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교사의 주 업무는 무엇일까? 아마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만이 교사 업무의 전부라면 아마 교사만큼 따분한 직업도 없을 것이다.
옛날 중학교 때 도덕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제법 나이도 있으신 분이었는데 그분은 자기 스스로 "나는 머리가 굉장히 좋다." 고 자랑하고 다니셨다. 한 번은 수업시간에 눈을 감고 아이들에게 "어디 어디 글귀를 읽어보라." 고 지시하셨다. 아이들이 그 글귀를 읽었는데 "그것 교과서 몇 페이지 몇 째줄에 나오는 내용일 거다. 내 말 맞지?"라고 이야기하셨다. 실제 아이들이 교과서를 확인해보니 선생님 말씀이 정확하게 맞았다. 아이들은 모두 "와! 선생님 대단해요." 감탄사를 연발했다.
실제 그 선생님은 정말 머리가 비상한 분이셨다. 나중에 친구를 통해 들은 이야기인데 선생님은 새로운 교과서가 나오면 그 교과서를 한 달 동안 집중 파고들어 페이지랑 목차까지 교과서의 모든 것을 통째로 외워버린다고 하셨다. 그리곤 아무것도 없이 교실로 들어와서 수업시간 하는 말이 '나는 머릿속에 교과서가 다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분필 하나만 있으면 45분 수업은 아무 문제없다.' 고 자랑하셨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선생님 수업은 듣는 사람에게도 심지어 본인에게도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교직 경력이 오래된 만큼 열정이 식은 탓인지, 아니면 수십 년째 반복된 수업에 자신도 지루함을 느꼈던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일단 학생과 마주하고 있는 선생님의 목소리와 표정부터가 지루함이 묻어났다. 수업 패턴도 매일 똑같은 방식의 기계적인 수업이었는데 실제 수업을 듣는 것과 그냥 교과서를 읽는 것이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수업을 제대로 들을 필요성을 아이들은 못 느꼈고 계속 졸고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선생님을 보면서 '사람이 매일 똑같은 일만 반복하면 저렇게 되는구나' 느끼게 되었다. 한편으로 그 좋은 머리를 좀 다른데 써보지 왜 교과서 외우는데만 쓰셨을까 의문도 들었다.
그렇다. 위의 선생님처럼 사실 나도 수업시간 매일 똑같은 내용, 똑같은 판서를 반복하고 있으면 의욕이 떨어지고 지칠 때가 많다. 과목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 학교에서는 한 교사당 같은 학년의 3-6개 반을 가르치게 된다. 그런데 같은 내용을 어느새 4-6번째 반에 가르칠 차례가 되면 계속 똑같은 멘트와 제스처만 반복하고 있는 나를 보고 '대체 내가 사람인가? 기계인가?' 헷갈릴 때가 있었다. 그래서 가끔씩은 '차라리 수업 녹화영상을 찍어서 수업시간 모든 반에 틀어주기만 하면 어떨까?' 하는 무책임한 생각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르듯 똑같은 수업 내용일지라도 이에 대한 아이들 대답이나 반응은 제각각이다. 한 번은 내가 독립운동가 이봉창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학생 한 명이 대뜸 이야기했다.
선생님 이봉창이 원래는 진짜 일본인이 되기 위해 창씨개명까지 했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놀라웠다. 나는 수업시간, 이봉창과 윤봉길을 묶어 김구가 조직한 한인애국단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몸을 바친 사람들로만 설명하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이봉창이 원래는 진짜 일본인이 되려는 사람이었다니.
"그래?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긴데 어디 한번 선생님이 좀 더 공부해보고 다음에 알려줄게요."
실제 인터넷과 책을 찾아 조사해보니 학생 말이 사실이었다.
일제시대 태어난 이봉창은 자기 출세를 위해 적극적으로 일본인이 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가노시타'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도 스스로 하고 일본어도 원어민 수준으로 열심히 익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일본인이 될 수 없었다. 일제시대 식민지인에게 가해지는 차별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고 이봉창은 이런 현실에 분노했다.
"결국 조선사람이 조선사람으로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은 조선의 독립밖에 없다."
결심한 이봉창은 이후 김구를 찾아가 한인 애국 단원이 되었고 도쿄에서 일본의 상징인 일본 천황에게 폭탄을 던졌다. 결과는 안타깝게도 불발이었다. 하지만 그때 일본 헌병들은 주변에 있던 다른 일본인을 폭탄 투척자로 오인하여 그를 끌고 가고 있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이봉창은 태연하게 헌병들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 사람은 죄가 없소. 폭탄을 던진 사람은 나요. 나를 끌고 가시오."
이봉창은 마지막까지도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재판장에서도 당당했던 그는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봉창과 한인애국단 선서문
한 학생의 가르침 덕분에 나는 이봉창의 일대기를 다시 공부하며 그에 대한 지식을 업데이트할 수 있었다. 더불어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던 이봉창을 가슴속 깊이 되새기며 아이들에게 전달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렇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교사는 수업시간 아이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때론 학생들을 가르치고, 때론 학생들과 소통하고, 때론 학생들을 통해서도 배우는 사람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사실은 두 명이었다는 것, 그리고 두 분 다 바다에서 같이 활약했던 인물이라는 것.
우리가 쓰는 심방 심실 동맥 정맥 신경과 같은 의학용어들이 사실은 중국에서 온 단어가 아니라 해부학이 앞서 도입된 일본에서 나온 단어라는 것.
이 모든 상식들이 사실 수업시간 내가 학생들을 통해 새로 배운 사실들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학 용어들은 일본의 번역 의학서인 해체신서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한 번은 학생들의 프로젝트 활동을 지도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이들은 '그래도 우리 사회에 공교육이 필요한 이유'를 주제로 잡았는데 아이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한 학생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은 우리 사회에 공교육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글쎄. 선생님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국가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공교육이 필요한 것 아닐까? "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러자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저는 사람이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고 기본적인 예절, 규칙, 인성을 함양하기 위해 공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조금 다른데요.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잖아요. 그런데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면서 정작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면 국가의 주인 역할을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공교육은 그래서 필요한 것 같아요. 공교육 특히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똑똑하고 상식 있는 민주 시민들이 되어야만 올바른 정치참여와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민주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요? "
부끄러웠다. 교육자인 나도 생각하지 않고 있던 공교육의 목적을 아이들이 정확히 알고 있다니. 그때 나는 아이들로부터 자극을 받아 여러 교육 책들을 읽으며 교육의 목적에 대해 나 스스로 정답을 찾고자 노력했다.
공자는 말했다. 배우고 때맞춰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움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다. 몰랐던 지식을 새롭게 알게 되고 또 그 지식을 새롭게 써먹을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편으로 배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확장되고,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면에서 행복감도 느낄 수 있다.
학교는 이런 배움을 실천하는 곳이다. 그리고 이런 배움은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도 실천할 수 있다. 책을 통해서, 동료 교사를 통해서, 심지어 학생들을 통해서도 말이다.
교사는 늘 공부할 수 있고, 배울 수 있고,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이런 배움을 학생들과 같이 이야기하고 토론하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배움의 공간에서 근무하는 교사는 그런 면에서 매력적인 직업이다.