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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족이 되는 시간 Oct 06. 2021

헤어지기 위해 가족이 되었습니다

1. 평범한 위탁가족입니다


 서정주 선생의 표현처럼 나를 키운 건 8할이 ‘결핍’이었다. 때론 부끄럽고, 때론 위축됐던 결핍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어려운 사람의 심정을 절절히 공감하게 된 것도 오랫동안 결핍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늦깎이 대학생이었다. 결혼과 함께 학교에 다녔고, 방학 때면 힘든 아르바이트를 해 겨우 학비를 마련했다. 책값이며 교통비, 생활비가 만만찮았는데 시댁도 우릴 도와줄 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시어머님이 밤늦게까지 식당일을 하셨고, 작은 빌라에 전세 들어 살고 계셨다.


 자주 쌀이 떨어졌다. 수시로 독촉장이 날아왔다. 겨울엔 집에서도 패딩을 입고 지냈다. 입김을 불면 하얀 김이 결핍처럼 피어올랐다. 쌀이 없어서 하루를 굶다가 친정에 간 적이 있다. 막상 엄마 얼굴을 보니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내 사정을 아시면 속상하실까 봐 먼저 눈치가 살펴졌다. 엄마가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기저귀 가방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꺼내 쌀 항아리 앞으로 갔다.


 뚜껑을 열고 쌀바가지를 잡는 순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왜 이러지? 손이 왜 이렇게 떨리지?' 두 손을 주무르고 다시 쌀바가지를 잡아서 퍼 담으려고 하는데, 비닐이 제대로 벌려지지 않았는지 쌀이 바닥으로 후두둑 쏟아졌다.


 몰래 퍼 담고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고 싶었는데, 엄마에겐 정말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일이 커져 버린 것이다. 등에 업은 아기(첫째 휘성이)는 보채고, 바닥엔 쌀이 쏟아졌고, 두 손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날만큼 슬프고 비참한 날은 없었다. 검은 비닐봉지를 바닥에 펼쳐놓고 손바닥으로 쌀을 쓸어 모았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엄마가 보시면 안 된다고, 정말 안 된다고, 그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서 쌀을 씻었다. 검은 비닐봉지엔 바닥에서 쓸어 모은 쌀이랑, 항아리에서 퍼 담은 쌀이 섞여 있었다. 씻고 또 씻으며 훌쩍훌쩍 눈물을 닦고, 콧물을 닦았다. 그렇게 밥을 해서 상을 펴고 앉았는데 참았던 설움이 터져 나왔다.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는….” 

 울면서 식사 기도를 한 건 처음이었다. 밥은 때가 되면 당연히 먹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당연한 게 아니었다. 밥 한 공기가 내 앞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가 필요한지 절실히 깨닫게 된 날이었다.


 두 아이는 학원에도 보내지 않고 키웠다. 혹자는 나에게 특별한 교육관이 있냐고 물었지만, 형편이 되질 않아서 못 보냈다. 초등학교 교사인 언니가 학교에서 쓰던 교사용 참고서랑 조카들이 사 놓고 풀지 않았던 문제집을 물려받아 집에서 공부했다.


 주말엔 아이들과 도서관에 갔다. 책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돈 안 들이고 오래 놀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어서 가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 상영도 해주고, 신간 도서와 각종 월간지도 구비해 주고, 정수기·화장실까지 다 무료니까 우리에겐 그보다 은혜로운 곳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결핍을 알았기 때문일까? 두 아이들은 자장면 한 그릇을 먹어도 “감사합니다”, 티셔츠 하나를 사줘도 “감사합니다” 꼬박꼬박 인사를 한다. 대학생인 둘째 어진이는 지금도 만 원 한 장을 두 손으로 받으며 “어머, 감사해요!”한다.


 우리를 키운 건 8할이 ‘결핍’이었다. 형편이 나아질 때마다, 부족한 것이 채워질 때마다 온 마음으로 감격하고 감사할 수 있었던 건 결핍 때문이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결코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도 결핍을 통해 배웠다. 결핍은 내 삶을 뒤집었고, 새롭게 보게 했다.


 위탁엄마가 된 것도 결핍 때문이었다. 친부모와 떨어져야 하는 은지의 사연을 듣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결핍의 모양은 다를지라도 그 심정은 같을 테니까. 얼마나 막막하고 초조할지, 얼마나 숨 막히고 비참할지 결핍을 겪어본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은지 세 살 때>

                                                                 


 은지와 가족이 된 지 7년째다. 앞으로 은지가 자신의 결핍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된다. 결핍 속에서 두 아이가 잘 자란 것처럼, 우리 은지도 이 상황을 거뜬히 넘어서서 밝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결핍은 결핍으로 끝나지 않을테니까.


 은지가 더 단단해지길, 내면이 강한 사람으로 자라길 기도한다. 우리 앞에 또 어떤 시간이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사람을 낳듯, 사랑은 사랑을 낳는 거라고 믿는다. 그 믿음으로 오늘도 은지를 낳고 있다. 

 “은지야, 사랑하고 축복해.”



가정위탁제도란? 

친부모의 사정(질병·가출·이혼·학대·사망 등)으로 친가정에서 지낼 수 없는 자녀를 복지시설에 보내지 않고, 일반 가정에 맡겨 양육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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