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군지는 대부분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곳으로 수업 분위기도 매우 좋고 아이들 인성도 좋다. 사귀는 친구들도 대부분 착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듯이 이런 분위기에서 아이를 키우고 아이에게 필요한 사교육만 제대로 뒷받침해주면 성적과 인성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다수의 학부모들이 이런 희망을 가지고 초등 고학년때나 중학교 입학 전 아이를 학군지로 보낸다. 마치 자기 아이가 성적도 쭉쭉 올라 상위권에 포진하고 명문대학교에 갈 것이라는 기대감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학군지만 보내면 모든 것은 잘될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업역량과 아이의 성향이다.
실제 상위권 아이들은 학군지, 비학군지 어디를 가든 우수한 학업성적을 보인다. 자기주도학습 능력이 뛰어나고 목표의식이 분명한 이 아이들은 비학군지에 있을지라도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평소 자기 습관대로 꾸준히 공부하고 성적을 꼼꼼이 챙기는 경향이 있다.
간혹 그들의 친구 관계를 걱정하는데 사실 그렇게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의 이 아이들은 교우관계에서도 주로 그런 친구들(점잖고 조용한 성격의 아이들)과 많이 사귄다. 그러다보니 교우관계도 어느정도 안정되어 있다.
한편으로 학급의 아이들은 서로를 비교 평가하여 각자의 재능을 인정해주는 경향이 있다. 상위권 아이들은 급우들로부터 모범적이고 공부 잘하는 아이로 평가되어 학급내에서도 인정을 많이 받는 편이다. 어떤 경우는 제2의 담임선생님 역할을 하면서 리더십을 키우기도 한다. 이렇게 잘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을 학군지에 보낸답시고 섣불리 그들의 교육환경을 바꾸었다가는 자칫 학교 적응문제로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반대로 하위권 아이들은 학군지, 비학군지 어디든 상관하지 않고 학업성적이 크게 올라가지는 못한다. 자기효능감(나는 할 수 있다.)이 부족한 이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 있든 '나는 공부에 별 소질없어'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이 아이들은 공부는 내 길이 아니다 하여 오히려 방황하거나 특정분야(주로 게임이나 핸드폰)에 빠져 사는 경향이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무턱대고 사교육을 시켜봤자 아무런 효과도 기대할 수 없고 '밑빠진 독에 물 붙기' 인 것이다.
실제 학군지라 해서 학급의 모든 아이들의 학업성적이 우수한 것도 아니다. 그곳에도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은 있다.(이는 비학군지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학업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결국 자기들끼리 어울리게 되는데 그래서 낮과 밤이 바뀐 '게임 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적극적이고 활달한 친구들은 그들끼리 뭉쳐서 학교 교칙에서 벗어난 행위를 자주 저지른다.
오히려 이런 하위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환경이 아니라 부족한 학업역량을 보충해 줄 집중케어와 상담, 자기 효능감을 불어넣는 것일 것이다. 교직 생활 기간 간혹 학부모가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하위권 아이들을 학군지로 전학시키는 경우를 봤는데 애초에 학업이 가치관이 아니었던 이 아이들은 학업성적이 나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학군지라 해서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자의든 타의든(사실 반강제적으로) 대부분이 밤늦게까지 학원을 다니고 공부하다보니 전반적으로 학업성취도는 비학군지보다는 높게 나오는 편이다. 이에 따라 학교에서도 교사는 등급 변별력을 위해 시험문제를 어렵게 내는 편이고 여기에 대해 적응력을 기르면 어느정도 수능준비를 하는데도 많은 도움은 받을 수 있다.(실제 학군지 아이들은 반수나 재수를 할 때 강세를 보이는 아이들이 꽤 있다.)
하지만 학군지는 아이가 어느정도 머리는 되는데 학군지에 가면 더욱 열심히 할 것이라는 부모의 기대감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런 수준의 아이들(최상위권보다는 중상위권, 주로 2-4등급)이 실제 많이 포진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중상위권 내 아이들 내신경쟁은 굉장히 치열한 편이고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한편으로 대학 수시모집 전형에서는 비학군지 2등급이나 학군지 2등급이나 똑같은 2등급(비록 그들의 실제 학업역량은 많이 차이날지라도)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좋은 내신 등급을 받기 힘든 학군지에 있는게 아이에게 꼭 현명한 선택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물론 학급 분위기에 자주 휩쓸리거나 상대적으로 경쟁의식이 강한 친구라면 학군지를 추천할 만하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성적 수직상승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하지만 우수한 학업능력의 성패는 단순히 학군지냐 비학군지냐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평소 아이의 학업역량과 아이의 목표 의식 성향이다. 뚜렷한 진로목표를 가진 채 '나는 잘하는 것이구나. 나는 할 수 있구나' 스스로 믿는 아이들은 어느 곳에 있든 우수한 학업 역량을 보인다.
현재 대입의 수시 정시 비율은 79-21이고 서울 상위15개 대학도 58-42로 수시 비율이 높다. 한편으로 이번 정부의 발표에서 알 수 있듯이 앞으로 정시모집의 변별력은 더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도 좋은 내신 등급을 받기에 불리한 학군지로 가는 것이 꼭 현명한 선택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