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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훈 Apr 23. 2022

교사와 학부모의 바람직한 관계는?

#22. 학부모는 교사와 관계맺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수년전 내가 어느 중학교에서 근무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학교에서는 여러 아이들이 아이 한 명을 대상으로 집단 괴롭힘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적이면서도 내성적이던 피해자는 그동안 자신이 당해왔던 괴롭힘을 철저히 숨겼고, 학교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피해 학생의 부모조차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이의 달라진 행동과 표정에 눈치를 챈 학부모가 아이를 추궁하게 되었고 '사실은 죽을만큼 괴로웠다.' 는 아이 진술을 통해 모든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학교에서는 곧바로 학폭위를 열었고 가해 학생들에게 강력한 징계조치를 내렸다.


이 사건은 당시 가해학생으로 9명이 지목될 만큼 큰 사건이었다. 지금까지 내 교직 경력에서도 가장 심각했던 학폭사건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다만 해당 사건에 대한 가해학생 학부모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학부모는 상황의 심각성과 아이의 잘못을 인지하고 진심으로 피해 학생과 학부모에게 잘못을 빌었다. 또한 학폭위에서 내려진 결정에 대해서도 모두 순순히 받아들이고 진중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어떤 학부모는 완전히 그 반대였다. 학교의 학폭위 결정에 대해 불복하고 자기 아이를 변호하기에 바빴다.


학부모 : 저희 아이가 무슨 큰 잘못을 했죠?


교사 : 어머님 여기 나와 있듯이 아이가 00 이의 복부와 어깨를 때렸고 00 이 심리적 상처가 큰 것 같네요.


학부모 : 그건 아이가 00 이와 친하다는 의미로 어깨를 툭툭친 것 뿐인데요.


이들은 이런식으로 어떻게든 자기 아이 잘못을 은폐하려고 하였고, 피해자 학생의 진술도 곡해하였다. 피해자는 진술서에서 맞은 것에 대한 아픔보다는 집단 괴롭힘으로 인한 심리적 상처가 더 컸다고 진술했는데도 이들은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


양쪽에 대한 학폭위 징계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사실 학부모의 태도는 서로 달랐지만 조치 결과는 똑같았다. 조사과정에서 해당 사실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았느냐의 차이가 있었을 뿐 피해자와 목격자의 진술을 종합했을 때,  다 피해자에게 상처를 준 정도는 비슷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하여 가해 아이들 모두에게 특별교육 이수와 장기간 출석정지를 부여했고, 이들은 한달동안 소년원에도 다녀와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 아이들의 태도였다.



당시 진심으로 자기 아이의 잘못을 인정했던 학부모의 아이는 학교로 돌아와서도 교사의 지시에 순응하고,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최대한 피해를 안주고 원만하게 생활하려고 노력했다.


반면 학교 조사에 비협조적이고 자기 아이 잘못을 축소하기에 바빴던 학부모의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오고 나서 더욱 불량한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교사의 지시를 갈수록 무시하고 계속해서 사고를 쳤다.


 대체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던 것일까? 무엇이 원인이었던 것일까?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는 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태도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당시 가해 학생 학부모들은 이 사건 때문에 수시로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드나들어야 했다. 하지만 선생님과 지속적으로 상담하며 아이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한 학부모의 모습은 결국 학교에서 아이의 달라진 태도를 이끌어냈다.


반면 계속해서 교사에게 따지듯이 말하며 언성을 드높였던 다른 학부모의 모습은 아이마저도 학교를 무시하고 교사를 삐딱하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겪으면서 여러 생각을 해봤다. 아이를 바르게 키우기 위한 학부모의 태도는 무엇인가? 교사와 학부모는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가?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복잡해서 뭐라 쉽게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접점은 있다. 


바로 아이이다.  둘은 아이를 성장시키고 바른 길로 이끌어 나가야 하데서 그 목표가 일치한다. 


