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와 평화
“할아버지, 정말 병원 안 가셔도 돼요?”
철원으로 향하는 관광버스,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중년의 남자가 내게 물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남자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다. 하긴 고령의 승객인 내가, 한 시간 전부터 낑낑거렸으니 걱정이 됐을 테지. 사실 지금도 내 오른쪽 어깨는 바늘다발로 긁어대는 듯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병원에 간다한들 뭘 어떻게 해주겠는가. 이 고통은 70년간 이어져 온 것인데.
“괜찮네. 백마고지 전적지엔 도착했는가?”
난 아픔을 참고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자 남자는 안심한 듯 다시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는 말했다. “아까 가이드가 10분정도 남았다 그러더군요. 근데...” 그는 말하다 말고 시선을 내 가슴팍에 고정했다. 자연스럽게 나도 눈을 깔고 가슴 부분을 확인했다. 아, 참전용사 뱃지를 보는 건가?
“저희 아버지가 백마고지에서 싸우셨거든요”
그랬다. 이 분의 아버님께서도 참전용사셨다. 어쩐지 날 보는 표정이 내 아들과 닮았다 했다. 존경하면서도 안쓰러운, 그런 눈빛. 같은 부대원이었나 싶어 그에게 아버님 존함을 물었다.
“소속은 모르겠고 성함은 김영길이십니다”
김영길... 모르는 이름이다. 하지만 남자의 눈빛을 보고 확신했다. 그의 아버지는 분명 나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칼빈 소총을 들고 싸웠던 전우였음을.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싸웠던 창밖의 들판과 산맥을 아련하게 살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자의 아버지도 이곳을 다시 찾았을까? 그랬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죽어간 전우들 생각에 슬펐을까? 대한민국을 지켜냈음에 기뻤을까? 모르겠다. 다만 내 경우를 말하자면,
난 지금 전선으로 향하는 트럭에 올라탄 군인 같은 기분이다. 식은땀에 온몸이 젖어들고, 수류탄이 옆에서 터진 듯 귀는 먹먹하고 머리가 띵하다. 낯설지 않은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올수록 70년 전 그날의 악몽이 떠오른다. 또다시 총 맞고 싶지 않으면 어서 엎드리라는 내 어깨의 신호가 온 몸에 퍼진다. 당장이라도 버스기사에게 내려달라고 소리치고 싶다. 하지만 난 주먹을 꽉 쥐고 참았다. 각오한 일이었고 여기까지 온 이유가 있었기에. 모든 건 손주의 전화 한 통에서부터 시작됐다.
“철원이라니까. 철원. 여기 펜션 되게 잘돼있어”
어느덧 국방의 의무를 질만큼 훌쩍 자란 손자는 철원 6사단에 배치됐다. 손자는 일주일 전 내게 전화를 걸어, 부대로 면회를 와 달라 간곡히 부탁했다. 격오지라 면회를 와야 외출을 나갈 수 있다나? 꼭 할아버지와 함께 철원에 있는 펜션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싶다고 했다. 하나 뿐인 내 손주. 아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테다. 하지만 녀석이 있는 그곳은 아팠다. ‘철원? 하필 지옥 같은 그곳에...’
1.4후퇴 이후 국군과 중공군은 철원에서 치열한 고지전을 벌였다. 나도 그곳 최전선에서 싸웠다. 참혹한 살육전이 눈앞에서 벌어졌고 스스로가 추악해져야만 살아남았다. 그 참극은 1952년 10월, 백마고지 전투에서 정점을 찍었다. 10일이 안 되는 기간 동안 만 오천 명의 병사가 고지 위에서 쓰러졌다. 내 부대도 그곳에 있었다. 난 전투가 시작된 지 이레가 지난 오후, 어깨에 총을 맞고 후방으로 이송됐다. 우습게도 날 죽이려 날아들었던 그 총알 덕분에 난 살아남았다. 병상에서 깨어났을 때, 우리 부대원들이 아직 백마고지에 있단 말을 들었다. 병원 밖으로 나왔을 땐, 우리 부대가 직격탄을 맞았단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70년을 기다렸지만 새로운 소식은 오지 않았다. 창밖을 바라보며 그들을 생각한다. 전우들이여, 그대들은 아직 여기 있는가?
“도착했습니다. 천천히 내려주세요”
손자를 만나기 전, 미리 철원에 가서 적응해보라고 아들이 DMZ 평화관광 투어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난 지금 70년 만에 다시 철원 땅을 밟는다. 쓰라린 어깨를 부여잡은 채 말이다. 다행히 옆자리 남자는 가이드에게 내 사정을 말해주었고, 가이드는 바로 옆자리에 나를 배치했다. 그 배려 덕분에, 난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전적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고개를 들자, 주차장 한가운데 앞발을 높이든 백마 석상이 눈에 들어왔다.
