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밤이었다.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입을 쫙 벌리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악을 쓰면서 울었다. 분유를 줘도, 안아 줘도, 모두 싫다고 했다. 머릿속이 하얘질 만큼 울고 또 울었다. 아기를 안고 일어나 토닥이고, 어르고, 흔들면서 방을 돌아다녔다. 그것도 잠시, 다시 몸을 뒤로 젖히고 찢어져라 울기 시작했다. 계속 두리번거리면서 우는데 순간, 뭔가를 찾는 것 같았다.
'혹시, 친엄마를 찾나?'
00원(미혼모 시설)에서 아기랑 헤어지며 빨개진 얼굴로 현관 앞에 서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아기를 안고 나오면서 인사하니까,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끈으로 만든 팔찌를 아기 손목에 채워주고, 뽀뽀를 하고, 다시 뒷걸음질로 몇 발짝 물러나서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쉴 새 없이 눈가를 닦았던 그녀다.
엄마…, 잊지 마….
스무 살 어린 엄마라고만 생각했는데 모성은 누구와도 다르지 않았다. 아기를 안고 집으로 오는 내내 그 어린 엄마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간신히 슬픔을 삼키며 아기를 쓰다듬던 손끝까지 젖어있었다. 창밖에 날리던 눈발이 창에 닿자마자 한 방울 눈물로 점점이 찍혔다.
아기와의 둘째 날이었다. 밤이 되니까 다시 두리번거리며 찢어져라 울었다. 업고, 안고, 흔들고, 서성거리고, 다시 눕혔다가, 안았다가, 분유를 줬다가, 토하면 다시 닦고, 옷 갈아입히고, 다시 안고, 토닥이고…, 무한 반복이었다. 울다 자다, 울다 자다를 반복했다. 조금 깊이 잠이 들었나 싶을 땐 이미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셋째 날이었다. 밤이 되자 다시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나는 허둥지둥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물을 끓이고, 젖병을 찾는데 둘째 어진이가 슬금슬금 다가 오더니 옆에 섰다. 뭔가 도와주려나보다 하면서 어진이를 힐끗 쳐다보니까 아이 표정이 묘했다.
엄마…, 저기, 음, 아기 다시 돌려보내면 안 돼요?
방실방실 웃는 아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온 아기는 밤만 되면 울었다. 귀엽고 예쁜 동생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본 아기는 얼굴이 터질 듯이 빵빵했다. 어진이는 여간 실망한 게 아니었다.
“어진아 미안, 애기 우유만 먹이고….”
어렵게 뱉은 그 말조차 들어줄 수가 없었다. 오직 아기를 달래는 게 우선이었다. 엉클어진 머리칼이 자꾸 시선을 가리는데도, 묶을 생각을 못했다. 땀은 나고, 손은 바쁘고, 머릿속은 복잡했다. 방에선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어진이는 실망한 얼굴로 터덜터덜 제 방으로 들어가고, 내 손은 작은 분유 스푼을 쥐고 정확히 떠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길인데, 왜 이렇게 힘이 들까? 왜 나는 이렇게 힘든 길만 선택할까? 이게 우리 가족에게도 행복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선택했는데, 어진이가 너무 힘들어했다. 아기는 울고, 내 정신도 울고.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아기처럼 내 사지도 마구 버둥거렸다.
어진이는 그 후로도 한참을 혼자 일어나, 혼자 준비하고, 혼자 등교했다. 쓰러져 잠든 엄마를 차마 깨우지 못했다. 알람이 울리면 얼른 끄고, 씻고, 냉장고를 뒤져 주섬주섬 꺼내먹고, 교복을 툭툭 털어 입고, 혼자 집을 나섰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인사를 하고, 미명의 거리를 나섰던 아이. 이젠 그 아이가 은지를 키우고 있다. 어진이는 오늘도 은지 머리를 묶어주고, 용돈을 아껴 은지 옷을 사 오고, 뽀뽀를 다섯 번 해달라며 오히려 은지에게 애교를 부린다.
저녁엔 같이 샤워를 하고, 치카치카 노래를 부르며 엉덩이를 씰룩이다가 둘이 푸하하 웃는다. 은지는 언니가 제일 좋다며 졸졸 따라다니고, 밤엔 베개를 끌어안고 언니 방으로 간다. 은지는 누구 새끼야? 물으면, 언니 새끼! 하고 코를 찡긋하며 웃어 보인다.
“은지야, 언니도 은지가 제일 좋아. 우…, 뽀뽀….”
성(姓)이 다른 아이들이 가족이 되어 살고 있다. 그 속에서 어느새 성숙해진 어진이를 본다. 은지를 맞이하고, 은지와 가족이 되어 살면서 가장 많이 달라진 어진이다. 막내였다가 뒤늦게 언니가 됐으니 나름의 성장통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짐작만 할 뿐.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사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은지가 우릴 키우는 것 같다. 처음엔 우리가 은지를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렇게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하고 싶다. 잘한 선택이었다. 내 생애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혈연보다 더 진한 ‘사랑’이 우릴 가족으로 묶고 있다. 낯설지만 소중한 이름, 우린 위탁가족이다.
가정위탁제도란?
아동이 가정 내·외의 여러 요인(부모의 질병, 가출, 실직, 수감, 사망 등)으로 친가정에서 건강하게 양육할 수 없을 때, 일정 기간 아동을 보호·양육하는 제도다. 적합한 가정에서 아동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친가정이 가족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문적인 아동복지서비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