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불러줘
오늘도 보험사로부터 마케팅 전화를 받았다. 모르는 번호는 거의 받지 않는데,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지역번호여서 혹시 해서 받았다.
“여보세요!”라고 전화를 받으면 거의 대부분 “안녕하세요. 어머님! 좋은 정보 알려드리려고 전화드렸어요!” “사모님! 안녕하세요. 저희가 새로운 보험상품을 출시했는데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희 회사가 고객님에게 꼭 필요한 신제품을 출시해서 ~”라는 3종류의 내용으로 낭랑한 목소리가 전화를 건 이유를 말한다.
전화를 받은 미래 고객의 정보가 없을 경우,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여자가 받으면 ‘어머님’ ‘사모님’ 남자가 받으면 ‘아버님’ ‘선생님’이라는 일반적인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다. 어머님, 아버님, 사모님, 선생님, 이 네 가지 호칭에 대해서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이 호칭만으로도 그 회사 마케팅의 질적 수준과 고객에 대한 철학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며 최소한 변화를 따라가고 있는지, 아니면 앞서가며 선도하고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것 같다.
1:1, man to man으로 이루어지는 전화 마케팅에서 일반화된 호칭을 대충 사용한다는 것은 상당히 무례한 방법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목소리에는 ‘어머님’ ‘아버님’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라는 지침을 받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약 그런 교육을 시켰다면 그 교육자는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다. 자격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름이나 직함을 알고 있다면 당연히 이름을 불러야 한다. 혹시 직함을 알고 있다면 더욱 좋은 호칭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름을 모르는 상황에서 호칭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가능하면 호칭을 사용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전화나 홈쇼핑과 같이 대중을 대상으로 마케팅 광고를 하는 회사들은 이에 대한 좀 더 세련된 연구가 필요하고 그 연구를 바탕으로 직원을 교육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일반화된 호칭으로 불렸을 때, 그 호칭과 전혀 상관이 없거나 그렇게 불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오류를 시정할 수 있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요?”라고 반문할 수 있다. 매우 좋은 인품을 갖춘 사람이라서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나와 같이 까다로운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어머니도 사모님도 선생님도 아닌데 그렇게 불리는 것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다는 것은 그렇게 불려도 될 사람이거나 무심한 것일 뿐이다. 그것을 너그러움이나 아량이라고 우긴다면 그럴 수 있다고 충분히 동의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를 향한 호칭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자기와 전혀 관계가 없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매우 듣기 싫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체를 몰라서 그런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아니라고 밝힐 필요가 있다.
학생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나는 종종 “저기야! 거기!”라고 이상한 대명사(?) 호칭을 사용하곤 했다. 그렇게 부르면 여러 학생이 나를 주목한다. 그러면 손으로 한 사람을 지정하던지 모습이나 옷차림의 특징으로 누구를 이르는 것인지 다실 설명을 하게 된다. 나처럼 까칠한 학생은 나의 이런 잘못된 호칭에 대해 늘 이렇게 반응한다. “저요? 저의 이름은 ‘저기’가 아닌데요!” 나는 즉시 “미안해요. 나의 저질 기억력 때문에~”라고 사과와 변명을 한다. 정말로 미안했다면 어떻게든 노력해서 학생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정확하게 불러주며 그 누구도 기분 상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타인이 나에 대해 사용하는 호칭은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내가 타인에게 사용하는 호칭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겼던 것이다. 이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자주 접하는 사람들이 아닌 경우에는 “저기 검은색 코트에 갈색 목도리 한 학생!”과 같이 대상의 차별화된 모습으로 특정한 사람을 부른다.
이런 호칭은 직접적으로 그 누군가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대상을 통해서 누군가를 지시하는 것이다. 대명사를 통해서 고유명사를 지시하는 것이다. 듣는 사람의 기분을 다치게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 다른 존재, 그 대명사가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 누군가의 어머니도 아버지도 사모도 선생도 아닌데, 나를 그들의 범주에 넣어서 취급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 범주에 속한 사람들이라면 문제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히 나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이름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는데, 다른 존재에 의존하여 나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어떤 다른 의도가 아니라면 나의 사례처럼 상대방에 대한 무례임이 분명하다.
‘나’로 나를 부르지 않고 ~의 어머니, ~사모님과 같이 ‘누군가의 무엇’으로 부르는 것은 그 누군가의 주체성이 다른 주체에 귀속되어 표명되는 것이다. ‘영애’나 ‘영식’이 같이 권위자에게 속한 자녀로서 표기하는 것 또한 그러하다. 교육자를 의미하는 ‘선생’이라는 말은 누군가에 대한 존칭의 의미로 다양한 사람을 대상으로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나처럼 ‘선생’이라는 말에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은 이 호칭도 달갑지만은 않다.
생각과 배려가 부족한 호칭의 무례는 내가 경험한 것처럼 수준 떨어지는 마케팅 전화나 홈쇼핑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 상품에 대한 전문성이 아니라 소비자와의 ‘소통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대화를 시작하는 방법조차도 연구하지 않았음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는 것 같다. 불과 몇 초, 몇 분의 짧은 시간에 설득력과 신뢰를 확보하고 필요를 자극하여 구매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예의와 존중이 있어야 한다. 상냥한 어투나 태도가 친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진정성을 결여한 친절의 표피일 뿐이다. 상대방에 대한 섬세한 관심과 그 필요에 주목하고 그것을 위해서 소통하며 행동을 취하는 것이 진짜 친절이다. 언젠가부터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속이 훤히 보이는 이기적인 의도를 지닌 유치한 마케팅용어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소통에 있어서 호칭은 상대방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말을 건네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기 위한 도입 단계로 볼 수 있다. 누군가 자기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준다는 것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마음의 빗장을 푸는 효과가 있다. 누군가에 대한 이름과 직함을 정확하게 불러준다는 것은 소통의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상대방의 정체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어머니, 아버님, 사모님, 선생님’이라는 일반화된 호칭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도 충분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호칭이 필요한 경우라면 “누구시라고(어떻게) 불러드릴까요?, 존함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고 상대방이 원하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호칭 일반화의 오류와 무례를 줄일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어머님’, ‘사모님’으로 불리는 것이 싫다. 자녀나 남편의 유무에 의해 나의 존재가 확인되는 것 같아서다. 내 자녀가 있든 없든, 남편이 있든 없든 ‘나’로서 불리기를 원한다. 누군가의 의해서 나의 정체가 알려진다는 것은 다분히 주체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편, 아내, 자녀가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 군가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불러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타자의 주체성을 인정한다는 표명이다. 나를 독립된 하나의 존재로 인정하는 가운데, 관계가 설정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