요. 개인파산을 하면 향후 10년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는데 그래도 본인이 정신을 차려 10년 후에 제기한다면 그의 나이 40. 나는 이때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까지 마친 사람이 이를 모를 리가 없지요. 그는 개인파산을 하지 않고 막노동을 하며 그 빚을 다 갚아내고 재 취업까지 해 내더군요. 다시금 일어선 그는 어느 날 우리 앞에서 "드디어 이제 어른이 됐다"고 하면서 어리석은 실수는 인생에서 한번이면 족하다고 다짐을 하더군요.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아들을 키우면서 늘 애니멀 다큐멘터리를 상상하며 살았습니다. 각자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사냥하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큰 아들은 어드벤처형입니다. 대학졸업 후 직장생활 하면서 혼자서 킬리만자로 등반, 중국 고비사막 160 킬로미터 국제 마라톤 완주, 페루 마추삐추 등반, 샌프란시스코에서 엘에이 까지 620 킬로미터를 일주일간 자전거로 완주하는 등 도전형이지만 둘째 아들은 대학을 마칠 때까지 별다른 취향이 없이 영화만을 즐겨보는 안방형이었습니다. 우리는 둘째가 영화를 너무 좋아하기에 "북한 김정일"이라고 놀려주곤 했지요. 자식들이 부모의 성에 차지 않으면 "저래 가지고 앞으로 무엇이 되려나" 하지요. 그러나 때로는 서두르지 않고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 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입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도전을 좋아하는 형과, 열심히 사는 부모님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둘째 아들에게는 교육 이었을테니까요.




서울대와 의대를 마치고 유리 온실을 뚫고 사회에 나와서 살고 있는 자식들이 부모가 기대했던 것 만큼 잘 살던가요? 그리고 자식들도 행복하던가요?


혹시 병원에서 기계와 같이 움직이며 일에 시달리는 의사가 당신의 자식 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셨나요?

판. 검사가 된 자식들이 논산 훈련소처럼 경직된 조직 속에서 격무에 시달리는 자식을 보고도 어깨가 우쭐해지던가요?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서 있습니다. 우리 자식들은 선진국에서 보았듯이 권력 앞에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날이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처자식을 지키기 위해 고용주 앞에서 머슴처럼 비굴하게 살던 시절도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젊은이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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