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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 수련회와 체험학습에 대한 단상

by 한동훈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우리학교의 공식적인 방학은 19일이었지만 생활 안전부(학생부)선생님들에게는 아직 방학까지 연장 10회가 남아 있었다. 바로 방학식이 끝나자 마자 시작되는 간부수련회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간부수련회는 학교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학생회 임원들이 하계방학 중 모임을 가지며 서로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단합하여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 행사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코로나19의 여파로 간부수련회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는데 올해는 완화된 코로나 상황을 반영하여 과거처럼 다시 외부에서 1박2일 행사로 진행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새로 학생회로 선정된 아이들 의지가 컸다. 사실 선생님들 속마음이야 약소하게 치르고 빨리 마무리 하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 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꼭 외부에서, 그것도 반드시 1박2일로 진행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학교와 선생님들은 아이들 등쌀에 못이겨 한달 전부터 수련회 장소를 물색 하기 바빴다.


그런데 맙소사 ! 다른 학교들도 상황이 비슷했던 지라 대부분 학교들이 외부에서 간부 수련회를 하기로 계획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발빠른 학교들은 미리 움직였고 근처의 왠만한 수련원들은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었다. 그래서 장소를 찾는 것만 해도 수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족히 일주일은 걸렸다. 수도권은 이미 자리가 없었고 멀리 돌고 돌아 결국 충남 만리포 수련원까지 전화가 갔을 때에야 빈자리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원에서 만리포까지 편도로만 2시간 걸리는 거리였지만 아이들은 바닷가가 있고 외부에서 잠을 잘 수 있고 취사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크게 만족해 했다. 그렇게 방학식날 생활안전부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만리포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와~!


처음 본 만리포 바다에 아이들은 저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안전사고의 이유로 절대 바닷가에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관리자들의 신신 당부도 잊은 채 아이들은 바다를 보자마자 저마다 바닷가에 발을 담궜다.


앗 차가워~!


오랜만에 느끼는 바닷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그 차가운 감촉을 매개로 그동안 쌓였던 아이들의 스트레스도 사르르 녹아내렸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진행된 학교수업-학원수업-중간고사-수행평가-기말고사 등 빡빡한 학교 일정 속에 사실 아이들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탁 트여서 끝이 안보이는 만리포 바다는 그런 의미에서 좋았다. 빽빽한 아파트와 상가 건물, 오고가는 자동차 경적과 매연소리 때문에 갑갑함만 느껴졌던 학교 주변의 환경과 만리포 바다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낸 다음 저녁에는 바베큐 파티를 하였다. 이때야말로 바로 생활안전부 선생님들의 봉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선생님들은 저마다 목장갑을 하고 아이들을 위해 숯불에 지글지글 고기를 올렸다. 바닷가 물놀이 후 야외 취사장에서 날아다니는 갈매기와 바다뷰를 만끽하며 한점 한점 숯불에 구워먹는 고기는 그야말로 낭만이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나 포함 선생님들을 향해 따봉을 외쳤는데 사실 나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고기를 한창 구워 주느라 주섬주섬 고기를 먹을 때도 고기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조차 몰랐다.


"선생님 좀 드세요. 저희가 대신 구울게요."

"아니다. 난 괜찮다. 선생님 속이 안좋으니 너희들 마음껏 먹으렴. 너희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구나."


사실 어릴 때는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의 의미를 몰랐다. 먹어야 배가 부른 것이지 대체 먹지도 않고 어떻게 배가 부르다는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난 누군가 고기를 구워주면 옆에 어른이 있음에도 배고픈 내 허기를 달래고자 허겁지겁 먹기만 하는데 바빴다. 옆에 고기를 구워주고 계셨던 선생님, 아버지-어머니에게 한번 잡숴보라고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본인이 제대로 식사를 못한 상황이었음에도, 그런 나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때는 그 미소가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어른이 되기까지는;;


하지만 나도 20년 후 선생님이 되고 아빠가 되고 어른이 되고 이제 똑같은 입장이 되고 나니까 이제서야 그 미소가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아이들에게 고기를 구워 주면서 그때의 선생님, 아버지-어머니께 한번 드셔보라고 말한마디 못한 내 모습이 죄송스럽고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살짝 눈물이 났다.


어른이 된다는게 이런 느낌일까? 아이들이 만족해하고 행복감을 느끼면 더 베풀어주고 싶어지는 심정. 자신은 부족해도 아이들이 만족해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심정.


분명한 것은 살아가면서 어른이 되어 갈수록 내 삶의 중심축은 나 자신보다 아이들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밤이 되어서도 선생님들의 아이들을 위한 봉사는 계속 되었다. 아이들이 대강당에서 앞으로의 학생회 연간계획을 세우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 선생님들은 부엌에서 가리비를 삶고, 과일을 깎고, 컵라면과 과자, 음료를 셋팅하고 아이들을 기다렸다.


