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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훈 Jun 30. 2022

밀레니얼 교사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는 없을까?


물고기 중에 관상용 물고기로 '코이'라는 녀석이 있다. 일본의 비단잉어로도 알려져 있는 이 물고기의 특징은 환경에 따라서 자라는 크기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작은 어항에서 살면 5cm 정도의 작은 물고기로 사는데 비해 연못 같은 곳에서는 25cm 정도까지 자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대형 호수에서는 놀랍게도 1m가 넘는 대형어로까지 자라날 수 있다고 한다.



어떤 환경에 속하냐에 따라 사람도 달라진다.


코이의 예처럼 사람도 본인이 어떤 환경에 속하냐에 따라서 그 활동이나 성장 범위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최신 기술을 선도하고 성취 지향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소속된 사람은 자극을 받아서 본인도 그렇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 반면 수동적이고 보수적 문화가 강한 곳에 소속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하는 행정 업무에만 몰두하면서 시간이 지나도 큰 변화나 발전이 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를 포함한 밀레니얼 교사(1980년~2000년 출생자)들은 후자로 성장한 경우가 많았다. 처음 임용될 때 신규교사로서 가졌던 신선함과 포부는 사라지고, 어느덧 세태에 찌들고 학교의 주어진 일에만 충실하는 그런 수동적인 교사로 전락해 버렸다. 물론 교사가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며 반문할 수도 있겠다. 담임업무, 행정업무, 생활지도, 수업 준비, 시험문제 출제, 시험문제 채점, 생기부 입력 등 실제 교사가 해야 하는 업무량이 적지는 않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런 업무는 학교에서 매년 주어지는 똑같은 업무일 뿐이었다. 이런 업무들을 정신없이 수행하고 나면 시간만 흘렀을 뿐 개인적으로 내가 성장했구나 발전했구나 하는 성취감은 딱히 없었다.

 그리고 다음 해가 되면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그렇게 반복된 업무에만 매여 있는 사이 어느새  역시 보수적이고 새로운 일을 기피하는 수동적인 교사가 되어 버렸다. 나이가 많은 선배교사들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어느새 나도 그런 선배교사들의 모습을 똑같이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교육개혁만 부르짖는 정부 그러나.


매년 정부에서는 IT나 기술 중심의 시대적 흐름을 강조하면서 교육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변화나 개혁' 이 필요하다고 부르짖는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주장은 허공의 메아리 같을 뿐 실제 그 가이드라인을 보면 파격적인 변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국영수 과목 중심체제는 여전하고 컴퓨터와 관련된 정보나 프로그래밍 과목의 비중은 물에 살짝 발 담근다 싶을 정도로 미약하다. 또한 IT나 기술과 관련된 교사 수급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없다.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면 아마 10-20년이 지나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교육계는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고 비판받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무서운 것은 10-20년 후면 지금의 30-40대 밀레니얼 세대 교육자들이 정책 입안자나 주요 교육행정 결정권자가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미 관료나 행정주의에 찌들 대로 찌든 밀레니얼 교육자들이 이전 세대보다 컴퓨터 조금 더 잘 만진다 해서 전과 훨씬 달라진 파격적인 교육 정책을 과연 만들 수 있을까?   


사람은 결국 살아온 환경만큼의 시야를 가지고 딱 그 범위 안에서만 생각하게 된다. 학교나 교육청이라는 좁은 틀 속에서 개인이나 소수의 사람끼리만 백날 이것저것 구상해봤자 기존의 것을 뒤엎는 참신하고 파격적인 생각이 갑자기 나올 리 만무하다.



밀레니얼 교사는 어떤 사람인가?


스타크래프트와 싸이월드의 초기 멤버라 할 수 있는 밀레니얼 교사들은 어려서부터 인터넷이 보급된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교사 집단에서도 컴퓨터나 IT, 스마트폰에 가장 익숙한 사람들이다. 새로운 것에 관심을 보이며 학교에서도 누구보다 빠르게 신기술을 배우고 활용할 줄 안다.


