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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Jun 29. 2023

중동계 내 친구가 나이 50에 미국 경찰이 됐다.



자유를 되찾기 위해 또는 지키기 위해 정권과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자유를 찾아 살던 곳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유신정권과 싸우던 젊은이들은 서울역과 광화문 앞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유신정권이 싫다고 직장을 그만두고 짐을 싸서 미국으로 이주해 살고있는 교포들도 심심찮게 만나볼수 있다.  피를 흘리며 목숨을 바친 그들은 영웅이었고 해외로 도피한 사람들은 기회주의자였는지는 모르나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유를 찾아온 이들을 망명자로 안아주고 있다.  월남전의 보트삐플, 중남미로 부터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이다.


내가 미국에서 사귄 중동계 친구 "Mazi"의 아버지도 오래전에 이란 호메이니의 독제가 싫다고 중.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두 남매를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온 사람이다.  자녀가 고등학생 인데도 그 나이에 미국에 가면 적응할수 있을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였을 것이다.  하루하루를 산다는 게 숨통이 막힐뿐만 아니라 미래가 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는 것 자체가 죽기보다 싫었을 테니까.  차라리 자유가 있는 곳을 찾아 막노동이라도 하는게 몇 배나 행복하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Mazi는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 1학기때 미국으로 건너와 학교를 마쳤으나 영어가 미숙하여 미국사회에 깊숙이 스며들지 못하고 물과 기름 같은 존재였다.  그 어디에 발붙일 곳이 없어 밑바닥에서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첫 직장은 자동차 엔진오일 교환을 전문으로 하는 Lube shop이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로 하지않고 한나절 정도 교육을 받으면 곧잘 할수있는 단순 업무다.  그의 손과 얼굴에는 항상 기름이 범벅이고 작업복도 남루하기 그지없는 말 그대로 3D 업종 중에 하나다.


이런 이민자들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름 남들과 차별화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남들이 농땡이 칠때 열심히 일하고 하루 8시간을 나의 일처럼 열심히 했더니 주인장께서 예뻐해 주더란다. 고등교육을 마치고 직장을 찾아오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어데서 법은 배웠는지 모든 게 법대로다. 이를테면 영업장이 바빠서 눈코뜰새가 없어도 오전에 브레이크 타임 15분, 점심시간 30분, 오후에 브레이크 타임 15분은 칼같이 찾아 먹는다.  12시 땡치면 하던일도 멈추고 식사하러 가버린다.  종일내 손님이 없어 빈둥거리고 놀다 퇴근시간 무렵에 손님들이 몰려들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5시 되면 퇴근해 버린다.  오버타임도 필요 없단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그들은 5시가 되면 벽에 못질을 하다말고 연장을 그대로 내 팽개치고 퇴근하는 것을 보면 사람 이라기보다는 로봇이나 기계에 가까워 보인다.  기계는 정해진 시간에 자동으로 멈추니까.  


주인으로부터 신임을 받은 Mazi.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다보니 주인장이 Mazi 더러 학원에 가서 자동차 매연 점검 자격증(smog check license)을 따 보라고 권하면서 학원비도 보조해 주더란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원에 가서 6개월 동안 공부한 끝에 자격증을 따서 주인장에게 보여 드렸더니 (주인) 자신이 하던 일을(smog check) 넘겨주면서 급여도 30% 더 올려 줬다.


그렇게 샵매니저로 일하면서 나와 자주 만나게 됐다. 아들과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나이는 얼추 50은 넘어 보인다.  가깝게 지내지만 나이를 물을 수는 없었다.  미국에서는 나이를 묻는 게 결례니까. 친하면 그만이지 굳이 나이 따위는 물을 필요도 없다.


비즈니스를 해보겠다고 뒤늦게 이 동네로 찾아온 키가 잘달막한 동양인 나를 보고 예전에 자신의 처지가 생각났는지 이 동네의 고객성향을 비롯해 참고가 될만한 모든 정보들도 아낌없이 주곤했다. 아니 이 동네에서 비즈니스를 하고있는 유일한 동향인이라 어쩌면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Mazi는 자기 가족 모든 차량의 타이어도 우리 샵에서 교체해 갔다.


Mazi 가 일하고있는 샵을 지나치다 그와 마주치면 우리는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곤 했다. 그런데 2-3개월 동안 Mazi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 어디라도 아픈가?

이곳에서 20여년 일 했다는데 직장을 옮겼을까?

궁금해 하던차에 어느날 경찰 정복을 차려입고 그 무시무시한 경찰차를 몰고 우리 영업장에 나타났다.


"아니 너 Mazi 가 맞아?

그래, 나 경찰이 됐어

경찰? 믿기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구나!  어떻게 된 거야? “


오일 샵에서 매니저로 일 하면서 경찰시험을 봐 합격했고 틈틈이 시간을 내서 경찰훈련 교육을 받으면서 결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한다.  허지만


나이 50이 넘어서 공부를 한 친구의 의지에 놀랐고,

50이 넘은 나이에도 시험에 합격하고 정규 훈련을 마치면 채용을 해주는 미국사회에 놀랐다.


미국에서는 경찰이나 소방관이 될수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시험에 합격후 훈련을 마치고 바로 채용되는 경우, 다른 하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시험도 보고 교육도 틈나는 대로 받아놓고 결원이 생기면 기존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을 하는 방법이다.


그러니까 직장을 다니면서 꾸준히 공부하여 자기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킬수았는 사회다. 5시 이후에 직업훈련 학교를 가보면 업무를 마치고 공부하겠다고 찾아오는 학생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내가 찾았던 직업훈련 학교는 주차장이 잠실 운동장 크기인데도 주차 공간이 없을 정도로 차량들이 넘치고 있었다. 그들이 공부하러 온 분야도 자동차, 전기, 회계, 건축등 다양하다.


나이가 많은데도 근무하는데 괜찮냐고 물었더니 조금은 힘들단다.  벌써 허벅지와 허리에 피멍이 서너군데 들었다먄서 20대 덩치 큰 사람들을 제압하기 위해 몸싸움을 하다보면 상처도 입는다고 한다. 그러나 용기와 의지만은 나의 30대를 비웃기라도 해 보인다.  저이가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두 아이의 아빠가 맞는지 내 눈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24시간 근무하면 48시간 휴식을 취하기는 하지만 직장에서 Mazi의 나이를 고려하여 배려를 해줬는지 이제는 그 친구의 업무 파트너(함께 근무하는 동료)를 경찰견으로 묵어줬단다. Mazi는 경찰견을 돌보는 것도 근무의 연장선으로 인정을 받을수 있으니 한결 편하다고 한다.


자유를 찾아 고향을 뒤로하고 미국에 와서 살아 보겠다는 아버지를 따라와 이곳에서 밑바닥 인생부터 시작했는데 어느덧 주민과 사회를 지켜주는 경찰 공무원이 된 Mazi.  6-7년 정도 더 일하고 나서 은퇴하면 생활비도 높지 않은 몬타나(Montana) 주로 이주하여 살고 싶다고 한다.   현재 살고 있는 이곳 캘리포니아는 대지 200평 남짓에 방 3칸짜리 단독주택이 30만 불 하지만  몬타나 주로 옮겨가면 7 에이커 (8,600평)의 넓은 대지에 화장실 4개, 침실이 4개인 큰 저택도 10만 불에 살 수 있다. 뒤뜰이 넓디넓은 큰 저택을 구입하여 정원수도 가꾸고 전원과 낭만이 넘치는 시골에서 사냥도 하며 와이프와 함께 노후를 즐길 또 다른 꿈에 들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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