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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Jun 14. 2023

외국인이 돼서 고국으로 돌아온 한달살이

차도만 있고 인도가 없는 거리 들


처음으로 미국땅을 밟은 곳은 L.A. 였다.  이민국 수속을 마치고 빠져나오니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손님을 기다리느라 빼곡히 줄 서있는 모습은 한국에 공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공항건물 밖으로 나오니 콧구멍이 시원하다.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서너 번 하면서

비행기 기내의 공기가 탁했나?   

아니면 빌딩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공기가 달리 느껴지나? 했다.   


공항터미널 밖 도로에는 차량들로 아수라장이었다. 질서 정연한 한국공항에 비교하면 무질서 그 자체였는데도 분명 콧구멍은 시원했다. 나를 픽업해 주신 분이     

여기 공기가 서울과는 다르죠?

살아보시면 차량도 사람도 다를 것입니다.   

이제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지만 당시에는 (마음속으로만) 당연히 다르겠지요 했다.  

사람들의 피부색깔은 흰색 아니면 검은색

그리고 차량들은 대부분 미제 차 일테니까요   


공항 근처를 빠져나오니 고층 빌딩은 보이지 않고 낮은 주택들만 즐비한 프리웨이를 120-130 킬로의 속도로 신나게 달리니 이제는 코가 아니라 머리마저 시원하다.  명동 근처 고층빌딩 숲 속에서 근무하다 미국에 와서 느낀 첫인상 이었다.  

  

미국의 첫출발은 자동차 운전 면허증을 따는 일이다. 왜냐면 길이 있어도 걸을 수 없는 곳이 미국 이니까.  한국 같아서는 골목을 돌아서면 식당, 커피숍, 편의점 이 있으나 미국에서는 그 어느 곳을 가더라도 차가 없으면 걸어서 갈 수가 없을만큼 멀기 때문이다. 영업용 택시?  그것은 공항 근처에나 있을 법 하지 내가 사는 동네에는 보이지도 않는다. 해서 미국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시작해야 할 첫 번째 가 운전 면허증 만들기다.   


운전학원에 등록하여 며칠간의 실습을 마치고 시험을 보러 가던 날. 필기시험에 이어 도로주행 시험이 있었다. 시험관이 옆에 앉아서 도로로 나가 운전을 해보란다.  

"저기서 우회전, 여기서 좌회전, 이제는 U turn, 자! 우리가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세요. 저기에다 파킹하세요"

시험관이  

"주차장으로 들어올 시 입구에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셨나요?

예, 봤지요

근데 왜 멈추지 않았어요?

건널목을 거의 다 건넜잖아요

완전히 건너갈 때까지 당신이 멈춰서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은 불합격입니다."


길을 건너는 사람이 횡단보도의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마지막 한 발짝 남았는데 나더러 멈추지 않았다고 불합격시킨 것이다. 새로운 법규에 길들여지지 않은 이방인은  

"웃기는 나라. 원칙도 어느 정도여야지 지나치다"라고 불평을 했다.  

 

살면서 이웃들이 도로 건너기, 자동차 주행에 대해서 많은 팁을 준다. 영락없는 어린애 걸음마 교육이다.   

@  차가 접근해오고 있는 건널목에서 차도에다 발을 한 발짝 내 디뎌 보란다.

     차가 멈춘다. 그리고 완전히 건널목을 건널 때까지 기다려준다.   

@  횡단보도가 없는 곳에서 길을 건너 보란다

     달려오던 차가 저 멀리서 멈추워 기다려준다.   

@  신호등이 고장난 사거리에는 선입선출 (first come, first out) 이란다.

     동시에 들어온 것 같아 누가 먼저인지 조금은 헛갈린다. 멈칫하니 상대방이 네가 먼저 왔으니 먼저 가라고

     손짓한다.   

@  Stop sign 이 있는 일단정지 사거리에서는 여하한 경우에도 일단 멈췄다 가란다

     차가 전혀 보이지 않는 일단정지 사거리에서 어김없이 멈쳤다 가는 그들이 바보스러웠다. 어느 날 사거리

     에서 앞에도, 좌측도, 우측도 차가 안 보여 속도를 줄이면서 멈추지 않고 지나쳤더니 어디선가 경찰차가

     나타나 불을 켜고 쫓아와 티켓을 준다. 이처럼 한적한 곳에 경찰이 숨어서 단속을 하는 것에 놀랬고, 일단

     멈쳤다 가는 그들이 더 이상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에서 비록 빨간불 일지라도 차량에 방해를 주지 않으면 우회전이 가능하단다.

     우회전 이전에 일단 멈춰서 반드시 차량이나 사람을 확인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흘러 운전을 제법

     건방지게 하기 시작한 나. 사거리에서 일단 멈춤은 했으나 내 차가 사람이 다니는 횡단보도까지 침범을

     하고 말았다. 지나가던 보행자가 성질이 까칠한 사람이었는지 발로 내차를 걷어찬다. 나는 창문을 내리고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잘못했으니, 내가 횡단보도를 침범했으니까.   


여하한 경우에도 보행자가 우선인 미국인이 돼서 한국으로 돌아와 한달살이를 하다 보니 가장 이해하기가 어려운 게 바로 도로에서 마주친 차량들이었다.

