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하고 한창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날 연구부의 한 선생님이 긴급히 나를 찾았다.
"쌤. 이번에 역사에서 교육실습생이 한 명 오는데 우리학교 졸업생이래요. 그런데 우리 학교 선생님들 중에 역사 교생을 담당할 선생님이 쌤밖에 보이지 않아. 그래서 부탁하는데 교생 한 번 맡아주면 안될까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는 잠시 마음이 머뭇거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역사 교생을 맡을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나 포함 우리학교의 역사 교사 세 명 중 한 분은 퇴직을 앞두고 있었고, 한 분은 올해 우리학교에 처음 근무하게 되어서 업무와 교과 파악조차 제대로 안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봐도 이 학교에서 4년째 근무하고 있는 내가 맡는게 가장 합리적이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결국 수많은 나의 업무에다가 플러스로 역사 교육 실습생 관리가 추가되었다. 내 경력상 교육 실습생 관리는 이번이 두번째였다. 다만 그때와는 다른 점이라면 이전에는 교생의 배정반 담임에다가 교생 수업 지도까지 두개를 맡아서 관리했지만 이번에는 내가 비담임 신분인터라 교생의 수업지도만 맡으면 되었다. 그래서 '수업하는 것만 보여주고, 공개수업때 첨삭 지도해주고 지도안 짜는 것만 도와주면 큰 부담은 없겠지.' 라며 다소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교생은 교생이었다. 학생이 아니었다.
3월말 첫 인사를 나누자마자 한창 의욕에 불타고 있던 교생은 다짜고짜 나에게 다가와 첫날부터 수업 참관을 하고 싶다고 요청하였다. 그래서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래요. 그럼 2교시에 1-O반에 들어오세요." 라고 하였다.
시간이 되어 2교시에 그 반 수업을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들어가보니, 벌써부터 교생이 깔끔한 정장차림으로 교실 맨 뒷자리의 스탠드 책상에 서서 수업 참관을 준비하고 있는게 아닌가. 특히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나의 수업 진행 방식, 판서, 내가 설명하는 내용, 아이들에게 제작한 학습지 이 모든 것을 정색하면서 매의 눈으로 꼼꼼하게 살피고 있었다.
나는 마치 임용시험의 평가위원 앞에서 수업 실연을 하고 있는 수험생처럼 바짝 긴장한 채, 혹시나 내가 실수하거나 잘못 전달한 것은 없는지 수업을 하면서도 하나 하나 되짚어 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머리가 혼동되어 말과 머리가 따로 놀기 시작했고, 갑자기 설명이 꼬여서 중간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기도 하였다.
"어떻게든 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텐데, 이것 참 내가 생각해도 엉망인 수업이네. 매일 이런식이면 앞으로 어쩌지?"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교생은 오늘 수업 잘 들었다고 감사를 표하며, 내일은 어느 어느반 수업, 또 그 다음날은 어느 어느반 수업 등 계속해서 이반 저반에서 내가 수업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요청하였다.
나는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았다. 교생에게 겨우 한번 내 수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도 마치 학교 공개 수업을 한 것처럼 긴장과 부끄러움의 연속이었는데, 이제 4주간 매일 이런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니...... 왜 많은 선생님들이 그토록 교육실습생 담당을 부담스러워하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그렇다고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날부터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을 덜고 좋은 수업 모습을 보이고자 교생참관이 예정된 수업은 하나라도 더 준비하고 꼼꼼하게 살폈다.
어느새 교생이 온지 3주차가 되었다. 이제 어느정도 적응력도 생겼다. 특히 교생의 참관 수업을 준비하면서 내 수업에 관해 새삼스럽게 느낀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아무리 내가 수업을 잘 준비하고 같은 내용을 설명하더라도 각 반마다 받아들이는 반응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반은 나의 개그 포인트에 호응도 잘 해주고 마지막에 훈훈한 설명과 함께 멋지게 마무리 되어 교생도 미소를 지으며 돌아갔다. 하지만 어떤 반은 같은 개그 포인트에도 반응이 시큰퉁했고 훈훈하게 끝내려는 내 마지막 설명에도 애들은 마지막까지 표정이 찌뿌둥했다. 애들 표정이 밝지 못하니 당연히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교생얼굴도 밝지 못했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던 걸까? 학교의 각 반들은 저마다 비슷해보여도 한편으로 반마다의 고유한 분위기와 특성이 있다. 개구쟁이 반, 발랄한 반, 모범적인 반, 대답 안하는 반, 조용한 반, 무기력한 반 등 말이다. 그래서 이 반에서의 수업 내용이 저 반에서는 다르게 먹히고, 또 다른 반에서는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분명한 것은 수업에서 주인공은 바로 배우는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내가 수업을 잘 디자인하고 준비를 잘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따라오지 못하고 반응이 없으면 그건 결코 잘된 수업이라고 할 수가 없다. 즉 성공적인 수업을 구현하려면 수업 내용을 교사가 잘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늘 수업시간 교사는 아이들과 소통하고 아이들이 제대로 이해했는지, 아이들 반응은 어떤지, 두루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호응과 반응을 잘 이끌어낼 수 있는 수업.
"그래서 교사는 수업 내용 준비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각 반의 아이들과 레포를 형성하고 아이들의 수준, 아이들이받아들이는 방식까지 고려해서 수업을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요?"
