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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말을 공유하는 것은 꼭 나쁜 것일까?

#23. 뒷말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필요한 이유

by 한동훈

대학시절 내 별명은 '외국인'이었다.


외모가 외국인을 닮아서가 아니라 동기생들에 대한 뒷말이나 학과에서 비공개적으로 있었던 이야기들을 하나도 몰라서였다. 특히 연말이 되어 술자리 모임을 가지면 동기들끼리 모여서 과내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회상하곤 했는데, 난 생전 처음 듣는 소식들이 너무나 많았다.


"넌 그 사실도 모르고 대체 뭐했던 거야? 우린 다알고 있었는데. 어디 외국에서 혼자 살다 왔니?"


"와하하~~~"


그랬다.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심이 강한 나는 다른 사람 소식에 통 관심이 없었다. 특히 친구들끼리 밥 먹을 때 자리에 없는 누군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뒷말하는 것은 듣기 불편했다. 표정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 '정말 쓸데없는 짓들 하고 있다' 생각했고 책을 보러 가거나 개인 활동을 하러 그 자리를 나가기 일쑤였다.


자연스럽게 난 동기들끼리의 모임이나 술자리에도 잘 참여하지 않았다. 2-3명의 친구한테만 의지한 채 한 마리의 고고한 학처럼 개인 활동을 하러 가기에 바빴고, 그 친구들도 나에게 딱히 뒷말을 공유하지 않았다.


내가 뒷말을 너무 멀리 하다 보니 친구관계가 소원해지는구나 느꼈던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였다. 뒷말을 공유했던 친구들끼리는 대학 졸업 후에도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자주 모임을 가졌던 반면에, 나 같은 경우는 멀어진 환경만큼 그들과의 관계도 멀어졌던 것이다.


뒷말을 공유하는 것은 꼭 나쁜 것일까?



우선 뒷말의 뜻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국어사전에 뒷말을 찾아보면 앞에서 표현하지 않고 뒤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말들을 뜻한다. 그런데 보통 우리가 쓰는 뒷말은 차마 그 상대 앞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는 뒷말을 하는 사람들을 떳떳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부정적으로만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뒷말을 공유하는 것은 관계 형성 측면에서 분명 긍정적 면이 있다. 특히 같은 직장이나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끼리 뒷말을 공유하게 되면 서로 간 공감을 하게 되면서 묘한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뒷말을 공유한 사람끼리는 같은 편이 됨으로써, 보다 결속력을 다지고 직장 내에서도 친밀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한편으로 뒷말하는 사람끼리는 뒷말 대상에 대한 주관적 평가를 꼭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서 뒷말하는 사람 서로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은 무엇인지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뒷말은 자기감정 및 스트레스 완화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 뒷말을 푸는 사람은 타인과 있었던 일을 털어놓음으로써 뭉쳐있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고 타인의 공감을 받으면서 자기감정에 대한 위안도 얻을 수 있다.


뒷말의 대상이 내가 되었고 내가 그 뒷말을 알아차렸을 때는 어떨까? 처음 자신이 뒷말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누구나 몹시 당황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타인이 나를 이렇게 평가하고 바라보고 있구나 알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특히 나 같은 경우는 얼굴 낯짝이 두껍고 평소 성격이 크게 상처받지 않는 성격이라 뒷말의 대상이 '나' 인 것을 알았어도 대수롭지 않아 했다. 오히려 나중에는 누군가를 통해서 내 뒷말을 듣고 행동수정의 계기로 삼았다.


실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니 뒷말을 했던 상대도 나에 대한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해당 건에 대한 뒷말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하지만 뒷말로 인해 심각하게 상처받는 사람도 많다. 주의가 필요하다.)


뒷말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가능할까?



아니. 나는 사람의 본성상 뒷말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든 누군가를 만나고, 만난 상대와 생긴 일에 대해 본능적으로 이를 타인과 공유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은 뒷말을 함으로써 자신이 파악한 상대에 대한 정보나 평가가 맞는지 재차 확인하고 타인에게 공감받고 싶어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는 자신의 감정과 스트레스 완화에도 분명 도움이 된다.


나 또한 요즘에는 와이프랑 매일 산책을 나가면서 직장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뒷말을 통해 풀기도 한다. 봄 저녁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다 털어버리고 나면 속이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다.


뒷말을 할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


하지만 이런 뒷말을 할 때도 주의할 점들은 분명 있다. 우선 뒷말을 들어줄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과거의 나처럼 뒷말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분명 있다. 또한 해결 주의 성향의 사람은 뒷말을 하는 사람을 굉장히 답답하게 여기기도 한다. 뒷말하는 사람은 그저 자신의 상황을 공감해 주기만을 바랄 뿐인데 해결 주의 사람은 '그래서 어떻게 도와줄까요. 제가 직접 찾아가서 따져볼까요?'라는 말까지 해 뒷말하는 사람을 당황케 만들기도 한다.

또 뒷말 듣는 사람이 입이 굉장히 가벼운 경우도 있는데 이럴 경우 내뱉은 뒷말이 제3, 제4자에게도 공유되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생긴다.