  

내가 체류하고 있는 곳은 강남의 테헤란로 와 같이 넓디넓은 대로가 아니라 소시민들이 검소하게 모여사는 도봉구 뒷골목에 위치한 방 두 칸짜리 오피스텔형 아파트. 그래도 주거빌딩 두 채에 주차빌딩이 별도로 있어 건물 앞 조그마한 마당은 언제나 깔끔하다.   

전철역 까지는 걸어서 5-6분. 운동삼아 걸어볼 만한 거리다. 그러나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지 않는 골목길에서 늘 당황하곤 한다.  길가 쪽으로 붙어 조심스럽게 걸어 보지만 좁은 공간을 지나가는 차량은 기다려주지 않고 내 옷깃을 스칠 것만 같다. 조용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차가 뒤따라와 비켜주지 않는다고 경적을 울린다. 깜짝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금방이라도 욕이 입밖에 나올 것만 같다.  요사이 신형 차량들은 하이브리드 형이라 자동차 엔진 소리가 업다. 뒤통수에 눈을 달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할 뿐이다.  마치 물건을 훔쳐 도망가는 사람처럼 행여 뒤에 차가 오는지를 확인하려 5미터, 10미터 간격으로 뒤를 힐긋힐긋 돌아보면서 길을 걷는다.  참으로 못할 짓이다.  

 

골목길이 결코 좁지만은 않다. 차 두대가 비켜 가기에 충분한 넓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사람이 다니는 인도는 없고 길 한편에는 밤낯으로 차들이 주차되어 있어 주차장이 돼버린 길거리.  그런데 놀랍기만 하다. 차 두대가 마주쳐 비켜갈 수가 없으면 보다 넓은 공간을 찾을 때까지 다른 한대가 후진을 해준다. 서로 대화도 없이 누가 후진해야 할지를 어떻게 그리도 잘들 알고 있는지!


걷다 보면 어떤 도로에는 인도(사람이 다니는 길)가 있다. 그런데 차량이 인도로 올라와 길을 가로막고 있다. 그들은 잠깐 어디를 들른다던가 짐을 내리고 있는 듯하다. 미국에서 살면서 운동삼아 매일아침 동네 한 바퀴를 도는데 얼추 5-6 킬로미터의 거리를 인도로 걷는다.  몇 년을 걸었어도 인도를 가로막고 있는 차량을 발견한 적이 없다. 내가 찾아온 이곳 고국은 분명코 인도는 없고 차도만 있어 보인다.


우리 집 앞 오거리에는 신호등이 없는데 대형 식재료 마트가 있어 항상 분빈다. 물건 하역 작업을 하는 대형 트럭과 포크리프트, 시내버스, 자가용, 영업용 택시 그리고 시장을 보기 위해 끊임없이 길을 건너는 사람들  아직 이렇다 할 교통사고를 본 적이 없다. 대단하다. 이것을 일컬어 무질서에 질서라고 하는가?  


이 위험한 오거리를 빠져나와 골목을 돌면 아파트 신축 공사를 하고 있다. 시멘트 레미콘트럭이 골목길을 가로막고 시멘트를 10층 높이로 뿜어 올리고 있는데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트럭 옆으로 비켜가고 있다. 나는 한참이나 서서 작업자, 보행자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떤 사람들이 이리도 용감할까? 그들은 폐지를 줍기 위해 수레를 끄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하굣길에 자녀를 마중나온 엄마와 어린이. 그리고 얼굴이 햇볕에 그을려 구릿빛 나는 작업자 모두들 우리 이웃이었다.


이제는 길거리를 나서면서 여기는 "차량이 우선" 이야 하고 마음을 다 잡으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나 여전히 적응이 안 된 것은 길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이다.


인도가 있는 길거리에서, 뒷동산 산책로에서, 집 근처 강가에 있는 도보거리에서 매일 마주친 사람들이 언제나 신경이 쓰인다. 두 사람이 겨우 비켜갈 수 있는 넓지 않은 곳에서 두 부부가, 연인들이, 친구들이 짝지어 나란히 마주 오면 나는 어디에 서서 기다려줘야 할지 당황하곤 한다. 그들은 내가 투명인간인 듯 개의치 않고 짝지어 길을 독차지하고 다닌다.  전철역에서 열차문이 열리는 입구에 서서 기다리고 있노라면 어떤 분이 내 코 앞으로 지나간다. 행여 내 뒤편이 막혔나 하고 뒤돌아보면 텅텅 비어있다.  궁금하다. 하필이면 이 좁은 공간 앞으로, 내 코 앞으로 가로질러 지나갈까?


하루는 와이프와 길거리를 걷고 있는데 우리 두 사람 사이를 갈라 지나간다. 어이가 없어 우리 둘이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럴 수가?" 무례하다기보다는 무섭다는 생각마저 든다.  불과 한 달 전에 살았던 미국에서는 개와 함께 산책하던 이웃이 나와 마주치면 개를 끌고 잔디밭으로 들어가 내가 지나가기를 기다려 주었다.   두 사람이 비켜가기가 넉넉치 못한 거리에서는 저 먼발치에서 기다려주며 어서 빨리 오라고 웃으며 손짓까지 해준다. 행여 개에 놀랠세라, 비켜 가기가 좁을세라 늘 상대방을 배려하고 웃는 얼굴로 마주쳤던 그 길거리들이 보고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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