‘백마고지 영령들이여! 고이 잠드소서’
석상 밑에는 호국영령들에게 바치는 문구가 보인다. 영령들... 내 눈앞에서 쓰러져간 전우들이 아른거린다. 고통스럽게 죽어간 그들. 70년이 지난 지금은 편안해졌을까. 확인할 순 없지만, 그랬으리라 믿는다. 그대들 덕분에 살아남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고개 숙여 애도를 표하고 있으니. 부디 그대들이 웃는 얼굴로 영면하시길 소망하며 우리는 입구에 들어섰다.
전적지 언덕을 오른다. 길 양쪽에 세워진 수십 개의 태극기와 수십 그루의 자작나무들이 우릴 맞이한다. 숭고한 마음이 깃들 때쯤, 결연하게 우뚝 서 있는 백마고지 위령비 앞에 당도했다. 그 뒤로 보이는 위풍당당한 전적비와 더불어서 호국영령들의 위대한 희생과 업적이 마음 깊숙이 전해진다. 우리에게 자유 관람 시간이 주어졌다. 모두가 뿔뿔이 흩어진 와중,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전사자비였다. 검은색 돌판에 빼곡히 적힌 이름들. 전투 중 내 앞에서 쓰러졌던 이름 모를 전우도 저기에 이름이 올라와 있을 것이다. 난 우리 부대원의 이름을 뒤져봤다. 눈이 침침해서 손으로 이름을 하나하나 더듬으며 아련한 회상에 잠겼을 때, 가이드가 내게 다가왔다.
“이용주 선생님도 이곳 백마고지에서 싸우셨나요?” 난 전사자비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회상을 방해하지 말아줬으면 했다. 이름으로라도 어서 빨리 전우들과 재회하고 싶었으니.
"그럼 혹시 김민철 하사를 아십니까?” 난 그 이름을 듣자마자 입이 떡하고 벌어지면서 가이드를 쳐다봤다. 어찌 그 분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백마고지를 12번이나 재점령할 때, 우리를 이끌어 준 분대장님이셨는데. 난 대화를 통해 가이드가 말한 김민철 하사가 내가 알던 그 분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어떻게? 가이드는 어떻게 분대장을 알고 있을까?
“저희 아버지십니다”
그 말을 듣자 희미해졌었던 분대장의 얼굴이 번뜩 선명해졌다. 가이드의 얼굴은 분대장의 얼굴과 똑 닮아 있었다. “선생님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아끼던 부하였는데 후방으로 이송된 이후 연락이 끊겼다고. 살았나 죽었나 너무 궁금하다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분대장이 살아있었단 사실과 더불어 그 역시도 날 그리워했다는 말에 순간 어깨 통증이 멎었다. 어깨 깊숙이 맺힌 응어리가 풀린 기분이다. 기쁨에 취해 잠시 고통을 잊고 있는 걸 수도 있을 테지만 이 순간만큼은 내 몸이 평화를 찾은 듯 했다.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걸었다. 전적비 안쪽으로 조금 올라가자 자유의 종각이 나타났다.
“사단에 전사자가 많아 부대개편이 이뤄졌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 부대는 자연스럽게 해체됐고요. 부대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연락이 끊겼지만 그때까지 대부분 살아계셨다 했습니다. 아마 나머지 분들도 저희 아버님처럼 살아남지 않으셨을까요.” 눈물이 쉬지 않고 흘렀다. 70년 만에 들은 희소식이다.
어느새 우리는 정상에 올랐다. 저 멀리, 눈에 익은 풍경이 보인다. 총알이 내 어깨를 관통했던 바로 그곳. 백마고지다. 40만 발의 포탄이 저 작은 산 위에 떨어졌었다. 그때는 시체로 뒤덮이고 피로 적셔진 민둥산이었다. 다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어깨가 다시 아파오는 것 같고, 아직도 저기 백마고지에서 전우들이 살려 달라 울부짖는 것 같다.
“아버지는 자주 여기 올라와 백마고지를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전투 당시를 회상하며 힘껏 찡그리고 있던 난 가이드를 쳐다봤다. 궁금증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분대장님께서는 이 끔찍했던 곳을 다시 찾아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슬펐을까. 아팠을까. 아니면 그리웠을까.
가이드는 아련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시체로 가득 찼던 곳이었는데, 정말 지옥 같은 곳이었는데... 이젠, 두 눈이 아프도록 아름답구나. 마침내, 가슴 시리도록 평화롭구나”
그때 보았다.
저 멀리 펼쳐진 황금빛 들판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한 쌍의 참새와,
햇살의 따사로움을 못 이겨 낮잠을 청하려 곤히 누운 한 마리의 백마를.
그리고 내게 고개 숙인 한 남자를.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을 지켜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