"쌤 감동이에요♥♥ 잘 먹겠습니다."


야식을 준비해 준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은 적잖이 감동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난 그 말을 들은 순간 오히려 애들한테 미안했다. 사실 학교에서도 내가 애들에게 지시만 내렸지 언제 애들을 위해 무언가를 사주고, 만들어주고, 세팅해 주었던 적이 대체 몇 번이나 된다는 말인가?

이 기회를 빌어서라도 아이들에게 좀 더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새벽이 되어서도 선생님들은 제대로 쉬지 못했다. 수련원에서 보안 경비를 대신 서 준다고 했지만 100% 믿을수는 없었던 상황이라 선생님들은 수시로 수련원 복도를 돌면서 혹시나 생길 안전사고에 대비하였다. 다행히도 아이들도 일정이 고단했던지 새벽 1-2시쯤 비교적 일찍(?)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한 다음 모든 수련회 일정을 마무리하고 학교로 가는 길에 몸을 실었다. 가는 길에 아이들에게 이번 간부수련회는 어땠냐고 물었을 때 아이들은 저마다 "무척 아쉬워요. 1박 2일 너무 짧아요. 다음 번에는 2박 3일로 가요." 하는 볼멘 소리를 하였다.


그런 볼멘 소리를 들을수록 '아이들이 그래도 이번 수련회 활동을 꽤 만족하고 있구나' 속으로 생각이 들어 안도감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선생님들에게 이번 간부수련회는 어떤 의미였을까?



무엇보다 수업 대 수업으로 밖에 만날 수 없었던 교사와 아이들은 자연 환경 속에서 같이 밥먹고 같이 체험하며 새로운 것들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엄격한 수업시간에 관람자로만 있었던 아이들과도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허심탄회하게 과거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만들 수도 있었다.


사실 중고등학교 아이들에게 학창 시절은 전혀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본격적인 학업의 파도가 들이닥침에 따라 대부분이 힘들어하고 좌절하는 시기이다. 이런 상황일수록 역설적으로 아이들에게도, 친구들과 함께 충분히 맛보고 즐기고 경험할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학교의 연례 행사가 빽빽한 학교 일정 때문에 몇 차례 되지도 않을 뿐더러 최근에는 코로나19 여파로 그동안 있었던 그 몇차례 안되는 행사마저 폐지되거나 대부분 치뤄지지 못했다. 특히 올해 고3수험생의 경우에는 1,2학년 내내 지속된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서 행사다운 행사 한번 경험해보지 못하고 졸업을 맞이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어느 인터넷 댓글에 학부모는 '요즘 졸업생 앨범을 보니 흔하게 찍혀 있어야 할 체육대회나 수학여행, 학교 축제 모습조차 나와있지 않더라.' 하며 하소연 했는데 그 댓글을 본 순간 안타까움과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매우 컸다.


20년이 지난 내 학창시절을 떠올려 봐도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선생님들께 배웠던 영어 문법이나 수학 공식은 기억이 안나지만, 선생님들과 있었던 에피소드나 수학여행 수련활동 등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 기억에 생생하다.


아마 지금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 아이들이 제대로 된 학교 행사 한번 경험해보지 못하고 학창시절을 떠나 보낸다면 20년 후 이 아이들에게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은 대체 어떤 의미로 기억되고 있을 것인가?


학교에서도 교사인 내 입장에서도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오늘도 일선의 체험학습 담당선생님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전주의 어느 학교 학생들이 집단으로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해당 학교에서도 모처럼 아이들에게 좋은 시간을 선물해주고자 많은 준비를 했을텐데 이런 일이 생겨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매번 학교와 선생님들이 표적이 되어 비난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간부 수련회나 체험학습(수학여행) 등의 야외 학교 행사는 계획을 수립하는 그 시작 단계부터가 구체적 계획과 안전대책 수립, 일정 조율, 장소 선정 등으로 힘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사실 담당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이런 행사를 잘 치른다고 해서 본인에게 딱히 이익이 되는 것도 없다. '밑져야 본전' 이라는 말이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선의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바램에 화답하고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계획을 수립하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선생님들이 체험학습 기간에 수시로 대화를 진행해도 대부분 대화 내용은 아이들 걱정, 아이들 안전대책에 관한 내용들이다.


이런 선생님들에게 언론에서는 제대로 된 격려와 칭찬 기사는 없고 매번 책임과 비난 공격의 대상으로만 삼는 것만 같아 안따깝기 그지없다.


코로나 엔더믹 상황이 될 때 달라져야 하는 것은 우리의 방역 환경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달라져야 할 것은 체험학습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과 이를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학교 선생님들을 배려하고 감사할 줄 아는 태도 아닐까?


위축된 선생님들 어깨가 펴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좀 더 많은 추억을 만들수 있는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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