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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훈 Apr 14. 2022

성리학을 가르치면서 오늘날의 교육을 생각하다.

#21. 현재의 시험제도는 바람직한 모습인가?

내가 가르치는 역사 수업에서는 빼먹 꼭 가르쳐야 하는 중요한 수업 주제가 있다.


바로 성리학이다.


성리학은 어떤 학문인가? 성리학은 중국 송나라 때부터 발전하여 주희가 집대성한 학문으로서 당시에는 새로운 유학 트렌드라는 면에서 신유학으로도 불렸다.(우리가 현재 알고있는 성리학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전까지의 유학은  훈고학이 대세였다. 하지만 이 훈고학은 과거시험의 용도로만 이용되고 있었고 지나치게 형식화되고 획일화되어 문제가 많았다. 또한 이전의 유학은 불교, 도교에서 제시하는 형이상학적 세계(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설명하지 못하는 약점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성리학은 이런 유학의 약점을 마침내 극복하였다. 여기에서 나온 것이 이기론인데 성리학에서는 세상을 이와 기로 나누어 설명한다. 여기에서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의 본질, 원리를 뜻하고 기는 눈에 드러나는 사물의 모습, 현상을 말한다. 이로써 성리학은 이전 유학이 제시하지 못했던 형이상학적 세계도 理를 통해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성리학에서는 사물의 본질적 원리인 이와 인간의 성품인 성이 궁극적으로 같은 것으로 바라 보았다. 그래서 이름도 성리학이다. 이에 성리학에서는 각 사물의 원리인 이를 탐구하는데 우선 집중하였다. 사물의 보편타당한 법칙인 이를 깨닫게 되면 인간도 자신의 착한 본성에 자연스럽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성리학자들이 품행을 단정히 하면서도 열심히 학문연구에 임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고려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성리학은 실천적, 사회 개혁적 성향이 강했다. 특히 당시 고려는 권문 세족의 횡포와 타락한 불교계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었는데 성리학은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 공동체의 윤리 규범을 제시함으로써 고려타락한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고 새로운 학문 대안으로 각광받았다. 그리고 이런 성리학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은 신진사대부는 마침내 권문세족을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인 조선을 건국하는데 앞장다.

 당시의 문제점 투성이었던 현실에서 성리학은 시대정신을 제시하고 분명 새로운 학문으로서 학문다운 제 역할을 다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성리학도 중국과 한국의 주류 학문으로 널리 보편화 되고 나서부터는 타학문을 배척하고 과거시험의 용도로만 이용되는  점차 교조주의에 빠져들게 되었다.


 여기에서 교조주의란 역사적 환경이나 구체적 현실과 관계없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인 듯 믿고 따르게 되는 것을 뜻한다. 즉 성리학은 자신의 학문만을 절대적 진리와 정답으로 여기며 기존 학문들을 모두 무시하고 배척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이후의 조선에서는 변화하는 사회현실에 맞게 성리학에 대한 대안 학문으로 양명학이나 실학 등이 새롭게 제시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성리학이 절대시되었던 당시의 시대 상황 속에서 이런 학문들은 뿌리를 내릴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성리학의 자구나 글귀를 이전과 다르게 해석하려는 윤휴의 노력조차 "주자가 모든 학문의 이치를 이미 밝혀놓았는데 윤휴가 감히 자기 의견을 내세워 억지를 부리니 진실로 사문난적이다." 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성리학은 경직되어갔다. 결국 새로운 학문이 성장할 토양이 없었던 조선은 그만큼 사상, 기술적 발전도 뒤처질 수 밖에 없었다.


주자를 절대시한 송시열과 사문난적으로 몰린 윤휴



성리학은 한국과 중국이 근대화 정책을 펼칠 때도 큰 장애물이 되어 한국, 중국의 근대화 속도가 뒤쳐지는 결과까지 초래했다. 성리학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시아 3국 중 가장 약했던 일본이 역설적으로 근대화 속도가 가장 빨랐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당시 성리학배타적 성향은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운 조선의 위정 척사파들로도 알 수 있다. 들은 바른것은 지키고 사악한 것은 배척한다는 구호를 내세웠는데 여기에서 바른 것은  자신들이 믿고 있던 성리학 뿐이었고 나머지 사상은 모두 사악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이렇게 폐쇄적이고 타학문을 배타적으로 바라보았던 성리학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만 여겨지며 오래되고 사라져야할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한창 근대화가 진행되었던 동아시아 사회에서 성리학은 어느 순간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변화의 흐름을 무시한 채 성리학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완고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성리학은 사람들 속에서 그 영향력을 더욱 상실하게 된 것이다.



소위 우리가 학문을 배우는 목적은 무엇인가?


