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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훈 Jul 08. 2022

나태한 교사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

 교사의 업무는 정말 하기 나름이다. 생기부 업무의 경우 어떤 교사는 학생 한 명 한 명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진로와 세특 활동을 어떻게든 빠짐없이 생기부 글을 통해 살리려고 노력한다.

 반면 어떤 교사는 한 학기가 지나도록 학생 이름도 모른 채 3-4가지 세특 예시 안만 만들어 이걸 그대로 '복사-붙여 넣기'  하고 있다.


담임의 업무도 마찬가진데 어떤 담임은 학급의 작은 활동 하나에도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을 도와주고, 아이들 각자의 재능과 잠재력을 끌어내고자 노력한다. 반면 어떤 담임은 학기초부터 모든 업무를 반장이나 부반장에게 위임한 채 그저 가정통신문이나 전달사항 등의 행정업무만 처리하며 아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만 내리는 경우도 있다.


사실 학교에서는 전자처럼 활동하는 것이 교사에게 요구되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모두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지는 않다. 제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다는 말처럼 어떤 교사는 취미활동에만 빠져 공강 시간에도 하루 종일 스포츠 영상만 틀어놓고 만족하는 경우가 있고, 또 어떤 교사는 자신의 승진이나 학위 취득에만 매진하며 수업이나 아이들 활동은 등한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뭐가 되었건 내 입장에서는 이런 선배 교사들의 나태한 모습을 좋은 시선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저 같이 술이나 밥 한 끼 할 때 맞장구만 쳐줄 뿐, 시간이 지나고 나서 까지 그렇게 오래도록 인연을 유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반면에 이분들과는 대조적으로 나이가 들어서도 학교 업무나 학교 활동에 정말 성실히 임하시는 선배 교사들도 계시다.


특히 나와 같이 근무하고 있는 학생부장님(생활 안전부장)의 경우 나이가 50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아이들 수업에 임하시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관심이 진심이다. 특히 무더운 어느 날 수업시간 학생들을 위해 부장 선생님께서 사 오신 아이스크림 선물에 아이들은 깜짝 놀라며 "서프라이즈!  쌤 감동이에요" 를 연발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시작했던 그날의 수업은 아마 아이들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지난달에는 작년 담임반 학생이 부장님(작년에는 담임을 맡음)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교무실을 방문했다. 학교 생활이 힘들어 결국 '자퇴'를 결정한 그 학생은 부장님과 그동안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눈물을 쏟았다.


 "선생님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제가 힘들 때도 제 편에서 늘 도와주시고 챙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이렇게 이렇게 그만두게 되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의 눈물은 진심이었다. 학생이 부장님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면서 말을 이어가지 못할 때 부장님은 말없이 손을 잡아주셨다. 그동안 부장님께서 아이들을 평소에 어떻게 대하는지 그 장면에서 느낄 수 있었다.

 

부장님은 행정 업무에도 책임감을 갖고 임하신다. 늘 일찍 출근해서 아침에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이하고 있고, 아이들 하굣길도 차량을 통제하며 아이들 안전을 보살핀다. 각 학생부 선생님들에게도 '내가 도와드려야 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하면서 업무 하나하나에 집중을 하고 책임을 지려 하신다.


이처럼 학교에는 앞선 부장님의 사례처럼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시는 많은 부장 선생님들이 있다. 따지고 보면 학교에는 부장 선생님들은 참 많다. 교무부장, 연구부장, 교육과정 부장, 학생부장, 인문사회부장, 자연과학부장, 1학년 부장, 2학년 부장, 3학년 부장 등등.


그런데 이 분들 중 실제 관리자(교감, 교장)로 승진하는 경우는 극소수다. 실제 열에 한 명 많으면 열에 두 명 정도가 전부다. 그렇다고 이 분들이 다른 교사에 비해 급여를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분들이 늘 학교에서 이렇게 최선을 다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열에 아홉 분은 '그냥 책임감 때문이지 뭐'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것만으로는 이분들의 태도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동료 교사나 학생을 대하는 한결같은 모습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추정컨대 초임 때부터 성실히 근무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서 습관처럼 이어지다 보니 현재까지도 이런 좋은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아이들이나 학교에 늘 애정을 쏟는 마인드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성실히 일하면서 항상 후배 교사들의 모범이 되려 하는 부장 선생님들의 모습은 앞으로 내가 어떤 식으로 교직생활을 해 나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좋은 지침서와도 같다. 분명한 것은 내가 그런 선배교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닮아가면 닮아가려 할수록 내 마음속에도 학교에 대한 열정이 샘솟고 근무 태도도 좋아진다는 것이다.


일은 누구나 서툴고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라고 기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항상 나보다는 남을 살피는 근무 자세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덧 나도 11년 차에 접어들면서 나와는 10살 이상 차이 나는 후배 교사들이 학교에 꽤나 들어오게 되었다. 가끔씩 이 분들이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볼 때면 내 초임 때가 생각나서 옅은 미소가 나올 때도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선배 된 입장에서 '이 분들은 날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의식을 할 때도 있다.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모범이 되고 싶다.



선배교사들로부터 받은 좋은 영향력이 나를 통해 다시 후배 교사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좋은 선배가 될 수 있도록 나는 내 마음속의 나태함을 버리고자 한다. 항상 누군가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또 누군가에게는 진심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교육자가 되고 싶다. 그런 교육자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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