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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진로교육은 안녕하십니까?

by 한동훈

쌤 시간표에 보니까 진로라는 과목이 있던데요. 뭐하는 거예요?

응. 너희들 대입 진학이나 앞으로의 취업 등 진로 활동을 도와주기 위해 만들어진 과목이야.

그렇군요. 그럼 그 시간에는 누가 들어와요?

내가 들어오지.

그 시간에는 무슨 활동해요?

그.... 글쎄. 아직 선생님도 생각 안 해봤는데 무엇을 할지 차차 생각해보자꾸나 하하.


고등학교의 시간표를 보면 진로라는 과목이 있다. 진로는 창의적 체험활동(자율, 봉사, 동아리, 진로) 중 하나로서 123학년 모두 보통 일주일에 1시간, 많게는 2시간씩 시간표에 배정되어 있다. 진로가 이처럼 매 학기별로 빠지지 않고 포함되어 있는 것은 그만큼 학교에서 진로 활동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문제는 위의 대화에서 보듯 진로 담당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진로시간에 구체적으로 무슨 활동을 해야 할지 너무나도 막연하다는 것이다.


물론 학교에는 진로 전담교사가 있긴 하다. 하지만 보통 한 학교에 1명 정도만 배치되어 있고 이 분들의 평균 수업시수는 10시간 정도이다. 고등학교 123학년 통틀어 총 30학급이라고 가정할 경우 나머지 20시간은 일반 타교과 선생님들이 진로 수업을 맡아야만 하는 것이다. 진로가 일주일에 2시간씩 들어있는 학교의 경우에는 타교과 선생님들의 진로 수업 부담이 50시간으로 더욱 커진다고 볼 수 있다.



타교과 선생님들에게 진로는 가장 편하면서도 가장 부담스러운 과목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니 타교과 선생님들이 진로 수업을 맡았을 경우 실제 제대로 된 진로 수업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보통 진로 수업은 2월달 학교에서 새 학기 수업 시수를 배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전공 수업 시수가 적은 교사가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타교과 선생님들은 새학기 직전 갑작스럽게 진로 수업을 맡게 된 경우가 많다. 이 분들 입장에서는 구체적인 진로 수업 계획도 구체적인 진로 수업 콘텐츠도 준비되어 있을 리 만무하다.


물론 교육청에서는 수업시간 활동지로 쓰라고 진로 워크북을 제공하기는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준비 안된 교사에게 달랑 활동지 하나 주고 진로 수업을 알차게 구성해 보라고 지시하는 것은 큰 무리가 있다. 또한 이런 활동지는 대부분 형식적이고 실제 학생들의 진로 탐색 활동에 큰 도움을 준다고 보기도 어렵다. 자기 진로 발표하기 자기 적성 알아보기 등이 전부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 의욕도 떨어지고, 교사 입장에서도 몇 번 쓰다가 자신도 활동지 내용을 잘 몰라서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그래서 3학년의 경우에는 아예 진로 수업시간을 자습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진로 교과를 맡은 교사 입장에서는 특별히 아이들을 가르칠 것도, 그렇다고 수업을 알차게 준비할 것도 없게 된다. 어떻게 보면 수업하기 가장 편한 과목이 진로 과목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로활동은 고등학생들의 대입에 있어서는 상당히 중요한 활동이다. 대학교에서는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기 위해 고등학생들이 학교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유심히 살피고 그 비중을 강화한다. 그래서 진로활동 세부 특기사항도 2100 바이트 (700자 내외)나 된다. 교과당 쓸 수 있는 교과 세특이 1500바이트(500자)인 것을 감안해도 진로활동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정작 수업시간에 진행한 진로 활동은 많지 않은데 비해 생기부에 진로 활동은 아이들 별로 많이 기록해야 하다 보니 학기말이 될수록 담당교사 입장에서는 그 부담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교사들은 학기말이 될 때 아이들에게 급하게 진로활동 보고서를 받거나 아이들의 독서 활동을 받아내어 진로 활동을 보충해서 작성하는 경우도 많다. 그것마저 내지 않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써줄 내용이 더욱 없게 된다. 이래나 저래나 담당 교사 입장에서는 아이들 별로 진로활동을 700자씩이나내야 하는 것은 많은 부담이 되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아이들은 진로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럼 아이들은 학교의 진로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사실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하는 진로 활동이란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실제 작년 담임반 아이들과 상담을 할 때 "너는 꿈이 뭐니?"라고 물었을 때 대부분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지금 꼭 결정해야 하나요? "라고 대답하였다. 실제 아이들은 학교에서 진로적성검사를 해도 그 결과를 가지고 "그래 나는 이쪽으로 가야겠어"라고 다짐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들에게 있어 급하고 중요한 것은 교과성적과 내신이지 자신의 진로탐색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치열한 고등학교의 내신 경쟁 속에서 시험을 치를 때마다 많은 좌절감과 열패감을 맛보았다. 아마 1,2등급을 받는 상위 10% 정도를 제외하곤 90% 아이들이 자신의 한계점만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매일 꾸준히 공부한 결과가 고작 이거란 말인가' 탄식하며 멘탈이 탈탈 털린 아이들에게 '담임인 내가 보기에 너의 진로는 이쪽인 것 같다. 너는 구체적으로 어떤 꿈을 갖고 있니? 또 어떤 활동을 해봤니?'라고 물어봤자 제대로 된 답변이 나올 리 없는 것이다.


아이들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성적 지상주의의 관점을 누구보다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들은 특정 학과, 특정 대학이 성적이 높은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막연히 짐작하고 있다. 그래서 진지하게 구체적인 진로나 학과 탐색을 하기보다는 그냥 성적이 높은 곳이면 좋은 곳으로 알고, 입학하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것이다.


예전 고등학교 1학년 수행평가에서 '자신의 희망 진로와 연계하여 역사 인물을 탐구해 보기'를 문제로 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당시 1학년의 30% 이상이 역사 인물로 의학 계열 인물, 그것도 상당수가 허준을 탐구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정말 아픈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봉사정신이 투철한 허준을 본받아 헌신적인 사람이 되기를 갈망했던 것일까? 대체 이건 누구의 바램이었을까? 학생의 바램일까? 아니면 부모의 바램일까?


성적 지상주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진로활동은 그래서 큰 의미가 없다. 이쯤 되면 아이들의 학과 선택은 본인의 특기 적성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본인 성적에 따라, 또 부모 권유에 따라 학과와 학교가 정해질 뿐이다. 어느 학생의 고등학교 생기부를 보면 진로희망사항이 1학년 때는 의사, 2학년 때는 약사, 3학년 때는 기계공학자로 바뀌었다. 이건 아이가 진지하게 자신의 진로를 탐색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그저 처음에는 의사가 되기로 목표치를 높이 잡았다가 성적이 받쳐주지가 않으니 약사 - 기계공학자로 계속해서 바꾼 것이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진로교육과 진로 탐색 활동은 그래서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의 첫 직장이 대학에서 어떤 학과와 전공을 택했느냐에 따라 대부분 결정된다는 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다음 편에는 학교 진로 교육을 보다 현실화하고 개선할 방법(내 주관적인 생각들이긴 하지만,,,)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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