뒷말 중에서 가장 질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상대 신체나 외모에 대한 비하이다. 이는 선천적으로 유전 성향이 강한 것으로서 그 사람의 잘못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다. 특히 초등학교 때가 되면 아이들이 이런 뒷말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부모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청소년기 때 뒷말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제법 이성이 갖춰지고 갈수록 친구 사이가 중요해지는 청소년기 때는 뒷말에 대한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요즘 학교 폭력으로 자주 언급되는 문제들이 상대에 대한 뒷말, SNS를 통한 저격, 상대 비하 문제이다. 이런 문제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뒷말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여학생 간 학교폭력 문제는 상당수 이런 뒷말 문제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학기초부터 마음이 맞았던 여학생 A, B, C, D는 자기들끼리 학급에서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여 매일 같이 놀았다. 특히 이들은 서로의 고민도 털어놓고 학급 일이나 타인에 대한 뒷담을 공유하며 서로 유대감을 형성했다.

하지만 어느 날 사소한 문제로 D가 그룹에서 떨어져 나갔다. 서로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홀로 남겨진 D는 학급생활이 몹시 힘들었다. 가끔씩 A, B, C가 쑥덕쑥덕 대는 것을 보면 마치 자기에 대해 험담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불편했다. 또 어느 날은 D가 복도를 지나가고 있다가 A, B, C를 마주쳤는데 A, B, C가 갑자기 큰소리로 웃어댔다.

D는 마치 자기를 조롱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묘했다. 그러던 어느 날 E가 찾아와 무언가를 알려줬다. 'A, B, C 쟤네 사실 너에 대해 매일 뒷말하고 있는 거였어. 전에 쟤네끼리 쓰고 있는 단톡방을 몰래 봤는데 거기에 너에 대한 험담으로 가득했지 뭐니.'

충격을 받은 D는 몸이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당장 내일부터 시험기간이었는데 밤새 시험공부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 결국 시험까지 모두 망친 D는 이 모든 원인이 A, B, C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D는 곧바로 학폭 담당교사를 찾아갔고 정식으로 학폭 신고를 하였다.


실제 학교 현장에 학교폭력 사안으로 몇 건 접수되었던 여학생 간 문제 유형이다. 안타깝지만 이런 문제는 명확히 피해자, 가해자를 가릴 수 없어서 좀처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D가 학폭 신고를 하게 된 것을 알게 된 A, B, C가 바로 자신들의 SNS 대화글을 지우고 '그런 적 없었다. 기억이 안 난다' 고 둘러대면 학교에서도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다. 결국 누구 한쪽이 양보하지 않는 이상 이런 문제는 학생 학부모간 감정싸움으로까지 이어지고 소송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었다.



도대체 누구의 잘못일까? 저기에 나온 A, B, C라고 해서 특별히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도 아니었고 그저 평범한 여학생 들일뿐이었다. 굳이 잘못을 찾자면 이런 일을 대비해 사전에 예방 교육을 철저히 하지 못한 학교와 학부모의 잘못이었다.


그룹을 만들어 자기들끼리 뒷말과 비밀을 공유하며 놀기를 좋아하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교우관계의 변화가 생겼다면 제법 심각한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이를 감지한 학부모나 교사라면 사소한 뒷말이 추후 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주의를 당부했어야 했다.


특히 정신적으로 덜 성숙한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앞으로의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뒷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창 이성이 발달해가는 아이들에게 사회성 측면에서도 뒷말에 대한 교육은 필요하다.


교사 학생 학부모 사이에서도 뒷말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학부모가 담임교사에 대한 뒷말을 학생과 공유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학생은 학부모로부터 들은 뒷말을 통해 담임교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교사의 지시에도 순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알게 모르게 아이는 학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학부모가 학교에 부정적이면 아이 역시 학교를 부정적으로 보고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해나가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교사에게 바라는 점이 많더라도 아이에게는 뒷말이 새 나가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추가로 뒷말은 뒷말을 푸는 자와 뒷말 대상자의 관계 이야기일 뿐이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뒷말을 듣고는 나 역시 뒷말 대상자를 멀리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그건 타인과 타인의 관계이지 내 관계는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사람 간의 관계는 1대 1 관계라는 것을 명심하고 뒷말 대상자도 평소처럼 똑같이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뒷말은 사람의 본능이다.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뒷말을 한다. 이는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자 언어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뒷말은 부정적 측면이 많다. 하지만 부정적인 면이 많다고 해서 이를 무조건적으로 못하게 하고 틀어막는 것이 과연 올바른 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갈수록 범람하는 물을 막기 위해 댐을 계속해서 높이 쌓는다 해서 그 댐이 모든 물을 가두어 놓을 수는 없는 법이다. 차라리 물이 한쪽에만 흘러넘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안정적인 수로를 만들어 놓는 게 올바른 해결책 아닐까?

뒷말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의 의식이 성장할수록 뒷말을 더욱 자주 하게 될 텐데, 자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성장할수록 뒷말을 어떻게 조절하고 주의해야 할 점들은 무엇인지 성찰해보고 자주 알려주는 편이 나을 것이다.

ps. 원래 뒷담화에 대해 글을 쓰려했다. 하지만 뒷담화가 남에 대한 험담을 한다. 남을 헐뜯는다 식의 안좋은 뜻만 너무 많아서 뒷말에 대해 쓰는 것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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