밀레니얼 교사들은 취업난으로 인해 공무원이나 교사에 대한 직업 선호도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교사가 된 경우가 많았다. 초등교사의 경우 서울 상위권 대학 수준과 맞먹는 입학 성적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많고 중등은 기본 20-30대 1의 치열한 임용 경쟁률을 뚫고 정규직 교사가 된 사람이 많다. 어려운 취업 환경 속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교사가 된 만큼 본인 능력이나 학력에 대한 자부심높은 편이다.


하지만 개별 학교는 이런 젊은 교사들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처음 부임해 아무런 준비 안된 사람에게 다짜고짜 담임이나 과도한 행정업무부터 쑤셔 넣는 경우가 많았고 그 과정 속에서 젊은 교사들은 정신없이 업무처리에만 몰두할 뿐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고 자신을 성찰해 볼 틈은 전혀 없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만들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자꾸 모임을 가지고 만나야 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환경 속에서는 만나려야 만날 수가 없다. 업무 처리하느라 서로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감히 제언을 하자면


이런 상황 속에서 감히 제언하건대 정부가 진정 교육계의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면 수천 명의 밀레니얼 교육자들을 모집하여 그들이 마음껏 뜻을 펼칠 수 있게 대형 교육 연구소나 기관몇 개 신설해서 체계적으로 운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공서열보다는 자신의 능력이나 일한 만큼에 대한 보상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에게 더 높은 급여, 새로운 아이디어나 교구, 교육 콘텐츠 개발에 따른 더 큰 보상을 제시한다면 밀레니얼 교육자들이 지원을 마다할 리 없을 것이다.


관행처럼 여겨졌던 연줄이나 인맥에 따른 채용방식을 버리고, 오로지 실력과 포트폴리오만을 평가하는 투명한 면접 체계를 갖춘다면 젊고 유능한 교육자들이 서로 몰릴 것이고,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일종의 교육자들의 로망 기관이 될 것이다. 기관에 민주적인 의사소통 과정, 상호 평등한 조직 문화, 프로젝트 운영과정에서 연대책임, 풍부한 복지혜택 등을 준다면 교육계의 선진적인 조직문화 분위기 조성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후발 교사나 세태에 찌든 교육자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제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물론 나는 이런 대형 기관을 신설한다 해서 오로지 교육자들로만 인원을 구성하는 것은 반대한다. 참신하고 새로운 생각은 때론 외부에 시선을 돌릴 때 얻을 수 있는 만큼 새로운 교구, 새로운 수업, 새로운 교육정책은 다른 직종의 외부 전문가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술을 위해서 IT나 앱 계발자, 그래픽 전문가, 영상 편집자의 참여나 상주도 필수적이고 새로운 교육정책을 위해 외국의 저명한 교육자들 영입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분들의 조언과 협업 속에 밀레니얼 교육자들은 기관 속에서 같이 근무하며 머리를 맞대고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며.


한국사회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교육부 장관은 장관 서열 2위이고 현재 사회부총리를 겸임하고 있다. 또한 정부의 1년 교육예산은 89조 원 규모로 전체 정부예산의 14%에 달한다. 그만큼 정부도 교육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교육의 중요성만 인지하고 있을 뿐 앞으로 우리 교육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방향성은 제시 못하고 있다. 교육이 시대를 못 따라간다는 말은 사실 어제오늘의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시대를 선도하는 정신이나 개혁 방안은 관료나 행정주의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참신하고 능력 있는 젊은 교육자들은 분명 곳곳에 많은데 정부는 학교라는 좁은 어항 속에 이들을 밀어 넣기만 하였을 뿐 전혀 활용을 못하고 있다. 결국 코이(밀레니얼 교사)들은 좁은 어항 속에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생활하다가 5cm의 작은 크기로 쓸쓸히 생을 마감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들 코이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게 초대형 연못이나 호수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진정 교육개혁이나 변화를 생각한다면 그 많은 교육예산이 투입되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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