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나, 스페인어로 내일 또는 미래라는 의미다. 내일을 준비하는 오늘이 있는가 하면 오늘만이 있고 내일을 기약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희망을 기대하는 마니아나는 나의 아버지를 불러오게 한다. 아버지는 초등학교만 마치셨지만 나의 삶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신 멘토 이셨다. 초등학교시절 공부를 매우 잘하셨는데 집에서 뒷바라지를 해주지 않아 농부의 길을 걷게 되어 늘 한스럽다는 말씀 이시다. 친구들 중에는 학업을 계속하여 학교교사, 중앙정부 고위직 공무원이 되었다면서 현재의 당신에 만족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욕망의 남자였다.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들을 통하여 대리 만족을 하고 싶었는지 아버지는 아들 셋을 불러놓고
"너희들 중에 대학을 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내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뒷바라지 해 주겠다"라고 선언하셨다. 그런 연유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시골 출신인 우리 삼 형제는 대학을 마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농사를 지어 자식 셋을 대학까지 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존경받아 마땅하다.
마니아나, 비록 오늘이 아니더라도 아니 내 생애에는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후대 에라도 해내고 말겠다는 의미. 이 마니아나는 우리 한국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의 삶을 위해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고 희생하며 내일을 꿈꾸는 민족이니까.
그런데 이와는 상반되게 살고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히스패닉이(중남미 계) 아닌가 싶다. 미국에 살고있는 우리 교포들이 그들을 마니아나 라고 비웃다 보니 이제는 그들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들은 오늘만 있고 내일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일을 하다 힘들면 내일로 미루고 수중에 있는 돈도 오로지 오늘만을 위해서 다 써버린다. 해서 붙여준 이름이다. 내일 어떻게 될 것인지는 굳이 오늘 걱정해야 할 하등에 이유가 없다. 그것은 내일이 다가오면 생각해 볼 일이란다. 한국 같아서는
"도대체 어쩌자고 그렇게 사는 거야? 생각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나도 다 생각이 있어요
글쎄다. 그놈의 속을 안 들어가 봐서 알수는 없지만 그렇게 살아서야--------"
그들의 고향 멕시코 에서의 이야기다.
멕시코 티화나에 소재하는 한국계 회사를 방문했는데 급여일자(주급 단위)를 금요일에서 월요일로 바꾸었다고 한다. 금요일에 급여를 받은 그들은 주말에 가족과 친구와 어울려 먹고 마시고 흥청 거리며 놀다 월요일에는 노무자의 절반 이상이 회사에 출근을 하지 않는단다. 공장을 돌릴 길이 없어 급여일자를 월요일로 바꿨더니 출근율이 90% 로 향상 되었다 한다. 우리같이 여유 없이 너무 각박하게 사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낙천적으로 사는 것도 문제는 아닐는지?
우리 영업장에 마니아나(히스패닉 종업원)가 근무한 지 6개월 정도 지나니까 급여를 가불 (다음 주 것을 당겨 주는 것) 해 달라고 한다. 집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냐고 물으니 오늘 저녁 식량이 떨어졌단다. "먹고 살만큼 급여가 충분치 못했나?" 하고 자문도 해 보았으나 고용 계약서 작성시 이 정도 급여면 문제가 없다고 본인이 흔쾌히 수용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가불을 해 달라고 한다. 그런데 가불 이유를 물으면 그 이유가;
@ 와이프 생일 선물을 사야 하니까
@ 결혼기념일이라서
@ 자동차 수리를 해야 하니까
@ 아들 결혼선물을 사려고
무엇하나 거절을 할 수 없을만큼 절절하다. 이럴 때 한국의 "정" 이라는게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비록 내가 안된다고 거절을 할지라도 종업원은 크게 실망하거나 괘씸하다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급여는 당연히 일한 대가에 대한 보상으로 사후에 받는 것이니까. 어쩌면 나에게 한번 툭 던져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청을 받은 나는 생각이 많다. 내가 이를 거절했을 때 종업원의 와이프 생일날은 얼마나 쓸쓸할까? 결혼기념일을 챙겨주지 못한 남편의 체면이 어떨는지?
종업원에게 벌써 두 번째로 일러준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종업원을 앉혀놓고서
# 집안에 immergency(긴급상황)를 대비키 위해 급여의 일부를 저축해라
# 자동차가 낡았는데 차를 바꿀 수 있도록 대비를 해라
# 외식도 가능하면 주 일회에서 2주에 한 번으로 자제를 하라고 당부를 했다.
퇴근하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한심한 종업원을 흉보고 있노라니 아들 녀석이
"종업원을 훈계하시지 말고 아버지 일이나 잘 하세요" 한다.
상대방의 사생활을 침범해서는 안 되는 미국사회에서 한국식으로 종업원을 훈계했다는 아버지의 얘기를 듣는 아들은 "우리 아버지는 언제쯤이나 미국식으로 살려나 했을까?"
내 얘기는 충분히 이해를 하고 또 그렇게 해야 옳다고 공감을 하지만 이도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이니 내버려 두란다.
마니아나의(종업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를 비용이 있느냐고 물으니 돈이 한 푼도 없단다. 그래 어쩔 셈 이냐고 물으니 잘 모르겠단다. 아니 상주가 모르면 누가 알까? 장례비용에 보태 쓰라고 $500을 줬다. 우리 종업원은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일하다가도 손님에게 다가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라고 한다. 그러면 손님들은
"I am sorry to hear that 슬픈 소식을 접하게 되어 미안해요" 하고
어떤 이는 $100 도 주고, $50 도 준다.
어머니가 돌아 가신지 한 달이 지나고 석 달이 지났는데도 장례를 치른다는 얘기가 없어 어머니는 어떻게 돼 있느냐고 물으면 영안실에 그대로 있다 한다. 어머니를 어떻게 영안실에 내 팽개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하면 국가에서 화장을 해 준다"라고 한다. 이게 미국 마니아나가 말했던 "내일 일은 내일이 오면 생각해보고 그때 가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