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그날의 기억1: 12.3 계엄령(3부)

나도 정말 내란범인가?

by 글 쓰는 경찰관

뉴스 속 혼란과 달리 출근길은 이상하리만큼 평화로웠다.


계엄령이라고 두려움에 떠는 사람 없었고 세기말처럼 광란의 질주를 벌이는 자동차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출근길. 오히려 핵폭발을 피하려는 듯 비상깜빡이를 켜고 액셀을 밟아대는 사람은 나뿐이었.


'뭐지, 나만 호들갑인가?'

'계엄령, 사실 그거 별거 아닌 거 아냐?'


기분이 묘했다.

한국에 놀러 온 외국인이 북한 미사일 발사에 오열하다가 덤덤한 한국인을 보며 어리둥절하는 느낌?


전쟁터로 떠나는 군인처럼 엄마와 뜨겁게 포옹까지 했건만, 괜히 나 혼자 야단법석을 떤 것 같아 낯 뜨겁기까지 했다.


'그래, 생각보다 별일 아닐 수 있어."


사람은 분위기의 동물이 했던가?

방금 전까지 흥분했던 몸과 마음이 스산한 겨울밤공기에 차분해졌다.

에서 자동으로 나온 노래조차 느긋한 발라드였다.


애절한 사랑 노래에 비좁았던 시야가 넓어지자, 내가 달리는 방향 위로 밝게 떠 있는 달이 눈에 들어왔다.


차창을 비추는 그 달덩이를 향해 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이대로 무탈하게 오늘 밤이 지나갔으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우리 엄마가 걱정하시지 않도록...


'지이잉. 지이잉.'


하지만 걸려온 전화 한 통에 평화 무드는 남북관계처럼 와장창 깨져버렸다.


"지금 어디야. 버스(경찰버스) 곧 출발해."

"잠시만요 부장님! 5분이면 도착해요!"


급하게 출근하지 말라는 제대장의 카톡과 달리 버스는 급박하게 부대를 떠나려 하고 있었다. 심지어 부대원들이 다 도착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만큼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막판 5분을 분노의 질주 주인공처럼 밟아버렸다.

과속이긴 했지만, 계엄령에 출근하는 공무원이니 괜찮지 않았을까.


다행히 버스가 떠나기 직전 부대에 도착했고, 나는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자리로 가면서 선배님 한 분 한 분께 인사를 드렸. 하지만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부대원들의 아우성에 내 목소리는 반쯤 묻혀버렸다.


이 야밤에 뭔 짓이냐. 윤석열은 탄핵될 것이다...

돌아버린 게 아니냐. 계엄령이 웬 말이냐...

하필 이런 때 기동대 와서 이 무슨 고생이냐...


하필 오늘이 휴무날이라 그런지 부대원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 있었다. 더군다나 어제 밤샘근무를 마치고 오늘 아침에 퇴근한 터라 다들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하지만 계엄령은 직원들의 사정 따윈 전혀 봐주지 않았다.


"버스 출발합니다!"


자리에 앉았을 땐, 버스는 이미 부대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이동하면서 마지막 인원 점검이 이루어졌다.

다섯 분이 버스에 타지 못한 상태였다.


안타깝게도 그중 한 분은 쉬는 날이라고 춘천의 처갓집을 가신 분이었다.(부대 위치는 서울)


아내의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아 장모님께 케어를 부탁드린 건데 쉬는 날이라고 아내를 만나러 갔다가 날벼락을 맞은 것이었다.


듣기로는 열외가 안 되냐고 사정사정했다는데, 단칼에 거절당하고 부랴부랴 춘천에서 오고 계신단다.


아마 그분이 윤석열 대통령을 가장 원망하는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일각에서는 계엄령에 동원된 일선 경찰들을 부역자라고 부르지만,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도 오밤중에 출근하기 싫었습니다!'


목적지로 가는 동안 잠시 눈 좀 붙이라고 복도등을 꺼주었다.

하지만 모두가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하느라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탓에, 버스 안은 환하게 빛났다.


당시 네이버 뉴스 속보에는 계엄군이 경내로 진입했으며, 계엄 해체를 요구하기 위한 국회의원 정족수가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가 어딘가로 달려가는 그 순간, 대한민국은 역사의 분기점에 서 있었다.

고요해진 버스 안은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 침묵을 깨고 질문을 던졌다.

"근데... 저희 어디로 갑니까?"


모두가 궁금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제일 앞 좌석에서 제대장이 몸을 돌려 조용히 대답 주었다.


"저흰 국회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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