따라서 교사와 학부모 양측은 아이 일과 관련해 협력자이자 동반자의 관계라고 수가 있다. 이에 따라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꼭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의 학교현장을 보면 신뢰보다는 앞의 경우처럼 학부모가 교사와 학교를 불신하는 사례 종종 발견된다. 특히 최근 들어 학부모들의 교육과 지적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학부모가 교사를 훈계하고 가르치려  때도 있다. 


이는 학교에서 생활해나가야 할 아이를 생각한다면 좋지 않은 태도다. 우선 학부모가 교사를 가르치고 이기려 들 경우, 교사 입장에서는 해당 학부모가 매우 불편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학부모와의 소통이나 상담을 더욱 꺼리게 될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교사를 통한 아이의 정보 파악에서도 학부모에게 손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아이 역시 학부모의 이런 모습에 영향을 받아 교사를 무시하고, 버릇 없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


사람은 행동이나 생각하는 방식이 누구든 다를 수 밖에 없다. 매년 바뀌는 담임교사 역시 학부모와 생각이 다르고 교육방식에서도 차이를 드러낸다.


하지만 30명의 아이를 관리하고 교육해야 하담임의 스타일을 자기 아이 입맛에 딱 맞도록 변화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담임의 교육방식을 존중하고, 아이를 믿고 맡기는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3월과 4월은 학부모 상담철이다.


나도 올해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학교 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처음 교사와 상담을 해보는 학부모들은 흔히들 자기 아이 평가에 잔뜩 기대를 품고 학교에 간다.  


하지만 돌아올 때는 충격을 받고 힘없이 돌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사가 말해주었던 아이 모습이 자기가 집에서 봤던 아이 모습과 너무 달라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 아이 모습과 집에서의 아이 모습은 분명 다를 수 있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집중된 가정에서의 환경과 여러 집단 속에서 스스로 사회성, 학업을 키워나가야 하는 학교의 환경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 교사가 상담할 때 들려주는 아이 정보에 대해서는 학부모가 보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사 역시 아이에게 나쁜 감정을 바탕으로 말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본 아이 모습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학부모는 교사정보를 신뢰하며 서로 소통해가며 아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이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교사가 알려주는 아이 정보나 평가를 100%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아이를 가장 잘 아사람은 부모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학부모는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이를 쭉 살펴왔던 관계인데 해 담임교사는 이제 겨우 아이와 수개월-1년을 함께한 관계이다. 또한 담임교사가 1년 동안 맡아야 하는 학급아이 수는 30명 내외이다. 당연히 한 아이에 대한 교사의 관심도나 관찰력은 학부모에 비해선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실제 교사인 나도 학부모의 도움을 통해 아이들에 대한 문제를 해결한 적도 있었다.


심각한 학폭사건이 발생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던 때의 일이었다. 나는 종례를 하러 교실로 가다가 반에서 축구를 잘하고 힘 좀 쓰는 A가 힘이 약한 B에게 헤드락을 걸고 어깨를 세게 치는 장면을 목격했다.


당시 학폭사건의 기억이 또렷히 살아있던 시점이어서 사태가 심각함을 감지하고 곧바로 아이들을 불렀다.  


나 : 아무래도 이건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 것 같구나. 우선 선생님이 목격한대로 사실 확인서를 작성해라. 오늘 부모님께도 연락이 갈 것이다.  


A : 아니 선생님, 이건 그냥 장난이었던 건데요.


나 : 장난이 친구 때리고 헤드락 거는거니? 선생님이 봤을 때 B는 장난이라고 생각 안할 것 같은데? 긴말 말고 있었던 사실 그대로 적어.


이후 나는 곧바로 A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있었던 사실을 이야기했다.


나 : 안녕하세요. 어머님. A학생 담임입니다. 오늘 A학생이 B학생을 때리는 장면을 봤는데요. 상황이 심각한 것 같아서 전화드렸습니다.


학부모 : 네? 뭐라고요? 선생님 이런 소식을 들으니 좀 당황스럽네요. 그런데 선생님, 아이들 입장은 구체적으로 들어 보셨어요?


나 : 방과 후에 발생했고 시간이 없어서 구체적으로 물어보지는 못했습니다.