 학문은 진리를 탐구하는 행위로서, 변화하는 시대를 파악하고 이에 적응, 선도해 나갈 수 있는 지식과 힘을 기를 수 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가 몸 담고 있는 현재 사회는 하루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게 필요한 지식과 이론도 계속해서 업데이트 되어야 할 것이다. 즉 현재 필요한 학문적 자세는 새로운 것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개방적 자세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교육제도 역시 문제가 많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변화하는 시대흐름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산업화 시기에 도입된 국영수 중심의 교육체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국가의 가장 큰 시험이라 할 수 있는 대입 수능은 여전히 오지선다형 객관식이다. 수능이 도입된지도 벌써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고 한가지 정답만을 요구하는 수렴적 사고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수능 공부를 할 때는 흔히들 타임어택 이라는 표현도 많이 쓴다. 같은 시간 안에 이 문제를 얼마나 창의적으로 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얼마나 빨리 푸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능에서는 문제를 정확히 그리고 되도록 빨리 푸는 기술만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시험제도는 작품을 음미하고 사고 방식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문제 푸는 스킬만을 요구하고 획일적인 정답만을 요구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 미래사회에서 요구하는 창의, 융합, 전인 등 미래 인간에게 맞는 역량을 기르는데는 전혀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하나의 정답만을 요구하는 공통의 시험도 그 나름의 장점은 있다. 모두가 공통된 시험을 보고 해당 점수에 따라 석차를 가른다면 시험의 신뢰도는 분명 올라간다. 1-100등까지 각자의 점수에 따라 석차를 분명하게 가릴 수 있으니 채점 방식도 매우 간편하고 이의를 제기할 구석도 그만큼 적어진다.


하지만 이런 시험제도의 문제점은 '사람마다의 개성과 잘하는 분야는 분명 각자가 다른데 이를 공통의 시험문항으로만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 하는 타당성의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본적인 운동능력을 측정한다고 하면서 역도선수에게 "100m 달리기를 12초 내에 들어오지 못하면 역도선수 탈락" 이라고 한다면 이는 과연 타당성이 높은 시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출산률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한명 한명의 아이들이 모두 미래의 소중한 인적자원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아이들 각자의 수준과 흥미, 적성에 맞추어 교육하평가하제도의 도입이 절실한 상황이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제도와 시험은 공통의 교육과정과 상대 평가제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아이들의 학업 흥미도를 저하시키고 학업성취도에서 줄세우기를 통해 수많은 성적 이탈자만을 양산해 내고 있는 것이현실이다.


이에 현재의 한국 교육과 시험 제도에 대한 대안으로 국제 바칼로레아(IB)를 주목해 볼 만하다. IB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필요한 비판적 사고, 통합적 사고를 강조하는 시험 제도인데 IB의 특징은 평가문항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국어시험 문항의 경우 '공부했던 작품에서 어떤 이유로 문학 작품은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시오' 와 같은 서술형 문항이 나온다. 한편 역사 문항의 경우에도 단순히 시대 순서나 사건 나열식의 문제를 묻는 것이 아니라 '한국 전쟁 발발에 외세의 영향은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쳤는가를 서술하시오' 와 같은 문항이 나온다. 과학 문항의 경우에도 통계나 그래프를 제시하고 이에 드러난 현상을 분석하고 자신이 세운 가설을 검증하는 문항이 나온다.


이런 문항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기 위해서는 평소 많은 독서량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암기와 한가지 정답만을 찾는 과거의 공부 방식으로는 해당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서술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학생 스스로 해당 문항이나 과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료를 찾아봄으로써 사고에 사고가 꼬리를 무는 확장적 사고방식이 성장할 수 있고, 이런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토론해봄으로서 획일적인 교육이 아닌 다양한 생각을 모을 수 있고 비판적 창의적 사고도 가능해질 수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2013년 경제회생과 교육회생이라는 기치로 일찌감치 IB를 자국어로 바꿔 도입했다. 변화하는 시대에 교육도 변화하지 않으면 일본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적극적인 IB 도입을 이끌어낸 것이다.  현재의 우리나라도 IB에 대한 점차 관심이 생기고 있다. 특히 대구 교육청에서는 2019년 7월 IB와 업무협약을 맺고 IB 프로그램의 한국어화를 확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물론 이런 IB가 아직 한국 교육과정에 전면적으로 도입되기에는 갈 길이 멀다. 정량적 평가와 객관식 평가에만 익숙한 한국 교육의 현실에서 정성적 평가와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된 평가방식은 국내에서 분명 큰 논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성적에 예민하고 특히 과거의 교육방식에 익숙하고 공정성을 강조하는 한국 학부모들의 특성상 IB가 정착되기까지에는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나 역시 최근에서야 IB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을 정도로 국내에서는 IB를 제대로 가르치고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평가할 수 있는 교원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고 하여 '반대만을 위한 반대'를 외치며 계속해서 현재의 시험과 교육체제를 유지하려는 모습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성리학만이 정답이라고 외쳤던 조선사회는 결국 변화하는 시대흐름을 따라잡지 못했고 이는 근대화 시기때 제국주의 열강에 끊임없이 끌려다니며 마침내 식민지로까지 전락하는 운명에 처했다.


시대가 바뀌면 분명 교육도, 학문도, 정답도 바뀌어야 한다. IB를 포함한 다양한 교육방법과 평가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해보고 소중한 아이들 한명 한명이 인재가 되고 성장할 수 있는 교육혁명이 우리나라에도 찾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성리학을 가르치면서 들었던 생각을 정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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