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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의 여정 Aug 20. 2023

한국에서는 안되고, 해외에서는 되고


둘째가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을 갖고 미국 삶에 대한 꿈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큰 아이입니다.

지금 큰 애는 일본 와세다대학에 재학 중입니다.


중간에 휴학하고, 한국 중견업체에서 1학기 동안 인턴을 했고, 지금은 졸업을 미루고 한국에서 두 번째 인턴을 하는 중입니다. 졸업 후에는 정직원 전환을 꿈꾸면서 말이죠.

지금은 큰 애가 성장의 선순환 궤도에 오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첫 주재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에는 큰 아이는 가족 모두의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모든 나라에서 정상적인 계층이동의 방법이 교육입니다.

그래서, 상위계층은 자녀가 그 계층에 있도록 하기 위해, 중하위 계층에서는 상위계층으로 자녀가 이동할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 교육에 대한 투자에 집중합니다.

이런 교육투자에 큰 관심을 갖는 나라가 한국, 중국, 인도라고 합니다.

특히, 한국의 다소 과도한 교육투자는 모든 가정의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상황 속에서 해법을 찾은 게 바로 "선행교육"입니다.

선행교육은 한국 교육계에서는 공식적으로는 금지된 것으로 얘기되지만, 이미 너무나 공고히 이뤄지는 "진입장벽"입니다.



선행교육은 이렇게 이뤄집니다.

유치원 들어가서는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먼저 사교육을 통해 공부합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중학교 교육과정을 미리 공부합니다. 중학교 가서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미리 공부해서 완료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되면, 중학교에서의 경쟁은 내가 고등학교 몇 학년 과정까지 공부를 미리 끝냈고, 선행교육의 정도를 어느 정도 완벽하게 끝냈는지의 게임입니다. 고등학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선행교육을 얼마나 완벽하게 끝냈는지에 따라 성적이 결정되고, 대입 역시 결정되게 됩니다.



큰 애는 첫번째 주재지 국제학교에서 오바마 상을 받던 꽤 공부를 하던 녀석이었습니다.

미국국제학교에서는 성적 우수자에게 미국 대통령상을 줍니다.

그래서, 한국 중학교에 가서도 적응에 문제가 없을 거라고 오판했습니다.

오판이라고 얘기하는 건, 이런 한국의 "선행교육"에 의한 "진입장벽"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큰 애는 서울 강남에 꽤 교육열이 높은 중학교로 입학합니다.

반포, 서초, 잠원에서 학생들이 유입되기 때문에 이 학교 안에서의 경쟁은 치열합니다.

큰 애가 중학교 1학년 들어가서 처음 받아온 성적을 보고 가족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지옥이 시작됩니다.

와이프와 큰 애의 싸움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됩니다.

와이프는 큰 애의 성적에 놀라서 애를 채근하고, 큰 애는 큰 애대로 노력은 하지만 생각만큼 성적이 오르지 못하는 것에 속상해 하다가, 급기야는 좌절하게 됩니다. 한국학교는 선행교육으로 학생들간의 성적차이가 크지 않으므로, 시험의 난이도를 통해 학생성적 순위가 달라지게 합니다. 이런 구조는 선행학습의 완성도가 높은 학생에게 더욱 유리합니다.


해외 주재할 때 큰 애와 함께

"니 꿈은 뭐야?"

를 갖고 얘기 나누던 생기발랄하던 큰 애의 얼굴은 온데 간데 없습니다.

밝은 미소가 좋았던 큰 애의 얼굴은 어느덧 거뭇거뭇해져 갑니다.

"선행교육"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차분히 쌓아 가는 "단단한 진입장벽"입니다.

그래서, 해외에서 중간에 한국 교육제도 안에 들어와 이 진입장벽을 넘어서는 건 여간해서 쉽지가 않습니다.

중학교 3년 내내 와이프와 큰 애의 크고 작은 다툼과 무너져 가는 가족을 보면서 뭔가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다행히, 둘째는 근처 초등학교에서 잘 적응 중이었습니다.

영재로 선발되서 별도 교육 받을 기회도 주어지길래 염려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큰 애는 발등의 불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등학교 진학하면 대학 진학은 꿈같은 얘기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남은 해결책이 다시 한번 해외주재의 기회를 만들어 보자는 거였습니다.

다행히 각고의 노력 끝에 두 번째 해외주재를 할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큰 애가 중학교 3학년을 마칠 때 즈음에 해외주재 발령이 났습니다.

인사라는게 워낙 변수가 많다 보니 미리 큰 애에게 얘기해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출국 일주일 전 와이프와 함께 큰 애만 집 근처 카페로 불렀습니다.



"큰 애야, 학교 생활 많이 힘들지?"

"그 얘기 하려고 불렀어?"

큰 애는 퉁명스럽게 답변합니다.

"아니, 한 가지 해 줄 얘기가 있어서."

"무슨 얘기인데?"