학부모 : 선생님. A와 B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 장난을 쳤던 사이에요. 저희 아이가 세게 때렸고 B 아이가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면 저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겠지만 그동안 그런적은 없었거든요. 다시 한번 조사를 부탁드릴게요.


순간 나는 내가 이 문제를 너무 성급하게 다루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실제 다음날 A와 B를 다시 불러 사건을 조사해보니 이는 단순한 장난 사건이었다. B학생 역시 본인이 먼저 시비를 걸기도 했고 큰 상처는 없었고 A와의 일을 문제삼고 싶어하지 않아했다.


처음 학교에서 일어난 이런 소식을 학부모에게 알려주면 학부모는 당황스럽기 마련이다. 특히 이 문제는 나의 성급함도 있었기 때문에 학부모가 담임인 나에 대해 반감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A학부모님은 신중하고 차분했다. 특히 내가 다음 통화에서 아이들 일을 잘못 오해했다고 사과하자 학부모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위로까지 해주었다.


이후에도 나는 A학생과 큰 문제 없이 지냈다. A학생은 내가 학교를 떠난 후에는 보고 싶다고 톡까지 남길 정도였다. A학생과 나의 원만한 관계에는 학부모님 역할이 컸음은 말할 것도 없다.


부끄럽지만 교사도 사람인 이상 실수할 수 있다. 그럴 때 역시 학부모의 태도가 중요한데 당시 A 학부모님은 지금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훌륭한 대처방식을 보여주셨고 변함없는 신뢰를 보여주셨다. 덕택에 도 학생도 큰탈 없이 무난하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교사라고 하여 모든 교사가 문제점이 없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학부모 입장에서 교사의 교육 방식에서 심각하거나 중대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다면 이를 해당 선생님에게 직접 말하기보다는 학교의 교장, 교감 등 관리자에게 말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교사 입장에서는 직접적으로 학부모에게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상처가 클 것이고, 우선은 반발심부터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 학부모간 관계를 조정하는 자리에 있는 학교 관리자들을 통해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도움을 청하는 방법이 가장 나을 것이다.



 올해 나는 학교에서 선도위원회 업무를 맡았다. 교칙을 수시로 어기는 학생들을 부르고 상담하고 회의를 통해 결정된 아이들의 교내봉사까지 책임 지도를 맡아야 하는 역할인데, 업무 자체도 많지만 학교에서 매번 이런 유형의 아이들을 생활 지도하려니까 숨이 자주 막혀온다. 이런 아이들은 심지어 선도위원회에서 결정된 징계 조치에 대해서조차 잘 이행 안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징계 기간에 또다른 사고를 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도 나에게 한줄기 빛이 있다면 이는 바로 학부모이다. 특히 문제 아이의 학부모가 '이미 커버린 아이라서 통제가 안된다' 하여 아이를 포기하게 될 경우 그 아이는 더욱 엇나갈 확률이 높다. 또한 학부모의 손 밖에서 벗어난 아이는 학교에서도 더욱 통제하기 힘들어지고 더 큰 사고를 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이가 문제 행동을 반복해도 학부모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선생님들과 소통하며 학교의 조치 사항에 대해 협조적일 경우에는 아이가 다시 돌아오고 관계가 회복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조금씩 태도가 달라졌다.


결국 문제 아이에 대한 해결책도 학부모의 협력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학부모는 교사와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 나가야 하는가? 분명한 것은 서로간 믿음을 가지고 상호 협력하며 아이를 키워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드라마 태종 이방원 속 한장면

명황제 : 그래 조선이 명을 치지 않는다는 증거를 가지고 왔느냐?

이방원 : 증거는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명황제 : 뭐라고?

이방원 : 폐하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면 백가지의 일도 모두 거짓으로 보이는 법이옵니다. 국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옵니다. 만가지의 의심이 다 해소되어야 신뢰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가지고 바라보아야 만가지의 의심이 다 사라지는 법이옵니다. 저의 부왕께서 조선을 건국한 것은 명을 치고자 함이 아니라 오로지 백성들의 삶을 좀 더 편안하게 하려는 이유였습니다. 이걸 믿어 주십시오. 그러면 모든 의심이 다 사라질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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