면담 시간에 조심스럽게 교생에게 꺼낸 내 의견이었다. 내가 지금 교생을 가르쳐 주고 있는건지, 내 스스로 성찰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교생이 오고 지난주에는 다소 부끄러운 일도 있었다. 지난 금요일 7교시 마지막 수업 시간이었는데 하필 그때 교생이 또 수업참관을 요청하였다. 이에 나는 승낙하고 그 반 수업을 진행했는데 7교시에 그날이 봄 날씨이고 또 만우절이다보니까 아이들은 전혀 수업의욕이 없었고 일부 산만한 아이들은 내 설명을 듣지도 않고 대놓고 장난만 치고 있었다. 시험기간은 점점 다가와서 내 마음은 진도 나가기에 바빴지만 분위기가 동요한대부분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이미 다른곳에 가있었다.이에 수업참관을 왔던 교생도 그 산만한 아이들을 계속 바라볼 뿐이었고, 당황한 나는 갑자기 감정까지 상해서 표정을 싹 바꾸고 수업을 중단해버렸다.
갑자기 심각해진 내 얼굴에 교생도 긴장했고 애들도 긴장했다.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내 얼굴은 달아오른 냄비가 되어버렸고 교생한테는 '오늘 수업참관은 여기까지 하시죠' 하며 교생을 돌려 보냈다.
나는애들 앞에서 한바탕 쓴소리를 했다.
"너희들 교생선생님 앞에서 너무한 것 아니니? 교생선생님이 뒤에서 참관하고 있는데 어떻게 수업태도가 그 모양이니? 교생선생님이 니들 이런 모습만 기억하고 떠난다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가시겠니?"
"지금은 시험기간도 얼마 안남았고 선생님도 마음이 바빠. 3월초 첫 입학할 때의 너희들 초롱초롱한 눈빛을 기억하는데 지금 벌써부터 눈이 이렇게 풀려 있으면 어떡하니? 수업 내용이 중요한 것은 3월초나 지금이나 다 마찬가지야. 그래서 한결같음이 중요한거야. 날씨가 풀린다고 여러분 마음도 풀리면 안되요. 자 선생님 말 이해했죠? 다시 힘내고 집중해서 배워봅시다."
이렇게 일장 연설을 하고 다시 수업을 진행하여 마무리를 했다. 한편으로 그날 특별히 태도가 더 안 좋았던 아이들은 교무실에 따로 불러냈다. 그 아이들에게도처음에는 훈계했지만 마지막에는 살살타이르면서 돌려 보냈다.
나는마지막에 아이들을 돌려보낼 때 항상 아이들을 타이르고 보낸다.그이유는, 듣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본인이 아무리 잘못한 일이라도 싫은 소리만 듣고 떠나면 나에 대한 반발심, 내 수업에 대한 반감만 커질수 있기 때문이다.어차피 나한테 혼났던 아이들이라도 내일부터 이 아이들은 나에게 다시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수업은 나만 잘 떠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교사와 아이들은 수업을 같이 구현해 나가야 하는 하나의 팀원이다.그래서 항상 아이들의 입장, 아이들의 마음을 살피고 아이들이 수업에 다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수업시간 아이들이 떠들었을 때의 상황과 아이들을 지도했던 내 모습을 교생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도 교육적으로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모습들이야말로 우리가 학교에서 자주 마주칠 수 있는, 수업 시간의 흔한 모습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본인이라면 어떻게 아이들을 지도하고, 어떻게 수업을 다시 이끌어갈지 스스로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았다.
"지난번 수업때는 죄송했습니다.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모습만 보여서 미안했네요."
"아 네. 괜찮아요 선생님. 사실 조금 놀라긴 했는데 그동안 이 반 아이들이 수업을 잘 듣는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모습도 있을 줄은 몰랐네요."
"네. 사실 이런 모습이 수업시간 교실에서 생각보다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긴 합니다. 막연히 아이들의 좋은 모습만 생각하다가 처음 교직생활을 하면 아이들의 흐트러진 모습에 힘들수도 있어요. 저도 교생 때는 그저 아이들의 좋은 모습만 기억하다가 신규교사때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거든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보니 그렇네요. 저도 이런 부분은 생각해 봐야겠네요."
추가로 나는 아이들과 다시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아이들을 다시 수업에 참여시키기 위한 회복적 교육 방식을 이야기꺼냈고, 내가 그날 아이들을 지도했던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교생 선생님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하게 되면서 나는 내 교직생활 11년동안 축적된 나의 수업관과 교직관에 대해서도 다시한번성찰해보게 되었다.
나같은 초보교사가 과연 교생 선생님의 좋은 멘토가 될 수 있을까?처음 교생을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였지만 교생의 적극적인 자세에 당황하고, 어느새 긴장 속에서 교생에게 조금이라도 잘된 수업을 보이고자 신경쓰고 있고, 교생에게 수업에 관해 아낌없는 조언을 주고자 노력중이다. 이제 내일이면 교생 선생님은 학교의 많은 선생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수업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 긴장되고 설레기도 할 것이다. 교생 선생님의 성공적인 공개수업을 기원하며 나 역시 주의깊게 교생 선생님의 수업을 살피면서 내가 바라본 관점을 아낌없이 전달할 것이다. 내가 교생일때도 멘토선생님들로부터 아낌없는 조언 속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사실 정식 교사가 되면 서로 각자의 수업을 하기에 바빠지기 때문에 그만큼 배움의 시간도 줄어들게 된다. 즉 교생 선생님에게 지금의 시간은 짧은기간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골든타임인 셈이다. 교생 선생님에게 우리학교에서의 실습이 좋은 추억과 함께 꼭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