"아빠가 이번에 다시 해외주재를 하게 됐다. 내년부터 다시 해외로 나갈 거니깐 거기 국제학교에서는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잘 해 보는거다. 알았지?"

그 순간, 큰 애는 멈칫 합니다.

"아빠, 정말이에요?"

그러면서, 눈물을 쏟기 시작합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펑펑 울더군요.

그렇게 세 사람 모두가 한참을 서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순간은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두 번째 주재국에서 큰 애는 역시 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GPA는 매번 4점대 수준이었습니다.

학교 활동도 활발해서, 학교에서 다양한 교내활동을 참여하고, 때로는 리더가 되기도 하고, 팀원이 되기도 하면서 학교생활을 즐깁니다. 한국에서 어둑어둑했던 얼굴은 금새 밝은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대입 시즌이 다가왔을 때 저도 와이프도 큰 애의 대입은 준비가 제대로 잘 안되었습니다.

사실 큰 애도 처음에는 미국대학으로 진학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부부는 미국 사립대가 등록금과 생활비가 비싸다는 것만 알았지, 재정지원 제도를 제대로 잘 이용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전혀 몰랐습니다.

게다가 둘째가 뒤에서 큰 애를 어떻게 해 줄지를 바라보고 있는데 두 녀석을 차등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두 아이에게 얘기합니다.


"아빠가 첫째와 둘째를 미국대학에 어떤 지원 없이 그냥 보내는 건 어려워. 니들도 알지만, 매년 10만불씩 들어가는 미국대학을 너희 둘다 보내면 아빠, 엄마가 생활이 안된단다. 아빠, 엄마한테는 너희들을 대학 보내는 숙제도 있지만, 노후준비도 해야 하잖니. 그리고, 아빠, 엄마는 너희 둘을 똑같이 책임져야 하잖아. 이해해 줄 수 있지?"

"그럼, 아빠, 엄마. 저는 일본 대학을 도전해 보고 싶어요. 한국은 싫어요."

큰 애는 한국 교육제도에서의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가 않았더군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해봐."

"대신, 미국대학 중에 파슨즈대학은 지원만 해 보고 싶어요."

"아니, 뜬금없이 디자인학교는 왜? 니가 미술수업을 따로 받은 적은 없잖아."

"그래도, 여긴 지원해 보고 싶어요. 미술선생님도 해 볼만하다고 하시구요.“


한국에서 파슨즈대학은 미대입시를 위해 별도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지원하는 대학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큰 애 얘기라 처음에는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국제학교에서 정규 미술수업만 받고, 다른 미술과외는 전혀 해 보지 않은 녀석이 이렇게 얘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거니 하면서,

“그래, 한번 해 봐.”라고 하게 되더군요.

그렇게 큰 애는 합격되더라도 파슨즈대학으로 진학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이 대학에 지원 합니다.

이 대학이 명색이 디자인 대학이라서 지원을 위해서는 디자인 포트폴리오다 뭐다 해서 준비를 꽤 해야 합니다.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큰 애가 미술에도 감각이 있다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합격자 발표일입니다.

덜컥 합격을 합니다. 장학금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아빠, 합격했어요. 장학금도 2만불 준대요."

"축하해."


파슨즈대학은 미국 3대 디자인대학 중 하나인데 뉴욕에 위치해 있는 대학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생활비가 비싼 뉴욕에 위치해 있는 대학이니 엄청난 생활비가 들어가는 대학입니다. 장학금 지원이 있어도 매년 10만불은 각오해야 하는 곳이죠.


"큰 애야. 합격 정말 축하해. 하지만, 아빠가 얘기한 것처럼 니가 이 대학 진학하면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아. 미안하지만 일본 대학을 도전해 보도록 하자."

"응, 알아. 그래도 정말 한번 해 보고 싶었어."

"이해해 줘서 고마워."

그렇게 일본 대학에 다시 도전을 해서 와세다대학에 합격을 하게 됩니다.


큰 애가 중학교 다닐 때 선생님 한 분이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이 성적이면 서울 내 대학진학은 어려워요.”

그런 얘기를 듣던 큰 애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비웃듯이 일본 사립대 1위인 곳과 미국 3대 디자인스쿨 중 한 곳을 모두 합격합니다. 무슨 차이가 있길래 한국에서는 안되고, 해외에서는 가능했던 걸까요?


요즘 고등학교 3학년이나 재수 중인 아이들을 둔 제 친구들을 만나면 한국에서 중학교 생활을 하던 큰 애 때의 저희 가족 모습과 너무 같습니다.

가족 모두가 힘들어 하고, 아파하고, 해결책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모습까지 모두 비슷합니다. 그 아픔을 겪어 봤기에 안타까움이 큽니다.

해외대학으로 해결대안을 찾는 것이 모든 아이들에게 유효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차분히 우리 아이를 들여다 보세요.

그리고, 우리 아이가 이 가능성에 맞는 아이라면, 해외에서의 해결대안을 잘 이용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겁니다.



[사진출처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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