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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는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란 아빠이지만......

그래도 너희들에게는 진심을 다하고 싶은 나

by 한동훈

올해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이가 아내 뱃속에서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올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다.


처음 아이가 태어날 때의 그 감동을 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이가 아내 뱃속에 있을 때는 솔직히 실감이 안 났었는데 마침내 아이가 태어난 순간 "아! 이 아이가 바로 내 아이구나." 하는 벅찬 감동이 몰려왔다.


아이를 낳은 것은 아내였지만 세상 밖으로 나올 때 가장 먼저 아이와 눈을 마주친 사람은 바로 나였다. 또한 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애지중지하며 아이를 가슴속에 껴안고 첫날밤을 같이 보낸 사람도 바로 나였다. 큰 아이는 우리 가족들 중에서도 나와 가장 많이 닮았다. 그래서 큰 아이랑 내가 밖을 지나가면 사람들은 우리가 부자지간인 것을 바로 직감한다. 일명 붕어빵이다.


이런 이유들을 차치하더라도 큰 아이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특별하다. 어떻게 보면 나에겐 나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큰 아이라고 해서 우리 부부가 순탄하게 키워 왔던 것만은 아니었다. 영아시절에는 가리는 음식도 꽤나 있었고 감기가 걸릴 때면 구토 증상도 꼭 함께 왔다. 토한 것 때문에 침대 시트나 자동차 카시트를 몇 번을 닦아내고 청소했는지 모르겠다. 수족구나 로타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에도 이놈들은 꼭 큰 아이를 거쳐 갔다. 아이 상태가 심각해서 링거를 꽂고 아동 병원에 입원하는 때도 몇 번 있었다. 힘들었던 그때가 나에게는 더 각인된 것인지 난 지금도 큰 아이의 영아시절을 생각하면 힘듦, 한숨, 병원, 링거, 피곤함 같은 단어들밖에 안 떠오른다.


큰 아이는 성격 면에서도 다루기 쉽지가 않았다. 부끄러움이 많고 엄마 아빠랑 항상 꼭 붙어 다니며 헤어지기 싫어했던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은 매일 힘들고 걱정되는 일이었다. 또 큰 아이는 주변 아이들 앞에서 자기 의사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었다. 이 때문에 늘 큰 아이를 먼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다른 또래들에게 당하고 손해만 보고 있는 것 같아 가슴 한 구석에서 답답함이 많이 몰려왔다.


아이의 이런 모습이 많아질수록 그에 대응하여 내 손길과 간섭도 많아졌다. 주변 친구들하고 놀다가 조금만 손해 보는 일이 생기면 이를 넘어가지 못하고 대체 왜 그랬냐 집에 가자면서 아이를 추궁했고, 아이가 조금만 잘못해도 아이를 혼내고 잔소리하기 일쑤였다. 아이에게 학습을 시킬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아이가 내가 가르치는 것에 집중 못하는 모습을 보일 때는 벌컥 호통치는 경우가 많았다. 수업시간 멍하게 날 쳐다보며 그날 배운 것을 하나도 기억 못 하는 학교 제자들의 모습이 스크랩되면서


"집중! 집중! 집중 안 해? 대체 아빠가 가르쳐주고 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하면서 아이에게 내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도 아이는 잘 자라나고 있었다. 걱정했었던 편식은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점차 사라져 갔고 감기나 구토 증상도 현저하게 줄었다. 현재는 밥도 성인 1인 분량을 혼자 다 먹고, 추가적으로 간식까지 더 먹으려 할 정도로 나를 닮아 대식가로 성장했다.

성격 면에서는 남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인사성도 늘었고, 친구들 앞에서 자기 의사 표현 능력도 이전에 비해서 많이 늘었다. 이제는 남들과 어울리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고, 학원에서 주관하는 서울랜드 소풍도 혼자 잘 다녀올 정도로 엄마 아빠와의 헤어짐도 익숙해졌다.


그렇다. 큰 아이는 아무것도 준비 안되고 서툰 아빠를 두고서도 잘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현재 아이의 평일 아침 등굣길은 항상 내가 책임지고 있다. 와이프는 30분 일찍 출근해야 해서 내가 아이들의 등원, 등교 라이딩을 맡는데 단 한 번도 귀찮고 성가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직장 출근시간이 20분, 15분 촉박해져도 큰 아이의 손을 잡고 가는 등굣길은 언제나 즐겁다. 이 시간만큼은 아이도 내가 묻는 투머치 질문에 곧잘 대답을 잘해주기 때문이다.


"요즘 학교에서는 뭐 배우니. 친구는 누구 사귀었니. 친구들하고 쉬는 시간에 뭐하고 노니. 선생님은 어떻니. 오늘 급식은 뭐 나왔니. 밥은 맛있게 먹었니. 학원에서는 뭐 배웠니."


늘 똑같은 일상인데도 큰 아이의 하루 일과는 나의 중요한 관심사다. 그래서 늘 똑같은 질문을 하고 아이의 대답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인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가리켜 '모든 것을 책임져주는 헬리콥터 아빠가 바로 여기에 있네. 참 열성적인 아버지다. 아이 키우는 것은 걱정이 없겠다.'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난 그 반대에 해당된다. 아이에게 관심이 많은 만큼 아이에게 잔소리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도 바로 나다. 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꾸 해서는 안될 짓을 많이 하는 여전히 부족하고 준비 안된 아버지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매일 밤마다 아들과 그날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는데, 그때마다 내가 아이에게 잘못한 일들만 생각나는 것 같아 후회 가득한 마음으로 잠이 들 때가 많다.


"조금 더 잘해줄 수 없었을까? 내일은 이런이런 활동으로 아이와 유익한 시간을 보내보자."


늘 다짐하면서도 실천이 잘 안 된다. 최근에는 육아서적이나 각종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방법을 공부 중이다. 하지만 공부를 한다고 해서 이게 잘 실천될지 모르겠다. 여전히 고집이 세고 게으르고 후회할 만한 일만 반복하는 서툰 아빠이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는 아내의 사촌 결혼식이 있었는데 특이한 장면이 목격되었다. 보통 우리가 식장에 가면 딸을 시집보내는 신부 어머니가 우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동안 애지중지 딸을 키운 가정에서 딸이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 시집보내는 것은 엄마 입장에서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번 결혼식에서는 신부 어머니께서는 가만있는데 아들을 장가보내는 신랑 아버지(아내의 삼촌)께서 펑펑 우셨다.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결혼식 상황에 모두들 크게 웃었지만, 이상하게도 난 그 상황이 감정 이입되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만큼 신랑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애지중지 키우며 부자 지간이 수십 년간 돈독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 왠지 나도 20-30여 년 뒤 큰 아들이 결혼을 할 때 식장에서 펑펑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언제나 내 마음속 1순위는 우리 아들들이다. 돈 명예 지위 어떤 것을 얻게 되더라도 결코 우리 아들들의 성장과 행복 없이는 하나도 즐거울 것 같지 않다. 아마 대다수 부모의 마음도 이렇지 않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깨닫는 점, 배우는 점이 많다. 그럴수록 난 여전히 많이 부족하고 모자란 아빠다. 많은 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잘못된 방식으로 육아를 했다는 뜻이니까.


잔소리가 너무 심해서 나중에 다 큰 아이들이 나를 멀리하더라도 나는 솔직히 할 말이 없다. 자업자득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이것 만큼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난 너희들에게만큼은 늘 진심이었다고.

사랑한다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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